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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노

불행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좁은 우리에 4명(?) 아니 4마리의 곰이 싸는 초록색 똥과 오줌의 양은 상상 초월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각자 만들어낸 초록 병사들과 노란 물은 최악이었다. 차츰 털에 묻기 시작하더니 축축해지고, 이제는 옆에 있는 곰의 것까지 함께 나누게 되었다. 맛있는 댓잎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준 탁월한 후각이, 지금은 정말 원망스럽다. 같은 것을 먹었어도 네 마리(?)의 초록 병사들은 각기 다른 향을 뿜어냈다. 보통 이렇게 가둬 놓았으면 사냥꾼 놈이 배설물 정도는 치워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먼저 잡혀 온 엄마 곰과 내가 대나무를 양보해서 그렇지, 아픈 까칠이와 막 잡혀 온 어린 질질이가 배를 채울 수 있게 댓잎이 충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 24시간이 지나면 강제 지급되는 대나무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간도 먹이도 절대 부족이다. 결코 다섯 번째 곰이 잡혀 와서는 아니 된다.

기필코! 모두를 위해.


불안감을 안고 그렇게 또 하룻밤이 지나갔다. 이곳에 적응이 되는 것도 무섭고, 탈출할 대책이 없는 것은 더 무섭지만…. 방법이 없다. 방법이. 아기 질질이의 ‘도로롱’을 시작으로, 까칠이, 엄마 곰까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도 ‘도로롱’으로 빠져들었다. 꿈에라도 엄마, 아빠, 누나를 만나고 싶다. 무서운 누나라도 나오면 좋겠다.


“바바박박 펑~”


잠결에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곳에서는 깨어날 때 언제나 놀라는 것 같다. 커진 눈으로 앞을 보니 폭죽이 펑펑 하늘에서 터지고 있었다. 숲속에 폭죽? 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앵? 붉게 터진 폭죽이 땅으로 내려앉는 사이에 사냥꾼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아,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저 캐릭터였는데. 참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터트리는 폭죽인가 보다. 그럼, 뭔가 축하할 일이 있다는 것? 저 녀석이 저렇게 좋아한다는 것은? 설마 다섯 번째 곰이 잡혔나 보다. 이런 최악이다. 이 좁은 우리에 또 한 마리를 집어넣는 것인가? 어제 들던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되었다. 최최악이다.



사냥꾼 녀석 뒤로 덩치 큰 곰 한 마리가 우적우적 따라 들어왔다. 잡혀 와도 어떻게 저렇게 덩치도 큰 녀석이라니. 우리 입구를 통과만 해도 다행이겠다 싶을 정도다. 차라리 저 넓은 엉덩이가 문에 걸리면 안 들오지 않을까? 간절하게 엉덩이가 문에 끼어버리길 기도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쓱 통과했다. 한발 성큼 들어서는 순간, 안에 있던 네 마리 모두 몸을 세워야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이로 엉덩이 큰, 다섯 번째 녀석이 들어앉을 자리는 없었다. 까칠이 녀석은 다리가 아파서 뻗고 있어야 했고, 네 귀퉁이에 각자 한 마리(?)씩 앉으니…. 주변을 둘러보던 엉덩이 큰 녀석이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어제까지는 좌우에 다른 곰의 털이 맞닿았다면, 이제는 얼굴 코앞에 엉덩이 큰 녀석의 등짝이 산처럼 가로막았다. 저 얼굴을 마주 보는 것보다 등판을 보는 것이 낫겠지만, 이 답답함은 계산에 없었다.


애기 질질이는 녀석과 마주 보면서 뭐가 좋은지 비실비실 웃었다. 좋아서 웃을 리는 없을 것이고, 덩치 큰 엉덩이 녀석이 딱 봐도 힘이 쎄 보이니 비위를 맞추는 것이겠지. 어제 내가 챙겨준 것은 잊어 버리고 저 녀석! 얄밉다. 괜히 챙겨줬나 보다. 어제 쫄쫄 굶게 놔둘 것을. 어쭈어쭈 심지어 제가 먹던 대나뭇잎을 엉덩이 녀석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이 배신감!!


더 문제는 조금 있으면 대나뭇잎이 추가된다는 사실이다. 무슨 세팅 값이 대나무는 추가되면서 오줌, 똥은 안 치워지게 되어 있는 것인지, 참 성의가 없다. 곰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으면서 무슨 동물원을 만든다는 것인지. 최소한 동물원을 만들려면 동물이 그 속에서 살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강아지도 아니고 이 좁은 우리는 무엇인가!


