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월드컵 조별 C조 예선. 메시 고개를 숙이다.
아르헨티나가 졌다.
11/22 치러진 사우디와 예선 C조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하고 말았다.
A 매치 36경기 무패, 월드컵 지역 예선 무패, 피파 랭킹 3위, 메시, 디 마리아 등 빅 리그에서 뛰는, 유명하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이 팀이,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국 32개 팀 중 32위라는 파워랭킹 평가까지 받기도 하고, 모든 선수가 자국 리그에서 뛴다는 사우디에 졌다. (피파 랭킹 51위)
그야말로 대회 초반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축구공이 둥글고, 이 맛에 축구 본다는 말이 증명되었다.
2009년부터 전 세계 최고 선수로 인정한다는 발롱도르 상을 수집하기 시작, 30대 중반의 나이인 작년포함 수차례 이 상을 차지했다. 그 많은 축구 선수들이 대부분 평생 한 번도 받기 힘들다는 그 상을.
작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컵 MVP, 득점왕, 도움왕을 휩쓸고, 2020년을 포함 수차례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이었던 메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2-1로 지고 있는 상태로 초조하게 공격을 이어가다 얻은 후반 35분 경의 프리킥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메시가 평소 높은 확률로 골을 넣던 지역이라 동점을 기대했지만 기회를 놓쳤다. 별명이 메시아인데도 이렇게 팀을 구원하지 못한 장면이 경기 상황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경기 초반에는 마지막 월드컵에 작정하고 나온 게 보이는 메시의 활약과 여유 있는 PK 선제골을 보고, 예상대로 사우디가 지겠네 싶었다.
잉글랜드에게 패배한 이란처럼 너무 심하게 깨지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 정도였다.
조별 리그의 무난한 통과와 메시가 국가대표 마지막으로 (last dance)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멋진 서사의 첫 단추가 끼워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사우디의 수비진과 미드필드 진의 라인이 무척 잘 짜여 있었고 촘촘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오프사이드가 여러 차례 나왔다. 사우디 감독이 남미 친구들의 열정적이고 급한 마음을 잘 알고 오프사이드
작전을 쓰는데 잘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남미 친구들도 열정적이라 흐름을 타고 주도를 해야 경기를 리듬감 있게 끌어가는데, 뭔가 흐름이 탁탁 끊기는 느낌이었다.
축구 경기의 흐름은 기회를 잡지 못하면, 흐름을 뺏기고 위기가 찾아온다고 했다.
후반 초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려 후반 3분.
알 세흐리가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제야 녹색 옷의 사우디 응원단이 눈에 들어왔다. 사우디 사람들이 저렇게 많았나 싶었다.
사우디에 출장을 가보면 더위 때문에도 그렇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못 보고, 쇼핑몰에도 사람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었나 싶었다.
역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개최된 월드컵이라 옆 동네에 대규모로 응원하러 온 것 같다. 메시 등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전개해나가면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내가 축구선수라면 몇 만 명이 저렇게 우~ 하고 야유를 할 때 공을 제대로 찰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후반 8분.
알도사리가 역전골을 넣고 말았다.
골문 앞에서 개인기를 보며 이 친구가 메시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평소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하는 것을 아르헨티나 본인들이 당하고 골까지 먹었다
참 축구란. 세상일이란 신기하다.
이렇게 알 수가 없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맥이 끊기고 흐름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골이 나오지 않았다. 초조하면 조급해지고 평소 잘 되던 것도 잘 안되기 마련이다.
되려 사우디의 수비 조직력과 집중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 열정적인 남미 친구들이 뜻대로 경기가 안 풀리자 ‘이럴 리가 없는데, 무슨 마가 끼었나 오늘’하는 표정이 자꾸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2002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말린 포르투갈 선수들의 표정을 연상하게 했는데, 엄청난 체력으로 쉴 새 없이 달리며 따라붙고 수비하는 송종국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을 보며, 그 유명하고 잘 나가던 피구 등이 “이 XX들 뭐야”하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사우디의 수비 집중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후반 종료 직전 아르헨티나의 슛을 골키퍼가 아닌 수비수가 머리로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사우디는 5명의 수비수를 두며 경기 굳히기에 들어갔고 그렇게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망연자실하면서 오랜 추가 시간이 지나고도 골을 더 이상 넣지 못했다. 결국 사우디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87년생 메시도 나이는 못 속이나 싶고 갑자기 왠지 몸도 조금 무거워 보였다. 마치 살찐 마라도나나 호나우도가 연상되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같은 강팀이, 저 메시가 그대로 주저앉을 리는 없고 멕시코와 폴란드를 상대로 승리하여 16강 진출을 노릴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도 16강 단골 진출 팀으로 만만치 않고, 폴란드에는 현재 전 세계 최고 공격수 자리를 다투는 레반도프스키가 있다.
메시가 첫 경기 패배를 딛고, 조별 리그를 통과 후 위기를 다시 극복. 마지막에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커리어의 마지막 화룡정점을 찍을지,
아니면 아르헨티나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11/23을 휴일로 선포까지 한 사우디가 중동 월드컵에서 본선 토너먼트 진출해서 활약할지 다음 경기가 기대된다.
그리고,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을 보니,
우리라고 우루과이를 못 이길 게 있나 싶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것 알지만, 통쾌하게 이겨줬으면 좋겠다.
첫 골은 손흥민이 넣었으면 좋겠다.
첫 골 게임에 내가 손흥민을 꼽았기 때문이다. ㅎㅎ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