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은 언제인가요

by 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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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래향(夜來香)은 연두색과 하얀색이 밀집해 꽃이 달린다. 6월부터 11월까지 꽃이 반복해서 열리는데 이때 특이한 점은 낮에는 꽃봉오리를 오므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핀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향이 퍼지기에 이름도 야래향이다. 대부분의 꽃은 햇빛을 받으러 해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이니 참 재미있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야래향 같은 Y는 어떤 학생일까. 한번 이야기꽃을 피워보고자 한다.


Y는 우리반 반장이었다. 동양적이지만 서구적인, 세련된 외모와 학교에서 이름 날릴만큼의 운동실력, 좋은 학교를 가고자하는 의지와 그를 뒷받침하는 능력까지. 모든 사람이 좋아할 요소를 모두 갖춘 학생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쾌활하고 당찬 성격이었다. 학기 초 아이스브레이킹의 명분으로 장기자랑을 하면 먼저 나와 여러가지 장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이 일반적인 댄스나 노래는 아니었지만 그런 틀을 벗어난 새로움이 나는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다.


우리 학교는 매 학기 축구 반 대항전을 진행한다. 그 때마다 골키퍼로서, 스트라이커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우리 반은 그 많은 반 중 손가락안에 들어갈만큼 강한 반이 되었다. 나로서는 축구를 그렇게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되면서도 단지 '우리 반' 이라는 이름 하나로 연전연승할 때 기분이 좋았다.


수업시간 Y는 매번 칭찬을 받았다. 다른 교과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았고,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Y의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누구든 수업시간 Y를 보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 그의 눈은 빛났고, 자세는 올바름의 표본이었다. 아쉽게도 그만큼의 성과가 따라오지 못했지만, 수업 속 그는 무엇이든 성공할 것 같았다.


Y는 그런 학생이었다.


Y는 순수한 백지 같았다.

때묻지 않고 구김없이 먼지 한톨 없는 백지 같았다.

나는 첫눈 같은 백지가 순수함을 잃지 않고 그렇게만 앞으로 나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꽃이 활짝 피기 위해서는 힘찬 오므림이 필요한 법.

Y는 더욱 힘차게 도약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웅크렸나보다. 웅크린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Y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가정사는 어떤지 묻는 질문과 '수업 시간에 너무 많이 존다'는 이야기들은 Y에 대한 나의 강한 확신도 흔들리게 만들었다. 나는 담임으로서 Y와 Y의 어머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알고보니 Y는 해외에서 전학 온 학생으로 그동안 놓쳤던 한국에서의 교육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하교시간부터 새벽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인 대치동의 시스템은 잔혹했으며, 학원에서 듣는 한국 학생들의 노력은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해도 성과가 따라오지 않던 이유를 알게된 Y는 그동안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무섭게 달렸고, 자신을 막는 여러 환경적 요인을 다 제치기 위해 숨가쁘게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반작용은 학교에서 나타났고, 여러 사람의 걱정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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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낮과 밤이 존재한다.

낮은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고 모든 생명체가 호흡하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긍정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밤은 어두우며,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무섭고 우울한 모습을 이끌어낸다. 이런 편견 속에서 야래향은 고고하게 자신만의 의지를 뽑낸다. 낮에는 꽃봉오리를 모으고 있다가 밤에 활짝 펴 은은하고 매력적인 향기를 내뱉는다.


Y는 야래향이었다. 모두가 긍정적이게 바라보았던 '낮'의 모습은 오므리고 있던 꽃봉오리였고, 모두가 걱정하던 '밤'의 모습이야말로 활짝 핀 Y의 진짜 모습이었다. 더불어 '밤'의 향기는 다른 곳으로 자신을 퍼트릴 수 있는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생각대로 '남'을 규정한다. "누구는 어떻게 해야해. 누구는 항상 능력좋고 긍정적이야. 누구는 너무 더럽고 우울하기만 해." 위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행동만 할 수 있고, 그런 모습만 보였을 수 있다. 아니면 실제로 그런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을 '밤' 또는 '낮'의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의 '낮'과 '밤'은 이상하게만 보이고 어쩌면 누군가 그토록 원했던 사람을 놓치는 것일 수 있다.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학생이 술냄새 풍기며 등교하였는데 선생님은 화내기보다는 "왜"를 물어봤다는 이야기.


나도 학생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 같을 때, 맘에 들지 않을 때. 무작정 혼내기보다는 "왜"를 물어보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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