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16. 조경공사
1) 조경토 구하기
"제주도에서 조경토는 부르는 게 값입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잔디도 심고 나무를 식재하려면 마당에 좋은 흙을 깔아야 한다. 즉 양질의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조경토를 화단이나 나무와 잔디가 심어질 정원 바닥에 채우고 다짐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부지가 넓은 경우 기초 터파기 작업 시에 좋은 흙이 나온다면 되메우기와 조경 공사를 위해서 한편에 충분한 흙을 쌓아놓는다. '송당일경'의 경우도 기초 터파기 시에 좋은 흙만 골라서 어느 정도 쌓아두었다. 하지만 부지가 협소하여 기초 되메우기와 조경을 위한 흙이 한참 모자랐다. 대략 30m3 정도가 부족했다. 스카니아라고 불리는 25톤 덤프트럭 2대 분이다. 육지의 경우 25톤 덤프로 황토색의 조경토 1대가 15~20만 원이다. 조경회사에 흙을 주문하면 1~2시간 이내 현장으로 흙을 가져다준다. 제주도도 그런 줄 알았다. 내일모레 잔디를 깔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 흙을 받아야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았다. 이런 제기랄! 25톤 덤프 1대 조경토를 70만 원을 불렀다. 다른 곳에서는 80만 원이란다. 통화를 하고 있던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송당일경' 조경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 대표도 조경토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비슷한 금액을 요구한다고 했다. 40만 원에 가져가라는 곳은 알아서 흙을 상차하여 운반하라는 조건이었다. 집주인이자 우리 현장 터파기 작업을 했던 장비 사장님에게 조경토를 구하는데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제주도에서 조경토는 부르는 게 값입니다."였다. '차라리 마사토를 받을까?' 하여 제주도 마사토 취급 업체에 연락을 해보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제주도에서는 마사토가 없단다. 육지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가격이 바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제주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조경토를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하고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당근 마켓이 생각났다. 제주도는 당근 마켓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등으로 단기간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쓰던 물건을 다시 육지로 가지고 가는 것도 힘들지만 버린다면 돈을 주고 버려야 한다. 따라서 중고거래가 가장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왠지 조경토를 파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당근 마켓 앱에 들어가 조경토 파는 곳을 검색해 보았다. 앗! 3 군데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조경토가 쌓여있는 사진과 함께 "25톤 덤프 1대 25만 원에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랴부랴 연락을 했다. 덤프 운반비는 별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 도착도로 해서 1차당 45만 원에 흙을 받기로 하였다. "찾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당근 마켓이라는 어플과 sns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 동시대에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2) 청사초와 동백나무 그리고 하귤이
조경 공사를 앞두고 과제가 하나 있었다. '송당일경'은 'ㄱ'자형의 농어촌 민박용 주택이다. 'ㄱ'자형이지만 서로 떨어져 있다. 따라서 앞마당 정원의 산책로를 공유하면서 마당 영역의 분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서로 직접적인 시선이 겹치는 곳은 시야를 자연스럽게 가릴 필요가 있었다. '마당을 어떻게 나눌까?', '산책로는 어떻게 조성하지?', '시선은 어떤 나무를 심어서 가리지?', '나무는 어떤 것으로 심어야 하나?', '옆 대지와 경계면에는 어떤 나무를 심지?', '특별한 정원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게 있을까?'등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정원을 만들어보고 있었다. 마인 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집과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듯이 내 머릿속에서도 정원을 만들었다가 뒤집어엎었다가를 몇 개월째 하고 있었다. 그래서 벤치마킹을 위해 구좌읍에 위치한 블루 보틀 카페를 조경 업체 대표와 같이 방문하였다. '송당일경'의 건축 디자인도 이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과 공사 중에도 수시로 찾아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으며, 인테리어 디자인에 참고할 많은 부분을 보고 만져보고 느꼈던 곳이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블루 보틀 뒷마당으로 나왔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정원이 세세하게 보였다. 산책로가 조성된 공간에 나무 말뚝을 박아서 야자로프로 낮은 울타리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송당일경' 앞마당 공간의 분리에 대해 딱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면 돌담 아래에 무엇을 심을까 하고 고민했는데 블루보틀 주차장 한편에 돌담아래에 바람에 출렁이는 풀이 있었다. 마치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듯 춤을 추고 있었는데 조경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청사초라는 식물이라고 했다. '그래 송당일경의 낮은 돌담 아래에도 청사초를 심어야겠다.' 그렇게 마당의 분리와 낮은 돌담아래 조경 식물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이제 부지의 경계면 하고 산책로가 갈라지는 모서리 화단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이냐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었다.
