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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Oct 02. 2024

제주를 담자.

중간 - 10. 제주 고재와 송이를 찾아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겠습니다!"


제주의 찐 건축 재료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은 건축주에게 착공 전부터 못 박은 나의 신념이었다. 요즘 제주의 펜션 홍보 문구를 보면 너도나도 모두 제주 감성을 담은 펜션이라고 강조한다. 감성디자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의 감각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이다. 감성 디자인이란 인간의 오감 중에서 최소 3가지 이상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전 LVMH 북미 회장이었던 풀린 브라운은 말한다. 또한 인간의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해서는 감성디자인을 반영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어떠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오감 중에서 최소한 3가지 이상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 펜션 건축 디자인에 제주의 감성을 담았다는 것은 제주를 느낄 수 있는 건축 요소들을 담았다는 의미가 된다. 즉 건물의 외관에서 내부 인테리어, 기타 건물을 사용하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았을 때 제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의 감성을 담았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펜션들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건물의 외관은 온통 화이트 톤에 지중해 식 디자인을 본보기로 건축해 놓고 제주를 담았다고 한다.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제주를 떠올리는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를 한다. 조경은 어떠한가? 중국산이나 베트남산의 싸구려 화산 송이를 깔고 제주를 표현하고 담았단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왜 제주도에 지중해식의 건축 디자인을 반영하냐는 것이다. 세계의 많은 유명 건축가들은 그 지역의 전통미를 반영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그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지중해식 건물들이 즐비한 해변가에 생뚱맞게 한옥이 있다면 어떤 모양새로 보이겠는가? 반대로 북촌 한옥마을 속에 노출 콘크리트 주택이 떡하니 있다면 어떠한가? 군계일학이 아니라 군계일압으로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여행객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앞으로 제주를 담지도 않은 제주의 펜션을 홍보할 때 제주라는 말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머무는 숙소에 제주의 전통미와 오롯이 제주를 느낄 수 있는 건축 요소들을 담아서 건축한다면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24년 2월 제주도 대정읍 소재 고재 목공방 방문


내부 인테리어를 위한 목공사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오리지널 제주도 고재와 송이석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여기서 내가 찾는 고재(古材)란 오래된 목재라는 뜻이다. 제주 도민을 비롯하여 제주에서 건축을 하고 있는 지인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제주도에 고재를 취급하는 곳을 샅샅이 뒤졌다. 조경 공사에 사용될 송이석인 제주도의 화산송이는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시간 날 때마다 알아보았다. 제주 고재를 취급하는 곳 중에 대정읍에 위치한 목공방이 규모가 가장 컸다. 무엇보다 자체 창고를 보유하고 있어서 고재의 상태도 좋아 보였고 보관하고 있는 고재의 양도 가장 많았다. '송당일경' 건축 현장인 구좌읍 송당리에서 대정읍까지는 거의 제주도 끝에서 끝이다. 네비를 찍어보니 편도 1시간 40분이 걸린다. 서울에서 공사를 진행할 때는 현장까지 출퇴근 시간이 기본 1시간 ~ 2시간이었다. 그 이상 걸리는 현장도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생활하다 보니 1시간 40분이라는 거리가 꽤 멀게 느껴진다. 며칠후 건축주가 제주 공항에 도착하는 날을 잡아서 함께 방문하였다. 왜냐하면 혼자서 왕복 4시간 거리를 가는 것도 그렇지만 건축주와 함께 고재를 확인하고 내부 인테리어에 사용한다는 확답을 받기 위해서였다. 건축주가 제주로 오기로 한 하루 전날 목공방 사장님께 연락을 해서 미리 시간 약속을 하였다. 생각보다 젊은 분이 고재 목공방을 운영을 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에 고재가 보관되어 있는 창고를 둘러보았다. 100평이 넘는 창고가 3개나 있었고 먼지가 쌓인 고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와 이 많은 고재들을 다 어디서 구하셨나요?"라고 여쭤보니 제주도에 있는 오래된 가옥이 철거될 때마다 직접 트럭을 몰고 가서 차 때기로 가져왔단다. 고재라는 자재는 남들에게는 한낱 쓰레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미묘한 매력을 드러낸다. 고재를 보면 무언가 오래된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움푹 페인 흠집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고재의 매력에 빠지면 매끈한 최상급의 목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제주도의 옛날 초가집에서 사용되었던 문짝, 천정을 받치고 있던 기둥목, 부뚜막에 그릇을 놓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두꺼운 판재들도 이제 다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송당일경'에 고재가 사용될 부분은 주방 싱크대 상부의 선반과 거실 장식장을 대신할 선반, 그리고 침실의 드레스 가구를 대신할 기둥목이다. 외부에는 고재 문짝을 사용하여 무지주 벤치에 사용될 것이었다. 방문 첫날은 대충 눈대중으로 고재 녀석들을 확인하고 약 보름 뒤에 혼자서 다시 방문하였다. 목공방 사장님이 주신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본격적으로 고재 보물 찾기에 들어갔다. '송당일경' 내부 공간에 어울리는 가장 멋진 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 인테리어 목공사에 필요한 고재의 길이와 두께도 맞아야 한다. 목공방 사장님과 함께 약 1시간 동안을 겹겹이 쌓인 먼지 속 고재들을 일일이 들쳐보고 그중에서 뛰어난 놈들로 선별하였다. 그렇게 수십 년을 제주의 어느 초가집에서 사용되며 제주 도민의 손때가 물들고 제주의 억센 기후에 맞서 갈라지고 폐이고 무언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고재를 골랐다.


