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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Oct 24. 2024

욕조 & 대문

중간 - 17. 히노끼 욕조와 디자인 대문

1) 히노끼 욕조


"욕조가 경차 한 대 값이네요!"


집에서는 욕조가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여행을 가서 머무는 숙소에 욕조가 있다면 괜스레 반신욕을 하고 싶어 진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고 싶은 것이다. '송당일경' 욕실에는 2인용 욕조와 1인용 욕조가 있다. 당초 설계에서는 예산을 감안하여 벽돌을 쌓고 타일로 욕조를 만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디자인적으로는 이쁠지 모르나 천연 석재가 아닌 타일로 욕조를 만들 경우 추후 문제가 발생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왜냐하면 타일로 욕조를 만들 경우 조인트 부분에 메지 시멘트로 마감 처리를 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메지가 탈락되고 탈락된 틈새로 물이 침투하여 타일이 들뜨거나 하부의 방수층이 깨진 경우 누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아무리 타일 시공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1년도 채 못되어 하자가 발생할 확률은 90%가 넘는다. 또 타일이 변색될 수 있으며 물 때와 곰팡이까지 발생할 수 있다. 타일로 만든 수영장이나 욕조는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천연 석재로 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돌을 시공할 경우 내구성은 타일보다 뛰어나지만 마감 두께 때문에 욕조 사이즈가 너무 작아졌다. 반대로 욕조 사이즈를 유지하려면 욕실 공간이 너무 협소해졌다. 고민 끝에 위에 언급한 단점들을 모두 커버하고 여행객들에게 좀 더 특별함을 줄 수 있는 욕조를 찾았고, 결국 히노끼 욕조를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24년 5월 히노끼 욕조 설치 완료 후


히노끼 욕조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편백나무로 만든 히노끼 욕조는 향기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FRP 제작 방식으로 방수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어버린다. 미리 제작되어서 현장에 들어오기 때문에 시공성도 좋다. 한마디로 기능성과 내구성과 심미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비싼 욕조 설치 비용이었다. 2인용과 1인용 2개 설치 가격을 알아보니 당초 타일로 시공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거의 2배 가까이 예산을 초과했다. 히노끼 욕조 업체에서 받은 견적서를 건축주에게 보여주니 경차 한 대 값이라고 놀라는 눈치였다. 왜 히노끼 욕조를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예산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예산이 어디서 확보되었냐면 육지팀이 아닌 제주도 목공팀이 내부 목공사를 진행함에 따라 경비 부분에서 큰 금액이 세이브되었던 것이다. 약속한 예산안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에 건축주 분도 기분 좋게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송당일경'에 설치된 히노끼 욕조는 일본 나가노현 기소정에서 생산된 두께 30T의 수령이 100년도 넘은 편백나무가 사용되었다. 욕조 설치 당일 자재가 먼저 현장에 도착하고 이어서 작업팀이 도착했는데 나와 시공관련하여 통화를 한 이사님이 직접 내려오셨다. 서울에 본사를 둔 히노끼 욕조 전문업체인데 제주도로 오기 바로 전에 가수 아이유 집에 설치를 하고 왔다고 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욕조 설치 작업은 오후 3시 무렵 마무리가 되었다.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선반과 물 바가지는 서비스 품목으로 제공해 주었다. 내항균성과 물에 강한 내수성을 지닌 자연친화적인 히노끼 욕조가 완성되었다. 히노끼 욕조만 설치했을 뿐인데 내부 공간의 공기가 달라졌다. 은은한 편백향에 기분이 좋아졌고 피톤치드가 팍팍 나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히노끼 욕조는 여행객들의 피로를 풀어주며 소중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욕실에 자리를 잡았다. 



