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외로 밥을 먹으러 갔다가 차를 몰고 오는데 길가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저 강아지는 왜 저기 있을까?”
“주인을 기다리는 거겠지?”
“아니 이런 도로 한 가운데서 무슨 주인을 기다려?”
“길가에 버리고 가 버린 것 같은데.”
“뭐? 저렇게 버릴 거면 왜 키워?”
“몰라. 처음 키울 땐 좋다고 키우는데, 막상 키워보면 똥 오줌 치워야지, 밥 챙겨주고 산책 시켜줘야 해서 집도 못 비우지. 아프면 병원 가야 하는데 비용이 엄청나다고 하잖아. 그것 말고도 ‘견’ 옥고니, 강아지 용 옷이니 음식이니 쉽지 않은 거지. 자기 밥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말야.”
“그렇다고 저렇게 길 한 가운데 버리고 가면 되나?”
“몰라, 버린 게 아닐 수도 있고.
이 동네 강아지일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녀석의 눈빛은 오래 보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빛이었고,
낯선 길가에서 점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그것과 비슷했지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점점 지쳐가고 현실을 알게 되는 그 안타까움.
차를 돌려 나라도 데리러 갈까 하다,
주인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자신도 없고 그냥 그대로 가던 길을 갔습니다.
집에 와서도 신고라도 했어야 했나 싶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녀석의 눈빛이 떠올랐지요.
그리고 전에, 저희 집에서 키웠던 강아지가 생각났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물론, 부잣집이 아니라, 작은 마당이 있는 세 가족이 같이 사는 흙수저 집이었지요.
어렸을 땐 그 집도, 마당도 꽤 크게 느껴졌었는데, 나이를 먹고 다시 가보니 너무 작아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은 그런 면이 있지요.
학교를 다녀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는 사람은 할머니셨습니다.
“고생했다. 가방 풀고 일단 숨 좀 돌리고 쉬어라.
씻고 밥 먹자.”
할머니는 따뜻한 분이셨어요.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손에 커서 그런지 할머니와 정이 깊었지요.
그런 할머니 전에 날 맞이해 주는 녀석이 있었는데, 우리 집 강아지 해피였습니다.
작은 마당에 강아지 집이 있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게 짖고 꼬리를 흔들곤 했지요.
손 인사를 해주면 좋다고 달려들었어요. 어찌나 귀여운지.
친한 사이에 오랜만에 만나 활짝 웃는 사람과의 관계와 다름 아니었지요.
개밥이라고 음식을 가져다 주면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강아지나 사람이나 자기 밥 챙겨주는 사람이 제일 고마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쓰다듬어주고 목 메일까 봐 물도 챙겨주면 녀석은 혀를 내밀며 좋아하곤 했지요.
그러던 해피가 어느 날 새끼를 낳았습니다. 여러 마리였어요.
해피가 누워있고 젖을 빨고 있는 작은 새끼들을 보니 많이 귀여웠습니다.
애들을 낳고 보살피느라 힘들어 보여서,
해피의 밥을 더 잘 챙기려 노력했고, 녀석은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눈빛이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색깔이 해피와 조금 다른 녀석도 있었지만, 한 녀석은 해피와 정말 똑 닮아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DNA를 몰빵 했는지 피부색 뿐만 아니라 생김새가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닮았지요.
그러다 할머니가 새끼 강아지들을 다른 집들에 나눠주고 키워달라고 한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어린 마음에도 녀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해피도 제 슬픈 표정과 분위기를 읽었는지 그때부터 밥을 가져다 줘도 경계하기 시작했지요.
동물로서 본능과 엄마로서의 자식들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느껴졌어요. 친척들과 이웃들이 와서 아이들을 두 마리씩 데려갔고 두 마리가 남았습니다. 해피는 한참 짖다가 지치고 어쩔 수 없는지 체념하고는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다 남은 아이들이 젖을 빨자 녀석들을 핥고 포근히 안고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이별은 아쉽지만 남은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까요.
몇 달 후 아이들이 꽤나 자랐고, 아이들을 데려간 친척 분이 집에 놀러 오면서 녀석들을 데리고 왔어요.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녀석들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들며 짖는 걸 보고 마치 이산가족 상봉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놀다가 친척 누나가 집에 간다고 하니 저는 무척 아쉬워서 눈물이 날 뻔 했지요. 그런데, 해피를 보니 자기가 낳은 아이와 다시 헤어진다는 걸 알았는지 저보다 더 슬퍼 보였습니다. 해피를 쓰다듬고 가만히 안아주었지요. 서로의 슬픔을 그렇게 달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피와 저는 헤어질 시간을 맞이했어요. 녀석이 힘이 없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걸 보며 이별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지요. 이웃 집에서 키우던, 녀석을 똑 닮은 새끼가 그새 많이 커서 왔어요. 반가운데도 힘이 없어진 해피는 새끼를 이전처럼 맘껏 안아주지 못했지만, 어느새 큰 새끼가 어미를 안아주었지요.
그날 이웃이 돌아갈 때쯤 해피와 이별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보고 싶었던 것 같았고, 그걸 이루어서인지 해피는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저도 울고, 새끼들도 울었지요. 계속 어미 옆을 떠나지 못하고 만지다가 누워있고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해피를 한동안 묻어주지도 못했지요.
정겹던 그 녀석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저 하늘에서 잘 살고 있겠지요.
보고 싶습니다.
https://youtu.be/-X41UVzR1qI?si=3nDhCIIurCyzq_xc
(사진 : 스마일라인 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