23년 2월 대정읍 소재 고재 목공방 방문 건축주와 함께


내부 공간에 사용될 고재는 구했고 이제 앞마당 조경 공사를 위한 제주 송이석을 구해야 한다. 송이석이란 화산 송이라고도 불리며 화산 폭발 때 용암이 처음 분출하면서 점토와 용암이 섞여서 굳어진 작은 알맹이들을 말한다. 송이석의 매력을 잠깐 이야기하면 아침 이슬에 젖거나 비가 내려 물이 스며들면 색상이 찐하게 변한다. 마른 상태와 젖었을 때의 색상의 명암이 다르며 붉은색을 띠는 적송이의 경우 더욱 아름다운 빛깔을 보여준다. 산책로 바닥에 깔았을 때 송이를 밟으며 걸어가면 사각사각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밟는 촉감도 독특하고 재미를 준다. 제주에서는 오름이나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송이석이 깔린 정원을 보면 제주를 느낄 수 있다. 조경용으로 송이석은 크게 2가지 색상이 많이 사용되는데 적색과 흑색이다. '송당일경' 조경공사에는 적색을 띠는 송이로 결정했다. 사용될 송이석 크기는 지름이 20mm ~ 30mm이고 정원과 건물 외부 둘레를 따라서 디딤석 산책로를 만드는데 깔아줄 것이었다. 제주의 찐 송이석을 찾아서 또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그러다 제주시 봉개동에 송이 채굴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 채굴장 주소를 받고 무작정 차를 몰고 봉개동으로 향했다. 진짜 제주에서 채굴되는 송이석인지 아니면 값싼 중국산이나 베트남 산 송이석을 갔다 놓고 판매하는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채굴장에 도착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송이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바로 옆에 구덩이를 크게 파놓은 곳이 있었는데 표토층 하부에 화산 송이가 매장되어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23년 3월 제주시 봉개동 송이 석산에서 


내가 방문한 봉개동의 송이석산 전체 부지가 수만 평인 것을 감안하면 송이석의 매장량이 얼마인지도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송이석을 쌓아둔 곳으로 가서 미묘한 붉은색을 띠는 송이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송이를 판매하는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펜션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나는 송이를 깔고 싶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초 지종을 이야기하고 금액적으로도 시원하게 협의를 보았다. '송당일경'이라는 숙소를 건축하는데 제주를 담고 싶은 마음을 송이석 대표가 공감하고 이해를 해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송이석은 주로 중국산과 베트남산이다. 왜냐하면 제주 송이석과는 가격이 2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송당일경' 조경 공사에 필요한 송이석 물량이 2.5~3 ton 이니까 금액으로 따지면 중국, 베트남 산 송이석하고 2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200만 원이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 어쩌면 내 욕심일 수도 있으나 숙소에 머무는 여행객을 위해 제주의 찐 송이석으로 산책로를 조성하고자 하는 부분에 공감해 준 건축주 분께도 감사드린다. 디딤석 조성 공사에서 잔디가 아닌 송이석으로 변경하면서 예산이 살짝 오버가 되었지만 부족한 예산은 조경 공사를 진행하면서 내가 직접 몸으로 때울 작정이었다.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고 진심은 동한다고 했던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자재를 '송당일경' 건축에 담고 싶은 작은 열정이 제주의 고재와 송이석을 찾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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