2) 디자인 대문


옛 제주도 전통 대문은 정낭이라고 한다. 길고 굵직한 나무 3개를 사용하였는데 이 정낭이 어떻게 놓여있는지에 따라 집주인의 행방, 생활 반경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힌 선조들의 지혜다. 정낭은 3개의 굵고 긴 나무를 양쪽 3개의 구멍에 걸쳐 놓는다. 한쪽에는 걸쳐져 있고 다른 한쪽으로 3개의 정낭이 다 내려와 있으면 집에 있다는 의미고, 1개만 내려와 있으면 조금 먼 곳에 출타를 하였다는 뜻이고, 2개가 내려와 있으면 잠시 가까운 곳에 갔다는 표시이다. 마지막으로 3개가 양쪽으로 모두 걸쳐져 있으면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송당일경'의 대문은 철제와 목재로 만든 대문을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나는 제주도의 전통 대문인 정낭을 설치하고 싶었다. 그래서 건축주 분과 함께 표선 민속촌을 찾아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을 직접 보여주었다. 하지만 외부인이 아무 때나 침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당초 계획대로 목재와 철제로 만든 대문을 설치해 주기를 원했다. 잠금장치가 있는 대문을 원했던 것이다. 문제는 제주도에 기성제품이 아닌 원하는 사이즈와 디자인을 반영한 대문을 만드는 업체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대문의 디자인을 결정해야 했다. 평소에는 안 보이던 것이 온통 신경이 대문으로 가 있어서 그런지 길을 걸어갈 때도 차를 타고 갈 때도 다른 집들의 대문들이 상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건축주 분과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건축주와 내가 원하던 디자인 대문을 발견한 것이다. 허리까지 오는 낮은 높이와 스트라이프 디자인의 목재 그리고 스테인리스 부속철물 등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우면서 "오 딱이네~"하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나왔다. 특히 잠금장치가 돋보였는데 대문 안쪽 위에 튀어나와 있는 철제 키를 손가락으로 살짝 뒤로 젖히면 문이 열렸다. 대문을 설치한 업체를 찾기 위해서 제주도 대문 설치 업체를 모조리 뒤졌다. 그리고 결국 그 업체를 찾았다.


24년 5월 디자인 대문 설치 작업 중 모습


며칠 뒤 대문 업체 대표와 '송당일경' 현장에서 미팅을 가졌다. 통화를 할 당시에 문자로 대문이 설치될 위치와 현장 전경 사진을 문자로 전송했었는데 대문 설치 유무를 떠나서 사진으로 보이는 '송당일경'이 이뻐서 꼭 와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현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자신이 대문을 설치한 제주도에 있는 펜션들 중에서 탑급이라고 했다. '송당일경' 외부와 내부 마감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자신도 내년에 집을 지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대문 설치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지만 여행객들에게 첫인상이자 들어오는 관문인 출입구 대문으로 더 이상 적합한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금액적으로 협의를 하고 일주일 뒤에 대문 설치를 시작했다. '송당일경'의 대문은 2군데가 설치되었다. 4인실인 해실과 2인실인 달실의 출입구를 양쪽 끝에 별도로 만들어 여행객들의 동선을 분리했다. 그리고 대문과 대문 사이에 돌담을 쌓았다. 돌담 위에는 간판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대문 설치는 자체 공장에서 틀을 제작하고 대문을 잡아줄 기둥은 현장에서 직접 설치하였다. 목재는 라왕이 사용되었는데 장인 정신을 보는 듯 현장에서 한 땀 한 땀 조립을 하였다. 기둥, 포스트는 아연도 철제 각관을 사용하였고 기타 다른 모든 부속은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용하여 내구성과 내 부식성을 확보하였다. 목재에 사용된 오일스테인과 기둥 색상은 디자이너와 협의하여 결정해 주었다. 대문 제작 기간을 제외하고 현장에서의 작업은 2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2일 동안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역시 가격이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라는 것이다. 일단 자재부터가 달랐다. 스테인리스는 모두 포스코 제품이었고 부속 철물과 힌지는 수입제품으로 모두 스테인리스 제품이었다. 제주도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녹이 쉽게 나지 않는 값비싼 철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문에 사용되는 목재도 직접 함수율을 확인하고 공장에서 천공을 하여 현장에서 스텐 피스를 사용하여 조립했다. 대문 설치 작업에 자부심과 진심이 느껴졌다. 목재에 빗물이 직접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문 문짝 상부에 스테인리스 철제 커버를 씌우는 부분에서는 건축기술자인 나도 감동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부속인 잠금장치는 일본에서 직수입하였다고 했다. 대문을 고정할 고정 걸이쇠 설치와 바닥 디딤석 천공을 마지막으로 대문 설치 공사가 완료되었다. 깊은 인상을 남긴 대문 업체 대표와는 '송당일경' 준공 완료 후 초대하기로 하고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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