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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Feb 20. 2024

내겐 너무 무서운 단어, 본인상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61


회사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조사를 챙기게 됩니다.


경사는 본인 결혼이나 자녀 분들 결혼이라 찾아가서 축하 드리면 돼서 부담이 없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에 반해, 조사는 아무래도 슬픔을 겪는 분을 위로해 드리러 가서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힘들 때 함께 한다 라는 의미로 절을 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자리라 애써 마음을 다잡습니다.


잔칫집도 아니고, 상가에선 술을 마셔도 잔을 부딪히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관행도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용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있으니 일부러 크게 말하라는 것은 그런가 싶으면서도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조사는 거의 부모님 상이 많습니다.

멀게는 조부모상이나 외조부모상 혹은 친척인 고모상, 이모상 등이 있지만, 보통 동료의 부모님 상이 많아,


"경사도 챙겨야 하지만, 조사를 더 잘 챙겨야 한다."

는 말을 믿고 있는 저는 경사는 사정이 있으면 못 가고 축의금만 보내더라도,

부모님 조사에는 약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서라도 가서 절을 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하곤 합니다.


나이를 먹고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종종 본인상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실 부모님 상의 경우 보통 80-90 정도 되셔서 슬프긴 하지만, 평균 수명 이상을 살고 가시면 '호상' 이라고 하며, 위로하고 지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본인상 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는 놀라곤 합니다.

얼마 전까지 바로 옆에서 일하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경우가 많지요.

아직 친구들의 부고를 들을 나이는 아닌지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했던 성격 좋은 누나가 혈액암으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한번 더 느꼈지요.


퇴근하고 사내 운동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분이 여행을 가셨다가 사고가 났을 때도 많이 놀랐습니다.

성격도 좋으시고 건강 관리도 잘 하시는 분이셨는데, 차 사고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발생하니 정말 무섭다는 걸 실감했지요. 그래서, 운전을 더 조심조심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회사에선 업무와 상사 stress, 집에서도 힘드셨다는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는,

그 분이 한숨을 쉬고 그러실 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더 건네고, 식사라도 하면서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씀이라도 더 들어드릴걸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우울한 시절을 살고 계신 분들에겐 다가가서 차 한잔이라도 함께 하려 노력합니다.




해외에서 일할 때, 친한 부장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작은 키에, 통통한 몸에 선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지요.


제가 아직 경험이 짧은 때라 해외 현지에서의 업무도 알려주시고, 일 마치고 현지 맛집에 같이 가서 편하게 식사도 하며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지요.


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친절하고 잘 어울리셔서 그 분 숙소에선 거의 매일 밤 술 파티가 벌어졌지요.


현지 맥주나 보드카, 양주 와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 휴가를 다녀 오신 분들이 소주에, 막걸리에, 고량주에 다양한 술을 가져와서 그분에게 선물했습니다. 술과 사람을 원체 좋아하는 분이시기도 했고, 술을 선물한 분들이 다시 그 숙소에 찾아가 함께 그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저도 몇 번 그 숙소에 불려 가보면 여러 분들이 즐겁게 한 잔 하시면서 외롭고 고된 해외 생활을 함께 나누며 달래고 있었지요. 어디서 그렇게 구했는지 안주거리도 현지에서 구한 것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것을 나누어 먹기도 했지요.


그러다 한 번은 현지에서 그 부장님과 둘이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한국 식당에 가서 실컷 한식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 기울였지요. 한국 음식이 비싸고, 소주도 2-3배 가격을 받지만 출장비도 있고, 그렇게 외국 친구들과 힘들게 일한 다음 먹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소주는 어디 비할 바가 없었지요.


그렇게 현지 출장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지역으로 가려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항에서 또 맥주를 드십니다.


"부장님은 술을 얼마나 자주 드세요?"


"364일"


"하루는 뭔가요?"


"건강 검진 전날 ㅎ"


"어이구, 약주 드시고 스트레스 푸는 것도 좋은데, 적당히 드세요.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 몸 상하세요."


"이 험한 세상을 이거 안 마시고 무슨 재미로 사냐? 도박이나 마약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내가 왜 해외 근무 오래 해도 복귀 시켜 달라는 말 안 하는지 알아?"


"돈 벌려고요?"


"아니, 그 보다 한국에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마누라가 잔소리 하잖아.

맘 편하게 술 마실 수 있어서 해외 근무 하는 걸 좋아해 ㅎㅎㅎ"


"잔소리가 아니라 건강 걱정하셔서 말씀 하시는 것이겠지요.

약주 드시다 진짜 약 드시지 마시고 좀 줄이세요."


"그러게. 좀 줄이긴 해야 하는데.

이렇게 공항에서 비행기 대기하고 있으면 뭘 해? 맥주 한잔 마시다 보면 시간 금방 가잖아.

