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12. 제주도 젊은 목공팀
"아마 육지의 웬만한 목공팀보다 실력이 좋을 겁니다."
방통공사가 완료되고 내부 인테리어 마감 공사를 위한 목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당초 계획은 나와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춰온 서울에 있는 목공팀을 제주도 현장에 투입하여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공팀이 한 달 정도 묵을 숙소와 필요한 공구들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만약 제주도에 실력 있는 목공팀하고 일을 진행한다면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목공팀이 내려온다면 내부 인테리어 목공 작업에 있어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만큼 실력을 갖춘 목공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오랫동안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기에 내 품질 기준과 작업 진행 스타일이 몸에 배어있어 작업 지시도 편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왕복 비행기 값에 작업을 위한 공구를 싣고 오는 차량 운반비에 삼시세끼 식사와 편하게 잠잘 수 있는 숙소까지 제공해야 한다. 물론 직영 공사 방식으로 진행하여 공사에 투입되는 모든 비용은 건축주 부담이지만 제주도 목공팀을 구한다면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추후 하자가 발생했을 때 대처도 빠르고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았다. 뭐 어쨌든 비용을 떠나서 작업의 결과물이 최우선이었다. 예상 공사비에 이미 서울에서 내려오는 목공팀 부대 경비까지 포함시켜 잡아놓은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고민 중이던 어느 날 외부 단열재 설치 작업을 진행하던 팀장이 자신이 아는 제주도 목공팀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마침 '송당일경' 신축 공사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좌읍 하도리의 펜션 신축 공사 현장에서 내부 목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 목공팀의 작업 결과물과 실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하도리 현장으로 출발했다. 하도리 펜션 신축 현장은 내부 목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냥 현장 구경하는 척하고 혼자 내부로 들어가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목공 중에 팀장으로 보이는 한 명은 라왕 합판을 사용하여 싱크대 가구를 현장에서 제작하고 있었다. '송당일경' 현장의 내부 목공사는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었다. 경사 지붕에 층고도 높고 외부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위에 간접 조명이 들어간다. 그리고 제주도 고재를 이용한 선반과 가구 제작, 포켓 슬라이딩 도어 설치, 외부에는 전통 툇마루 설치 등등. 30분 정도 하도리 펜션 현장을 둘러보고 목공 팀장에게 인사와 함께 내 소개를 했다. 하도리 현장을 방문하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는데 "웬만한 육지 목공팀 보다 저희 팀 실력이 좋을 것입니다!"라는 팀장의 자신감 있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송당일경' 현장에서 미팅을 하기로 하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건축 현장에서 30년이 넘도록 수천수만 명의 작업자들을 상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작업에 대해서 몇 마디 나누어 보고 작업하는 모습을 훑어보면 이 사람이 작업을 제대로 할지 아니면 실력이 부족한 기능공인지 대충 어림짐작이 간다. 어떤 때는 겉모습만 보아도 이 사람이 어떻게 작업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린 적이 거의 없다. 어쩌면 처음 하도리 현장을 방문하여 목공팀이 작업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미 마음속으로 이 팀이라고 결정이 난지도 모르겠다. "탁 탁 탁 타타타" 석고보드를 고정시키는 타카 총을 쏘는 소리와 목공 기계톱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내부로 들어서자 팀장으로 보이는 목공이 능숙하게 합판을 절단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팀원이 목공 잉여 자재를 정리하고 팀장을 보조하였다. 목공 중에 한 명은 생김새도 독특해서 처음 본 인상이 강렬했다. 나이 때는 목공 팀 중에서 가장 어린 듯 보였으나 턱에는 긴 수염이 자라고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턱수염 군데군데 톱밥을 머금고 있었고 머리는 뉴진 스님이 생각날 정도로 번쩍였기 때문이다. 다른 방에서 목공 마감 작업을 진행하는 팀원은 짧게 잘 관리된 콧수염을 부착하고 석고 보드 취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두 각자 개성이 뚜렷했다. 복장도 젊은 목공 팀답게 요즘 유행하는 워크 웨어를 입고 있었다. 작업하는 현장에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어떤 현장은 어색하고 무거운 반면 어떤 현장은 밝고 따뜻하다고 해야 하나? 작업하는 현장 내부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고 목공 팀들의 얼굴도 밝았다. 목공 작업이 완료된 부분을 확인해 보니 마감 품질도 나름 괜찮았다. 이 정도 실력이면 "송당일경" 내부 목공 작업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설령 서울 목공팀 보다 숙련도가 부족해서 품이 더 들어가더라도 이런저런 비용을 비교하면 오히려 공사비도 절약이 될 것 같았다.
하도리 현장 방문 일주일 뒤 목공 팀장과 다시 만났다. 목공 작업이 진행될 "송당일경" 현장을 함께 둘러보고 건축 도면과 스케치업 도면을 보면서 상세하게 설명까지 곁들였다. 목공 팀장뿐만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송당일경"의 내부 인테리어 마감에 대한 전체적인 컨셉과 세부 디테일을 설명하며 현장 시공 상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내가 맡은 현장들은 공사를 진행할 때 주요 공종 작업자들에게 도면만 던져주고 일을 시키지 않는다. 골조 공사도 마찬가지고 내부 목공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일용직 용역들에게도 현장에 대한 공간 설명과 컨셉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수동적으로 작업만 진행하는 것보다 현장의 전체적인 완성 모습을 이해하고 건축 현장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라도 담으면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면 소속감, 책임감이 그만큼 높아지고 현장에 애정이 더 담을 수 있다. 이는 결국 작업의 품질로 이어진다. 특히 내부 인테리어 마감을 위한 목공 작업을 진행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완벽하게 각 공간 부위별 마감 디테일을 이해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약 2시간 정도 목공팀과 함께 현장 내부를 둘러보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고 일주일 후 목공 작업을 스타트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평균 연령 30대 후반의 제주도 젊은 목공팀과 인연이 되어 한 달 하고도 보름을 '송당일경'에서 함께하였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작업을 하는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완성하였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제주도에 공사를 할 기회가 있다면 제주 목공팀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