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입니다
C사의 학습지 교사는 2종류가 있다. 상담교사와 관리교사. 상담교사가 회원을 모집해서 가입시키고, 관리교사가 회원을 받아 관리한다. 나는 관리교사이다.
따라서 어머님들과의 첫인사는
"안녕하세요. 앞으로 OO이의 담임을 맡게 된 OOO입니다."이다.
담임이라는 인사 때문인지 다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다 같은 뉘앙스의 "선생님"은 아니다.
학습내용에 대한 문의나 아이의 학습에 대한 고민은 그야말로 ”선생님“
화상시간 변경, 화상버스를 놓쳤어요, 오늘 화상참석이 어려워요, 아이가 아파요는 “샘”
패드의 로그인이 안 된다, 비밀번호를 모르겠다, 결제카드를 변경하고 싶다, 패드가 안 들어가진다는 “고객센터“
하루에 10명-15명 정도 상담하고 그 외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다가 정작 화상수업 할 때가 되면 에너지가 방전된다. 나의 정체성이 관리교사인지, 고객센터 직원인지 헷갈렸다가,
‘어차피 업무시간 안에 하는 일인데 교사건 고객센터건 뭐 어때?’ 이렇게 정리했다.
그래도 꽤 난감한 업무가 있다. 바로 해지를 막는 것.
패드학습을 시작하면 처음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신기해하며 몇 날며칠 패드를 붙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지갑이 열리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이들의 집중력이란 매우 짧아서 처음의 호기심은 길면 한두 달, 짧으면 일주일이다. 이때부터는 아이와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어쨌든 돈을 냈으니 그만큼의 성과를 얻고 싶은 부모의 기대만큼 아이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 경우 얼르고 달래고 당근을 줬다가 채찍을 들었다가 이도저도 안되면 나에게 ‘해지’라는 카드를 내민다. 이걸 막아내는 것이 나의 업무.
최근 아이가 책을 매우 좋아해서 패드학습보다는 타사의 다양한 책을 접하게 하고 싶다며 갑자기 '해지' 요청이 들어왔다. 패드의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읽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건 나도 이견이 없었기에 일단은 패드학습과 타사의 책을 비교해 보시라고 2주간 시간을 드렸다. 2주 후에 아이의 학습률을 확인해 보니 (보통은 해지한다고 할 경우 그때부터 학습을 하지 않는다) 그전과 다름없이 학습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고, 엄마로부터
"아이와 얘기를 해봤는데 일단은 지금 하는 것을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저희 콘텐츠 중에 ****도 좋으니 들어가 보시고, ****도 같이 이용해 보세요."
"아, 네. 그럴게요."
그런데, 그 뉘앙스가 기꺼운 느낌이 아닌 비꼬는 느낌이랄까.
'해지는 안 하지만 너의 관리방식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으니 앞으로 잘해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했다.
며칠 후 그 아이의 화상수업을 마치고 상담전화를 했다.
"어머니, 우리 OO이 정말 열심히 학습하네요. 너무 예뻐요. 이번달에는 ***콘텐츠 추천드리고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에도 로그인하시면 글밥도 많고 내용도 자세한 책들 읽을 수 있어요."
"네"
대답이 짧고 화난 사람 같은 말투였다.
'타사로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간 건 본인의 선택이고, 난 성심성의껏 안내를 해주고 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지?' 점점 어이가 없어졌다.
그다음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네, OO어머니."
"지금 로그인이 안되는데, 비밀번호도 안된다고 하고."
"아, 그러시군요. 비밀번호.."
"아, 지금 됐어요. "
"다행이네요. 네 그럼 즐거운 오후 되세요"
전화는 끊겼다.
점점 무례해진다....
로그인하다가 안될 수 있고, 그럼 보통은 나에게 문자를 보낸다.
나도 업무를 하다 보면 받기 힘들 때가 많고 로그인 같은 문제는 대부분 해보고 안되면 비번을 초기화 해드리거나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다짜고짜 전화는 드물다.
한번 자신의 맘에 안 들었다고 말투와 행동이 점점 달라지는 것이 씁쓸하다. 이것도 업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해지를 안 한 걸 감사해야 하겠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선 무척 기분이 상한다.
일한 지 1년이 지나 재계약을 하고 첫 한 달은 파트장님의 표현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하라."였다.
정말로 이달은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힘든 한 달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는 해지문의를 막으려고 애쓰다 보면 다른 업무를 할 에너지가 바닥나기 일쑤였다.
이걸 버텨내지 못하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일을 계속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며
"선생님은 잘 해낼 거예요, "라는 파트장님의 격려를 믿는 수 밖엔 없었다.
아직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고, 다음주가 두려울 만큼 멘탈이 너덜거리고 있다.
그 와중에 '무례함'이라는 때아닌 폭탄까지 떨어지니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조를 찍고 있다.
이것도 업무라고 받아들이고 버텨내야 하는 걸까?
이번달 출근해서 만난 동료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안쓰럽게 보였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썩고 있지 않을까? 그 와중에 밀려들어오는 해지를 막아내고 상을 받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도 속이 썩는 건 마찬가지 일 듯. 1년 정도 되니 그동안 몰랐던 부정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 유감이지만, 이것도 경험이겠지.
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무례함을 만나게 될까? 난 잘 해낼 수 있을까? 질문과 한숨이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