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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Oct 14. 2024

제주의 거친 질감

중간 - 13. 현무암의 거친 질감 종석 뿜칠

"제주도의 거친 현무암의 질감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제주도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상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에메랄드 빛의 바다? 미깡이라는 제주도 대표 과일인 감귤? 한라산? 천혜의 자연환경?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제주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이 대표적인 상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대기 중에서 식어 굳어서 만들어진 현무암은 뜨거운 공기가 외부로 빠지면서 생긴 모공이 있다.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현무암 겉 표면에 보이는 색상도 천차만별이다. 제주 공항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현무암은 제주도 전역인 밭이나 들판, 주택의 외벽, 담장 등 눈만 돌리면 보인다. '송당일경'은 처음 건축 설계 당시에서부터 외벽 마감으로 현무암의 거친 질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제주스러움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를 상징하는 거친 현무암의 질감을 외관 디자인에 반영하여 숙소에 머무는 여행객들에게 첫인상에서부터 제주의 감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외단열 마감 공법으로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공사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콤프레샤 기계로 건축 재료를 여러 번 뿌려서 원하는 질감을 표현하는 뿜칠 공법과 마감면에 모르타르를 고르게 펴 바르고 바탕면을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서 작업하는 긁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외부 마감 공법 중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점찍어놓은 것은 '종석뿜칠'이었다. '종석뿜칠'은 인공 건축 재료가 아닌 천연 차돌 가루를 화학재료와 섞어서 외벽에 뿌리는 것을 말한다. 색상도 원하는 컬러로 얼마든지 조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먼저 종석뿜칠 업체를 찾아서 공사비용이 예산안에 들어오는지와 작업 일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종석뿜칠 업체를 알아보니 전국에 2군데 밖에 없었다. 먼저 제주도 시공 실적이 가장 많은 업체에게 연락을 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둔 업체였는데 알고 보니 종석뿜칠 원조 개발자였다. 다른 한 곳은 부산에 있는 업체인데 한집안 식구였다. '송당일경' 전체 외벽 마감 물량 산출표와 현장 상황 이미지를 메일로 보내주고 견적서를 받아보았는데 공사 비용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예상 공사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23년 3월 종석 뿜질 작업 전경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공사 비용이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종석뿜칠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종석뿜칠 개발자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제주도의 거친 현무암의 질감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종석뿜칠이 이에 가장 적합한 마감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산이 조금 부족합니다." 30분 정도 종석뿜칠을 송당일경 현장에 해야 하는 이유와 지급할 수 있는 예산, 그리고 제주를 담고 싶다는 진심을 피력했다. 그리고 1시간 뒤에 업체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애월읍에 종석뿜칠 시공 일정이 우리 현장 다음으로 잡혀서 경비를 아낄 수 있고, 자신도 십분 양보해서 할 수 있는 금액을 보내온 것이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자신도 '송당일경' 현장 사진을 보고 건물 모양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주도에 또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예산을 조금 초과하였지만 후속 공정에서 충분히 만회가 가능한 금액에 협의를 보고 종석뿜칠 시공 계약을 하게 되었다. 며칠 뒤 종석뿜칠 색상을 결정하기 위해서 건축주 분이 제주도 현장으로 내려왔다. 업체에게 받은 샘플 북을 펼쳐 들고 건축주와 현장 주변의 돌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색상을 매치시켜 보았다. 수많은 돌담의 현무암 중에서 '송당일경' 외벽에 적용될 컬러를 고르는 것이다. 사실 나는 현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마음에 드는 돌 색깔이 있었다. 현장 부지 뒤에 현무암으로 석축이 쌓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놈을 일찌감치 선택해 놓았던 것이다. 건축주에게는 "저는 이미 마음에 드는 컬러를 정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돌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돌을 선택해 보라고 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는 했지만 건축주가 내가 선택한 돌을 고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웬걸 건축주도 같은 색상의 돌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마음이 동했다고 하는 건가? 외관에서 중요한 외벽 컬러 선정을 단 10분 만에 건축주와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그렇게 종석뿜칠 외벽 컬러 선정을 업체 대표에게 연락하고 보름 뒤에 작업은 시작되었다.


23년 3월 종석 뿜질 작업 전경



컬러 배합이 완료된 종석뿜칠 재료가 현장에 도착하고 다음날 작업팀이 현장에 도착했다. 종석뿜칠을 개발한 대표가 직접 작업을 위해 팀원과 함께 현장에 내려온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현무암의 거친 질감을 위한 '송당일경' 외벽 마감 작업이 시작되었다. "송당리에 작품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는 대표의 자신감이 담긴 말과 함께 뿜칠을 위한 장비 세팅을 하고, 동시에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뿜칠 자재를 가설 비계 작업 발판 위에 분배했다. 첫날은 창호 주위 우레탄 실리콘 작업을 시작으로 모든 창호 프레임 오염 방지를 위해서 보양작업을 하고 프라이머를 도포했다. 프라이머는 종석뿜칠 재료와 바탕면의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서 전용 프라이머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프라이머는 컬러가 없는 투명이다. 그런데 종석뿜칠 프라이머는 마감 컬러와 동일한 색상이 배합되어 있어 내심 놀랐다. 첫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오후 늦게까지 준비 작업을 했다. 다음날은 새벽 5시부터 뿜칠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일반적으로 건축 마감은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품질과 디테일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종석뿜칠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나 질감을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더더욱 숙련도가 필요한 것이다. 종석뿜칠이라는 마감 공법은 한두 번 뿌려서는 입체적인 거친 질감이 나오지 않는다. '송당일경' 현장의 경우 3~4회 종석뿜칠 작업이 진행되었다. 종석뿜칠이 본격적으로 뿌려지기 시작한 첫째 날 둘째 날이 지나면서 외관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변해갔다. 주변 돌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거친 질감은 더욱 또렷해졌다. 드디어 작업 마지막 날 업체 대표가 뿜칠 건을 직접 들고 작업을 진행했다. 다른 작업팀원은 오로지 보조역할만 했다. 모든 외벽 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확인하면서 유종의 미를 뿌리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완성도를 높이려는 열정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땀을 온몸에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 개발자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도 보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다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라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 작가는 이야기했다. 아마도 자신이 개발한 종석뿜칠을 직접 마무리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외벽 마감 종석뿜칠 작업 완료 후 인허가를 담당한 건축사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말로만 듣던 종석뿜칠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건축주에게는 작업 완료 이미지와 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다. 건축사는 종석뿜칠 표면을 만지며 연신 휴대폰 버튼을 누르며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건축주는 엄지 척 이모티 콘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보내왔다. 숙소에 머무는 여행객에게 제주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거친 질감을 담은 외벽 마감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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