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y 나노

찌릿!

순간 불길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온몸이 짧은 털로 뒤덮여 있고, 네 발로 걸으며, 사냥꾼에게 붙잡혀 있다. 그리고 5마리의 곰 사냥! 이건 어디선가 많이 본 것인데.


서~얼~마!!!!

곰!


더 충격적인 것은!

아마도 어젯밤부터 조금 전까지

신나게 길들이고 있던


로블의 ‘동물원 만들기’ 속의 곰!!!


최악이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사람이 게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까?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내가 누나를 피하고 싶어서 두 손을 모아 휴대전화를 끌어안았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 세계로!

더구나 내가 잡아 놓았던 곰이 되었다니!

이건 미친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안돼~~~’

“꾸액액액~~~ 꽥~~~~”

허공에 내 고통스러운 외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니 여전히 앞이 흐릿하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던 깜깜한 어둠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지금 어딘가에 갇혀 있는 곰 신세인 것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빛의 형태라도 보이니 처음보다는 조금 나았다.

앞을 유심히 보니 검은 물체 둘이 움직이고 있다. 냄새로 보아 하나는 막 잡힌 곰인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사냥꾼인 것 같았다. 아주 불쾌하고 기분 나쁜 피 냄새가 난다.

이상하다.

분명 내가 했던 게임에서 나는 곰을 길들이며 원하는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결코, 동물을 해치지 않았다. 절대. 왜 이곳에서 사냥꾼들은 피를 보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지금 막 잡혀 들어온 곰은 성격이 좀 난폭한 것 같았다. 들어오면서부터 분풀이했다. 벽을 팍팍 차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쾍쾍우왁우왁왁왁왁왁~~~”

아주 거친 욕을 쉬지 않고 자꾸 했다. 뭐 해석하자면 ‘저 인간 새끼 가만히 두지 않겠다~~’ 그런 내용이었다. 아마도 저 성격에 붙잡혀 오면서 거칠게 반항하다가, 어딘가를 다친 모양이었다. 아마도 다리를 다친 모양이다. 벽을 찰 때마다 피 냄새가 더 나는데도, 멈추지 않고 난동을 피웠다. 어찌나 정신을 빼놓는지 붙잡힌 것보다, 왜 저런 포악한 곰을 잡아 온 것인지가 더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얼마나 소란을 피워댔는지…. 아마도 어제 내가 놓쳤던 버그 걸린 곰을 만난다면 딱 저런 모양일 것 같다. 행여 한 대 맞을까 싶어서 구석으로 가서 가만히 있었다. 좀 전까지 이곳을 소란스럽게 한 것이 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온순하게... 내 성질머리를 감췄다. 괜히 물어뜯기기라도 하면 나만 손해가 아닌가. 13년 인생 눈칫밥으로 살아온 나만의 생존 비법이다. 강자 앞에서는 고개를 바닥까지 숙여라. 무엇보다 아직 앞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니,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절대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흐린 눈으로 옆을 보니 나에게 친절했던 곰도 한쪽 구석에 앉아서 대나무 줄기를 저걱저걱 씹고 있다. 달콤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뭐 저 곰이 먹고 있다면 나도 먹어도 된다는 것이겠지? 안 그래도 과자만 서너 개 먹고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뭐라도 먹어 봐야겠다. 저렇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 맛있으려나?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보니 바스락하는 소리를 내는 줄기가 느껴졌다. 아, 이게 영상으로 보던 푸바오가 먹던 대나무구나. 거칠거칠한 소리에 비해서 줄기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음~ 이래서 줄기 냄새를 맡으면서 대나무를 골랐던 것이네! 어떤 줄기는 조금 시큼한 향이 났고, 어떤 줄기는 향긋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평소 입맛이 까다롭던 나에게 이 정도 감별은 너무 쉬운 일이다. 대나무 중에서 가장 고소한 냄새가 나는 줄기를 들고 용기를 내어서 한 잎 베어 물었다. 아마도 녹차 맛이 나겠지?



띠옹! 이게 웬일인가! 첫 잎은 쌉싸름한데 두 번 세 번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올라오면서 입안 가득 향기와 고소한 풍미를 풍기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고소한 풍미가 나는 것이지? 이래서 곰들이 하루 종일 대나무를 먹었던 것이구나.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는 왜 처음 먹어 보는 것이지? 이파리 한두 장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다. 급하게 한입 가득 잎을 따서 일곱 장 정도를 와그작 뜯어 먹었다. 그래 이 정도는 먹어야 배가 부르지. 지금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상상 이상의 맛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 맛있다. 김치볶음밥보다 맛있고 삼겹살보다도, 돈가스보다도 훨씬 맛있다. 이건 마치 비싼 식빵에 고급 버터를 발라서 한입 가득 베어 문 것처럼 흡족했다. 이 맛있는 대나무를 매일 먹는다면, 곰으로 사는 것도 막 불행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에고 말도 안 된다. 정신 차리자. 아무리 배가 고프고, 대나무가 맛있어도, 그것은 아니지.

정신 놓고 와그작와그작 먹다 보니, 좀 전에 난폭했던 곰도 어느 순간 우리와 함께 대나무를 먹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대나뭇잎이 부딪히는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양쪽에서 들리는 것을 보니, 너도 나만큼이나 배가 고팠구나. 그래 나도 내가 왜 여기에 갇혀 있는지 몰라도 일단 배부터 채우고 있으니…. 일단 고픈 배를 채워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비참한 상황을 잠시 잊고 본능에 충실했다. 엄청 충실했다.

배가 불러오자 차츰 어찌해야 엄마한테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완인데 왜 여기에 갇혀서 대나무나 씹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 지자, 눈물이 또 났다. 분명 아까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부르니 또 내 상황이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곰이 되다니. 더구나 로블 속의 곰이라니.

울고 있는 것을 다른 곰들에게 들키기는 더 싫다. 자존심이 있지.

아~ 로블에서 붙잡힌 곰들을 어떻게 했었지?

어제 4마리 판다를 잡아서 길들인 다음, 우리에 넣어서 동물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동물을 잡으러 다녔던 것 같다. 잡혀 있던 판다를 다시 챙겨주거나 돌보지는 않았다. 게임이란 것은 원래 원하는 것을 이루면 끝나는 것이니까. 그 뒤에 판다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동물원 만들기가 목적이었지, 판다 키우기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그 동물원 속 판다가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럼 내가 세울 수 있는 대책은….


없다.

이 세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너무 비참하다. 게임이 나를 통제할 줄이야. 13년 인생에 이런 순간은 상상도 못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처지가 더 분명해졌다.

‘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게임 속에 갇혔다. 심지어 사람도 아닌 판다 곰이 되어서.’

화, 토, 일 연재
이전 03화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