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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겨울

천식은 힘들어

by 엄살

올해는 겁 없이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고, 주말부부로 살다 보니 겨울만 되면 신경 써야 되는 걸 잠시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런 나를 일깨우는 그의 기침소리!


"아, 눈 간지러워."

그는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다.

주말에 그가 오기 전 일과는 이불을 건조기에 돌려 고온 소독과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이다. 평일에는 그럭저럭 더럽게(?) 지내다가 금요일 밤에 급하게 청소를 하다 보니 환기가 안 된 날은 집안공기가 좋지 않다. 그런 날, 그는 들어오면서부터 기침을 시작한다.




집안 청소와 더불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게 침구류의 청결인데, 건조기가 생기면서 세상 편해졌다.


그의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를 알게 된 시점은 거의 10년 전이다. 그해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당시 3살이던 둘째가 외사시라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음이 터졌다. 며칠 후 그가 숨이 안 쉬어진다며 다니던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호흡기치료제를 입에 대고 쌕쌕거렸다. 대학병원에 다녀왔는데 몇 달 치의 약과 함께 "이불을 냉동실에 얼리던지, 바꿔라."라는 실현 불가능한 대안을 갖고 돌아왔다.


당시 우리 집은 5 식구가 사는 18평 아파트였다. 방이 2개에 거실 겸 주방이 있는 그 집은 다섯 식구가 살기엔 너무나 복 닦였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어려 다 같이 잠을 자느라 침대를 없애고 바닥에 라텍스를 깔아 뒀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 년 내 깔아 두고 밟고 다니니 집먼지 진드기가 얼마나 살기 좋았을지... 당시 우리 집 사정으로는 라텍스 세탁이나 이불을 바꾸거나 건조기를 들이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고, 매일 약을 복용하고 눈이 간지러워 기침을 하고 있으니 매우 예민해졌다.

나는 천식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던 데다, 그것에 관심을 가질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하루하루 버티는 거 자체가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병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상황이 나아진 건,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이다. 침대와 건조기를 장만하고 이불을 바꿨다. 그의 표현으로는 이 집에서 훨씬 살만해졌단다. 확실히 그전처럼 숨을 못 쉬고 쌕쌕거리거나 하는 증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힘든 계절은 겨울이다. 조금만 환기를 소홀히 해도 집안에 쌓인 먼지와 노폐물이 어김없이 그를 공격한다.


지난 주말,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그가 돌아오는 금요일 밤에 땀이 나도록 쓸고 닦고 했는데, 그다음 날 눈이 간지럽다는 얘길 듣고 한번 더 걸레질을 했다. 그래도 힘들다고 하길래 뭣 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환기를 못해서였다. 그런 주말은 내내 힘들어하다가 숙소로 돌아간다. 본인의 집은 워낙 청소를 깔끔히 해서 도착하는 순간 기침이 멎는다고 한다. 사실은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나가는 순간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웃프다. 이런 이유로 그가 주말에 집에 오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된다. 갑자기 집에 온다고 하면 더더욱.

'남편,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평소에 깨끗이 유지를 못하다가 집에 오는 날은 할 일이 안 하던 청소를 하려니 그게 힘들어서야.'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갑자기 집에 온단다.

"허걱! 내일 온다며?! 미안, 집이 좀 더러워."


매주 그에게 사과를 건넨다. 올 겨울도 비슷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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