'송당일경' 현장 바로 아래에 집이 있다. 우리 현장에서는 그 집의 뒷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그 뒷마당에 노란색 귤이 주렁주렁 열린 아주 큰 하귤나무가 하나 심어져 있었다. 겨울이 되어도 봄이 되어도 여름이 되어도 가을이 왔어도 항상 초록색의 나뭇잎과 노란색의 귤로 예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그냥 귤나무인 줄 알았다. 제주 도민들에게 물어보니 하귤나무라고 하였다. 열매는 귤처럼 껍질을 까서 먹지는 못하고 말려서 차로 마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 하귤나무를 '송당일경'의 마스코트로 정하자!' 그렇게 하귤나무는 하귤이라는 애칭으로 '송당일경'의 포인트 나무로 심어졌다. 다음은 부지 경계면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았다. 사시사철 푸르고 제주를 대표하는 나무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좌읍에서 유명한 토종나무가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목록을 적어보았다. 감귤나무, 홍가시나무, 비자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이 여러 가지 나무 중에서 제주도 하면 생각나는 나무는 역시 동백나무다. 관리도 쉽고 겨울에도 꽃이 피는 나무. 조경 업체와 협의하여 애기 동백으로 결정하였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시선을 가릴 식물이나 나무를 구하는 것이었다. 외부의 오름과 먼바다 조망을 가리지 않으면서 2개 동의 시선을 살짝 가려주는 무언가가 없을까 하고 알아보던 중에 팜파스그라스라는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팜파스그라스는 더운 지방에서 만 서식하는 억새식물이다. 즉 제주도에 안성맞춤인 식물인 것이다. 키는 2m까지 자라고 가을과 겨울에 더욱 분위기를 업시켜 줄 관상용 조경 식물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70cm 모종 7개를 주문하여 가장 시선이 겹치는 2m 구간에 심었다. 팜파스그라스를 심고 5개월 정도 지나서 한 번 들려보았는데 헉 내 키만큼 자랐다. 하귤나무는 노란색의 하귤이 3개 달린 높이 2m에 묘목을 심었다. 애기 동백은 높이 1.8m로 조천에 있는 농원에서 구입하여 현장으로 가져왔다. 초록색의 잔디 마당과 낮은 나무 울타리가 있는 산책로로 분리된 마당을 만들었다. 제주도의 오름과 먼바다 조망일 펼쳐지는 돌담 아래에는 청사초가 하늘거린다. 그리고 하귤나무는 여행객들의 시선이 머무는 포인트가 되고 동백나무는 부지 경계면에서 생울타리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서로의 시선을 가려주며 저녁 조명에 감성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팜파스그라스는 덤이다.
