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y 나노

“쾅쾅쾅~”


정신이 홀딱 빠지는 큰 소리와 울림에 잠이 홀딱 깼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큰 소리가 난 것을 보니, 또 뭔가 끌려오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는 네 번째 곰이 질질 끌려 들어오고 있었다. 배고파서 지쳤는지 저항 하나도 없이 질질 끌려서…. ‘쾅쾅~’ 소리는 저 몹쓸 사냥꾼 놈이 우리를 총으로 쳐서 난 소리다.

곱게 잘 먹고 자는 우리에게, 저 무슨 놀부 같은 짓인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발톱을 확 꺼내서 얼굴을 때려주고 싶은데, 로블에서 설정값이 ‘길들인 곰’이라 마음과 다르게 발톱이 나오지 않는다.

아. 괴롭다.

힘없는 네 번째 곰이 우리로 들어오자, 그 좁은 공간이 더 비좁아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바짝바짝 붙어 앉았다. 서로의 다리와 팔이 붙을 정소로 가까워졌다. 오른쪽에는 엄마 같은 곰이라 편안하고 괜찮았는데, 왼쪽은 까칠이 곰이라 싫었다. 아무리 파워E를 가동했어도, 이건 좀 별로다. 털과 털이 마주 닿아서 움직일 때마다 슬밋슬밋 닿는 것이 아주 불쾌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피할 공간이 없다. 하…. 포기해야지.

이곳에서는 내 것이 없다. 내 방과 내 장난감, 내 옷과 내 밥, 내 휴대전화 2개. 항상 가족들과 내 것이 구별되었던 예전의 삶과 너무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내 방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내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특별한 것이었나?

내 친구 민수도 형이랑 같은 방을 쓰는 것을 보면, 13년간 살면서 가지고 썼던 ‘내 것’은 사실 엄청난 것들이었나 보다.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참 특별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조금 더 아껴줄 것을.



네 번째로 잡혀 온 질질이 곰은 많이 지쳐 보였다. 밤새 사냥꾼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잡혔으니 더 그럴 것이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질질이에게도 대나뭇잎 한 줌을 던져주었다. 흐릿한 눈으로 멍때리던 질질이가 깜짝 놀라서 나를 한참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큰일이다. 아마도 살기 싫은 눈치인 것 같다. 그 마음 내가 충분히 알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야 다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대로 내 눈앞에서 다른 곰이 굶어 죽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불쌍해서도 그렇고, 끔찍한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서도 그렇다. 내 목소리를 듣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시도해야 했다.



“끅끅끄으윽~”

처음에 엄마 곰한테 들었던, ‘괜찮아?’를 되물었다. 그 말이 참 따뜻해서, 나도 질질이 곰에게 해주고 싶었다.

“끅끅끄으윽”

다행히 질질이 곰도 ‘괜찮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까칠이처럼 난동을 피우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대나무는 먹게 해야 하니,



“꼭꼬로로록 끅끅”

다정한 눈빛을 장착하고, ‘배고프니 먹어’하고 말해주었다.

어! 그런데 언제부터 눈이 이렇게 밝아졌지?

질질이의 눈빛이 보인다. 신기하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 눈이 점점 잘 보인다. 어제는 형태만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흐릿해도 눈빛을 구별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공포에서는 벗어났으니까.



“낑낑낑이잉”

질질이는 알겠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 중에 가장 어린 곰인 것 같다. 목소리가 아기 같다. 안쓰럽다. 아무래도 내가 더 챙겨줘야겠다.

질질이는 첫 댓잎을 입에 물기 시작하더니, 한 장 두 장, 차츰 댓잎 숫자를 늘려가면 먹었다. 입맛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딱 봐도, 한 주먹 댓잎으로 배가 부를 곰이 아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내 앞에 쌓여 있던 대나무 반절을 나눠서 질질이 앞에 가져다가 주었다. 질질이는 눈빛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뭐 별거 아니지만 자부심이 솟아 올랐다. 나 이런 사람(?) 아니 곰이야. 뭐 이 정도 가지고!

학교에서 수현이를 도와줬을 때, 수현이가 이런 눈빛으로 나를 봐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나는 ‘고마워’라는 말을 안 했어도, 모든 것을 다 도와줬을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가 있구나. 역시 파워E를 가동하기를 잘한 것 같다. 하, 나의 이런 어른스러운 모습을 우리 엄마가 봤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궁디 팡팡 세 번은 해줬을 텐데. 아쉽다.



우리 속에 네 마리 곰이 서로 정신없이 댓잎을 바스락바스락 먹기 시작했다. 엄마 곰은 질질이가 입맛을 되찾은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기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다. 진짜 엄마 같은 곰이다. 엄마 곰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이 좁은 우리에 팔다리가 붙어 앉아 있는데, 다섯 번째 곰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아주 큰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곰이 사냥꾼을 피해서 멀리 도망 다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좁아도 너무 좁다.

게임 할 때는 포획한 곰 숫자에만 신경을 썼지, 우리가 미어터질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참 상황이 얄밉다.

화, 토, 일 연재
이전 05화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