다섯 마리를 다 잡으려면 최소 우리를 5개는 지어 놓고 시작해야지, 화가 스멀스멀 난다. 엉덩이 녀석의 큰 등짝과 궁둥이를 보면서 밥을 먹으려니 화가 더 난다. 이 갑갑함과 불쾌한 냄새,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초록 병사들의 향기와 축축함까지. 어떻게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만 하는 거냐? 눈이 보이면 뭐 하나. 엉덩이 녀석의 검은 등판만 보이는데. 차라리 이곳에 온 첫날이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와사사삭 툭”


걱정하던 대나무가 추가되었다. 어디 놓을 것이 없어서 엉덩이 녀석의 등판에 반절쯤 기대어 세워 놓고, 좁은 공간을 이용해서 각자 다리 위에 반절씩 나누어 올렸다. 대나무 나누기도 팔이 긴 내가 할 수밖에 없다. 엉덩이 녀석은 덩치만 컸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면 모두를 위협해서 최대한 몸을 동그랗게 말고 가운데 쭈그려 있었다. 등판을 보면 화가 났지만, 제 녀석도 이렇게 공처럼 불편하게 있는 것을 보니 불쌍하기도 했다. 이 중에 안 불쌍한 곰이 어디 있을까?

나부터 시작해서….

눈은 완전히 잘 보인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엉덩이 녀석 등짝 덕분에 앞에 더 캄캄해진 것이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잠시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면, 틈새로 숲이 살짝 보인다.

그게 어디인가.

걱정했던 것처럼 댓잎 양이 부족하다.

다리 아픈 까칠이를 적게 줄 수도 없고, 애기지만 식욕이 왕성한 질질이를 덜 줄 수도 없고, 덩치만 산만 하게 큰 엉덩이 녀석을 적게 줄 수도 없다. 그 등치면 혼자 이 대나무를 다 먹어도, 오후면 배가 고플 것이다. 그리고 엄마 곰도 그렇다. 내게는 고마운 분인데, 어쩔 수 없이 내 먹는 것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엄마 곰 자리에서는 내 대나무가 보이지 않으니, 나눠준 것을 맛있게 먹고 있다. 여기저기 나눠주고 보니, 내 무릎에 올려진 대나무는 12줄기다. 12묶음을 먹어도 부족한데, 12줄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먹기 싫어서 안 먹은 적은 있어도,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은 적이 없었다. 항상 간식 상자에 과자가 가득했고, 초콜릿이며 사탕, 피자, 빵부터 과일까지 넘쳤다. 그래서 굶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음식은 귀찮고 먹기 싫은 것이었는데….

여기서 대나무 12줄기가 전부라니….

다시 대나무를 나누자고 할까?

싶어서 고개를 들어 봤더니 질질이는 거의 다 먹어 치웠다. 아 저 식욕이라니. 이미 늦었다. 좋은 마음으로 파워E를 시작했으니 참아야 한다. 지금 더 달라고 해봐야, 배려해 준 보람도 없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최선을 다해 천천히 잎을 하나씩 뜯어 먹었다. 7장 이상은 뭉쳐 먹어야 씹는 맛이 있는데, 한 장으로는 맛도 못 느끼겠다. 아~ 먹고 있는데도 벌써 배가 고프다. 치토스가 먹고 싶다. 집에 두고 온 과자들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났다. 다행히도 내 위치가 엉덩이 녀석 등 뒤라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 잎 두 잎 먹다 보니 대나무 2줄기만 남았다. 이거 배가 하나도 안 찼는데, 두 줄기뿐이라니 잔인하다. 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한 장, 한 장. 두 번 씹고 삼키던 것을 열 번까지 씹으면서 천천히 삼켰다.

이제 마지막 한 줄기, 댓잎 8장.

바스락바스락.

마지막 댓잎 한 장.

이곳에 와서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는 파워E로 설정값을 바꿔서 아픈 곰을 챙기고, 어린 곰도 보살피고, 부족한 먹이도 나누고, 조금은 철이 든 것 같다. 만약 사람이었을 때….

벌써 그때가 너무 오래전인 것 같아서 깜빡깜빡하는데, 동완이었을 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잘 대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양손에 휴대전화만 들고 게임만 했던 동완이 때가 후회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더 잘해주고 말도 더 잘 들을 것을….

화,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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