3) 안개 정원과 송이석 깔기
좋은 흙도 구하고 정원에 심을 나무도 정했다. '송당일경'의 마스코트인 하귤나무는 오름과 먼바다 조망을 가리지 않는 정원의 앞부분 가장 오른쪽 모서리에 화단을 조성해서 심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현장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20~30cm 크기의 현무암 돌덩이로 하귤나무의 화단을 조성했다. 3단 정도 높이로 화단을 만들었는데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더욱 매력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현무암 화단에 쿨링 포그 안개가 분사되는 이끼 정원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실 건축 설계 당시에 정원 조경 공사에 안개 정원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건축주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손뼉을 치며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막상 미스트 안개 분사 시스템 설치에 대해서 알아보니 전문 업체에서 진행하게 될 경우 금액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생소한 공정이다 보니 거품이 많이 껴있는 것 같았다. '송당일경' 설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에게 쿨링 포그 시스템 설치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하였다. '까짓 거 내가 직접 자재를 구입해서 시공해 보지 뭐!'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른 쿨링 포그 설비 업체는 완전히 제외시키고 직접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안개 분사 시스템 판매처에서 자재비를 확인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쿨링 포그 시스템에 들어가는 미스트 노즐과 부속품, 폴리 우레탄 호스를 포함해서 10만 원 정도면 '송당일경' 안개 분사 시스템 설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업체가 부른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물론 내가 직접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설치도 그닥 어렵지 않았다. 판매처에게 설치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니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작은 노력으로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쿨링 포그 안개 시스템 자재를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건축주와 함께 미스트 노즐 7군 데를 설치하고 테스트를 위해서 물을 틀었다. 결과는 대만족. 지금은 급수 타이머까지 설치하여 자동으로 지정된 시간에 안개가 분사되고 있다. 그리고 화단에는 서리 이끼라는 이끼 식물도 심었다. 심었다기보다는 그냥 현무암 돌에 깔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보통 이끼 식물들은 습하고 그늘이 진 음지에서 살아가는 식물이지만 서리 이끼는 양지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안개가 나오는 신비로운 이끼 안개 정원이 완성되었다. 동이 틀 무렵 햇빛에 비치는 물안개를 볼 때면 쿨링 포그 시스템 설치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든다.
화단을 설치하기 전에 현무암 디딤석으로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송당일경' 산책로에 깔린 디딤석의 정확한 명칭은 현무암 부정형 판석 50t이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두께 5cm의 디딤석을 폭 60~70cm 정도로 정원과 대지 경계 면을 따라 건물 주변에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약 2달 전에 현장에 도착한 제주 송이석으로 디딤석과 디딤석 사이의 틈새를 채우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였다. 디딤석을 설치하는 낮 최고 기온이 39도로 땀이 비 오듯 했다. 나는 팔 토시와 모자를 쓰고 쭈그리고 앉아서 제주 송이석을 디딤석 사이에 채우는 작업을 직접 하였다. 조경 업체 인력 2명은 송이석을 마대에 담아서 디딤석위에 뿌리면 내가 뒤따라 가면서 디딤석 틈새에 채우는 작업을 한 것이다. 코팅 장갑을 끼고 일일이 송이석을 수작업으로 틈새를 채웠는데 나중에 장갑을 벗으니까 손톱 밑이 붉은 송이석 가루로 물들어 있었다. 얼마나 문뎄는지 장갑 바닥의 코팅이 다 떨어져 나가고 구멍이 나기 직전이었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조경 인부들에게 작업 지시만 하고 편하게 지켜볼 수 도 있었다. 인건비를 아낀다기보다는 내가 직접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송당일경' 조경공사에 대한 추억도 담고 내 땀과 노력이 스며들길 바랐다. 불볕더위 속에 디딤석 산책로 조성 작업은 2일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마당을 분리하는 나무 말뚝도 나와 일용직 이렇게 둘이서 전부 박았다. 나무 말뚝에 오일 스텐도 직접 칠하고 야자로프도 직접 매듭을 지었다. 하나씩 하나씩 제주를 담은 정원이 완성되어 갔다. 산책로 주변에는 저녁 어두움 속에 길을 밝혀줄 잔디등도 설치하였는데 잔디등 기초와 전기 배선을 위한 배관도 모두 내가 직접 설치하였다. 잔디등 위치를 정하기 위해서 저녁에 홀로 산책로를 얼마나 왔는지 모른다. 아마도 10번은 족히 넘었을 것 같다. 내가 직접 여행객으로 빙의가 되어 조명 위치를 정한 것이다. 육지에 있는 전기 업체에게 미안한 마음과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설치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장 적합한 위치를 정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남을 시켜 위치가 잘못되어 다시 설치하는 경우가 발생하느니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내가 설치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송당일경' 정원 조경 공사는 흙을 까는 작업부터 총 10일이 걸렸다. 정원의 조명까지 모두 완성하고 혼자 저녁에 현장을 찾았다. 조명 타이머를 모두 강제 on으로 돌리고 산책로를 따라 하귤나무가 있는 돌담으로 향했다. 돌담 위에 올라가 완성된 정원의 야경을 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울컥했다. 한동안 돌담 위에 서서 한없이 '송당일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