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Feb 25. 2024

유비의 협상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737


지난 글에서 익주 유장의 부하 장송을 맞이한 조조와 유비의 상반된 모습을 말씀 드렸습니다.

 

거만한 태도와 위협으로 일관하며 장송을 무시하고, 기분이 나쁘다며 때리기까지 했던 조조는,

눈 앞에 굴러 들어온 서촉이라는 땅을 잃었습니다.

 

유비는 조운과 관우를 차례로 보내 escort 하고, 자신도 제갈량과 방통을 대동하고 그를 맞이합니다.

대부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며 연일 잔치를 베풀고 융숭한 대접을 했지요.

 

자신을 치켜세워주고 마음을 다해 대접을 해주는 사람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지? 언제 봤다고 말이야.

뭘 바라는 게 있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는데.’

라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유비가 장송을 잘해준 것은 본성 때문도 있지만, 천하삼분지계를 이루기 위한 제갈량의 계략이 있었다는 것은,

전편의 글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형주는 조조의 침공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고,

(실제 유표가 형주를 다스릴 때도 조인이, 하후돈이, 그리고 조조가 직접 쳐들어 오기도 했지요.)

손권은 형주를 반환하라고 계속 아우성이라 다소 불안한 곳이지요.

 

그래서, 마음은 서촉을 차지해서 그 곳을 기반으로 대업을 이루고 싶지만,

그 곳은 황실의 피를 나눈 유장의 땅이라, 덕장으로 유명한 유황숙 유비가 동생 뻘 되는 유장을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하기엔

‘명분’이 없었지요.

 

유비가 장송과 후에 법정 등에게 극진한 대접을 했던 것은,

차지하려는 땅의 내부 조력자를 얻기 위함도 있지만, 그 명분을 얻기 위한 목적도 컸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장송에게 몇날 며칠 잔치만 베풀어주고 좋은 이야기만 나누지,

어떻게 하면 유장을 내쫓고 서촉을 차지할지, 명분은 무엇인지 전혀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조에게 푸대접을 당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상태로 유비를 만나 계속된 대접을 받던 장송이,

몸이 달아오르게 되지요.

 

저도 국제 협상에 참여해보면 보통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쫓겨서 바람직하지 않은 합의를 하기도 하지요.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 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해외 출장을 가며 집에서 공항버스가 있는 정류소까지 가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시길래 공항에 가는데, 정류소에서 공항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기사님이 사실 그런 것 같아 물어봤는데, 자신도 지금 공항에 가야 하는데 메터기 켜지 않고 반값에 가주겠다고 하십니다.

 

속으로 ‘앗, 이런 행운이!’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공항 버스비보다 2만원 정도 비싸서, 2만원을 내 돈으로 부담하고 편하게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공항 버스 정류장에 점점 가까워 오는데, 제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 다 와가는데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이 좋은 기회를. 어쩌지

 

이러면서 발을 동동 굴렀을까요?

 

아닙니다.

 

에이, 벌써 정류장에 다 와 버렸네. 그냥 평소처럼 공항 버스 타고 가지 뭐.

크게 불편한 것도 없고, 출장가면서 조금 편하자고 굳이 쌩돈 쓰나.

 

하면서,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기사님이 재촉하시길래, 그냥 공항 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세요.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려서 공항 버스 시간을 다시 한번 check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만원 더 깎아 줄 테니, 한번 더 생각해 보라.

편하게 가면 좋지 않느냐.”

하십니다.

 

처음보다 마음이 더 동했지만, 버스 정류장에 가까워 올수록,

‘굳이’ 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내려주세요. 고맙습니다.”

하고 말았지요.

 

그랬더니, 기사님이 뭐에 씌웠는지,

“아 참. 알았어요. 2만원에 갑시다. 그럼

공항버스 가격하고 같으니까 됐지요?”

 

하십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뭘 이렇게까지 깎아주면서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는거지?

다른 꿍꿍이가 있나?’

했지만, 나이 드신 분이셨고 이상한 짓 하면 한방에 제압할 수 있겠다 싶어,

그건 아니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어서 비행기를 놓치면 큰 일이기에,

 

“됐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니, 기사님이

 

“아이고, 정말 답답한 양반이네 정말.

알았어요, 알았어. 만 오천원에 갑시다. 더 이상은 안돼요.”

라고 하십니다.

 

그제야 이 분이 진짜 공항까지 가야 하시고,

돈 하나도 못 버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러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순간 내가 너무 했나 싶다 가도,

그럼 만원으로 부를까 하다,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싶어,

 

“그럼 가주세요.

내릴 때 꼭 영수증 끊어 주시고요.

회사에 증빙 제출해야 하는 회사원인 거 아시지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았어요. 알아.”

하시면서 총알같이 저를 공항에 데려다 주셨고,

그날 저는 정말 편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중간에 정류장에 멈추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빨리 갔지요.

 

공항에 도착해서는,

“그냥 2만원으로 끊어 주세요.”

하고 마지막 선심을 썼습니다.

 

조금 죄송하기도 하고,

공항버스비보다 적게 택시비를 냈다는 게 너무 말이 안되는 것 같아 금액을 맞추려는 생각도 있었지요.

 

그때 환하게 웃으셨던 기사님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협상이란 게 이런 거고, 서로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지요.

 

삼천포로 너무 길게 빠졌지만,

유비가 잘해주기만 하고, 장송이 운을 떼도 미지근한 대꾸만 자꾸 하니,

되려 장송이 몸이 달아 오릅니다.

그러면서 속을 다 드러내 보이지요.

 

“대장부가 세상을 삶에 있어 공을 세우고 대업을 이루고자 함에는 말을 채찍질해 남보다 앞서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이번에 서천을 차지하시지 않아 그 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버린다면 그땐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입니다.”

 

라며, 정작 유비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지요.

 

그런 말이 있습니다.

협상에서 성공하려면,

내가 원하는 말을 내가 주구장창 하지 말고,

상대방이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게 하라.

 

결국 유장 또한 늑대를 쫓아 내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 들이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유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집안의 아우 되는 유장은 현덕 형님께 두 번 절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우레 같은 이름을 엎드려 사모한 지 오래나 촉 땅의 길이 험하고 거칠어 예물을 갖추지 못했으니

실로 두렵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걱정과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돕는 것은 벗 사이에도 당연한 일이라 하거늘,

같은 피를 나눈 족친 간이겠습니까?

 

지금 장로가 군사를 일으켜 제 땅을 침범하려 하니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이제 글을 올려 감히 들어 주시기 바라오니 부디 같은 종친의 정과 형제의 의를 저버리지 마시고 도와 주십시요.”

 

유비는 이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합니다.

 

같은 종친의 땅을 힘으로 빼앗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될 구실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 싸움에 허비될 군사와 재물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 까닭이었지요.

 

이미 반은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협상은 어떠신가요?

 

영어로 business가 스페인어로는 “negocios” 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단어입니다. Negotiation과 비슷한 어원이지요. 우리가 ‘네고, 네고’ 하는.

 

우리 일상도 선택과 협상의 연속입니다.

역사에서 배우는 삶이지요.

 

오늘도 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참고로, 오랜만에 이문열 삼국지를 읽고 일부 대사 등을 인용하여 제 생각을 가미했습니다.)

이전 23화 내겐 너무 무서운 단어, 본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