ㅎㅎ 그런데, 나 전에 이렇게 출장 가서 비행기 기다리다 술 마시다 취해서 비행기 못 탄 적이 있어. ㅎㅎㅎ"


"어이구, 욕 엄청 먹으셨겠네요."


"그렇지 뭐. 비행기 값도 결국 내가 내고 쌩쇼를 했지 뭐야 ㅎㅎㅎ"


"비행기 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 이렇게 공항에서 술을 드세요?"


"지금은 니가 있으니까 깨워주고 챙겨줄 거 아니야? ㅎㅎㅎ

이리 와 한잔 해."


"아이고, 됐습니다. 이것만 딱 드시고 그냥 좀 주무시던지, 책을 보시던지 그러세요."


"ㅎㅎㅎ 그래"


전생에 술 못 마셔서, 술과 원수 지셨나 싶을 정도였지요.


우리 사회는 '주취감경' 이라는 말이 있어서, '술김에' 라는 말로 조금 봐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단결근이라는 퇴사 사유 중 하나도,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라고 하면,


"으이그, 다음부턴 적당히 마시고,

안 되겠으면 미리 휴가를 쓰던가 해."

라며 넘어가기도 하지요.


술만 마시면 다음 날 연락 두절, 회사에 나오지 않던 친한 선배도,

멘사 멤버일 정도로 머리도 좋고 일을 잘해서 조금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팀장이 되고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해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다 6개월 만에 팀장 자리에서 쫓겨났지요. 관리자가 모범이 되어야 할 망정 이라는 말을 듣고요.

그러고 나선 자신이 밑에 데리고 있던 후배에게 자리를 뺏기고, 그 후배를 팀장으로 모시며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술을 이기지 못하면 마시지를 말던가.

1차에서 조금만 마시고 귀가하던가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코로나 시절 전에는 새벽까지 마시고,

다음 날 피곤한 상태로 회사에 나와 하루를 그냥 버티다 집에 가기도 해서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때도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아무리 회사 생활이 힘들어서 스트레스 풀고,

친목 도모해서 network 만들어야 한다고 이유를 갖다 붙여도,

너무 많이 마시면 사실 '알콜 중독' 이지요.


팀장에서 내려 온 그 선배는, 후배 팀장 밑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술을 더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급기야 이혼 소식이 들려왔지요.

회사에만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술만 마시면 외박하는 남자와 같이 살 여자는 없겠지요.

아무리 돈 벌고 사회 생활 하면서 고생 많다고 이해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혼 케이스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364일 술을 드시던 그 부장님의 본인상 소식을 얼마 전 듣고 말았지요.


그 사람 좋던 양반이 결국 술 때문에 60 정도의 나이에 일찍 가버리셨지요.


마지막엔 여러 장기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무서운 말까지 들었습니다.


아무리 술을 잘 마신다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술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매 앞에 장사 없듯이 말이지요.


한 의사가 그러더군요.


"어떤 향기와 맛의 백가지 술 중 하나라도 많이 마시면 몸에 좋은 것은 없다.


J 커브라고 J의 앞에 있는 조금 구부러진 정도의 술을 마시면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고 기분도 나아지고 체증도 내려갈 수 있는데, 그 정도 적은 술만 마시고 더 술을 마시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결국 아예 안 마시는 게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래서, 저는 언젠부터인가 술을 잘 마시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새벽까지 N 차로 술 마시고, 대학 OT 때 사발주 같은 걸 마셨던 걸 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지요.

차라리 그런 OT는 안 가는 게 나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직 준비한다는 대학생들은 OT를 잘 가지 않는다고도 하더군요.


지금은 세대도 변하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부어라 마셔라 늦게까지 마시는 분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술값을 비롯해서 물가도 너무 많이 올랐고, 택시 타고 집에 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택시비도 많이 올랐지요.


확실히 과거,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스타일 포장마차 전우애는 많이 사라졌지요.

늦게까지 술 마시다 술집들이 다 문 닫아서 혹은 편하게 마시고 싶어서 집으로 동료들을 데리고 가서, 잠자고 있는 사모님에게 술상 차려달라고 하는 일도 거의 없지요. 그땐 워낙 평생 직장 분위기가 강하고, 결혼, 집들이, 자녀 출산, 돌잔치, 부모 조사까지 동료들이 다 챙기던 시절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정이 있고 좋았지."

라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정도 좋지만,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그것도 적당히 하고 함께 하는 분들이 건강한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큰 병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는 분들을 보는 것도 안타까운데,

본인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거든요.


모든 분들이 건강 관리 잘하시고, 무탈하게 잘 사셨으면 합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챙겨야 하는 세상이니까요.

아프면 자기만 손해이고, 몸만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Salud!


(건강을 위해서 라는 스페인어 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술 마실 때 cheers와 비슷하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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