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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부재

여보, 이번 주말엔 꼭 와야 해

by 엄살

샤워를 하고 나니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었다. 물은 한참 후에야 내려갔다.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낀 것 같은데…

마스크를 끼고 나무젓가락으로 스텐 철판을 걷어내니 시커먼 하수구 같은 게 모습을 드러냈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불순물을 걷어올려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정도면 됐겠지?‘


다음날 샤워 후에도 물바다는 여전했다. 남편이 봤으면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하수구를 뒤집어 다 끄집어냈을 거다. 아무튼 불편해 죽겠는데도, 내 능력밖의 일이라 주말에 집에 올 남편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깔끔한 성격답게 청소에 진심이다. 난 10분 만에 대충 끝낼 화장실 청소를 한 시간 걸려서 한다. 눈 씻고 봐도 안 보이는 구석구석 곰팡이를 어떻게 찾아내는지 신기하다. 락스를 소량 사용해 세균을 제거하고 반짝반짝한 화장실로 바꿔놓는다. 분명 냄새가 났었는데, 남편이 손을 대면 사라지는 마법.


“자기야. 다이소 가자.”

“뭐 필요한 거 있어?"

“아까 보니까 세면대 물이 잘 안 내려가더라고."

세면대의 물이 안 내려간다고, 걸레질할 밀대가 부러졌다고, 빨랫비누가 필요하다고, 각종 비닐장갑 고무장갑이 떨어졌다고 다이소에 가잔다.





남편의 깔끔함은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시댁에 가면 공기청정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참 쾌적하다. 어머니는 화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화분은 우리 집 거실에도 꽤 있다. 20년 넘은 아파트 바닥이 반질반질하고 장식장에 뽀얗게 먼지가 앉지 않으려면 매일 쓸고 닦아야 하는 것쯤은 안다. 간혹 어머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가도 변함없는 깔끔함이 유지되어 있는 걸 보면 어머님은 깔끔함이 몸에 배이신 분이다. 신랑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청소 스킬이 남다른 걸 거다.


그런 사람이 청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아내를 만났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바닥을 쓸 줄만 알았지 걸레질은 거의 안 해봤고, 당연히 걸레를 빨 줄도 몰랐다. 걸레 짜는 통돌이를 사야 한다고 남편이 주장하길래 하나 사 주기는 했다. 밀대도 사주고, 스팀청소기도 얻어오고, 나름 남편에게 맞춰주는 시늉은 하면서 살고 있다.






청소 말고 나의 관심사는 집 전체의 분위기와 가구배치다. 이사 오고 받은 꽃을 큰 소쿠리에 모아서 말렸는데 내 눈에는 그게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을 살리는 인테리어 소품이었다면, 남편에게는 먼지 쌓인 쓰레기였던 모양이다. 내가 코로나에 걸려 방 안에서 칩거하는 동안 거실을 구석구석 청소하다가 그 꽃무더기를 몽땅 버리고는 속 시원해했다. 처음엔 어이없었는데, 나한텐 버려도 금방 잊힐 물건이 남편에게 내내 신경 쓰이는 거였다니 서운한 마음도 오래가진 않았다.


현재까지 우리 집에서 변함없는 건, 이사 오면서 설치한 커튼과 블라인드, 주방의 천장등 정도이다. 나머지는 최대한 심플모드로 버리고 정리하는 중이다.


깔끔한 남편 덕에 난 걸레질도 하고 가구에 먼지 쌓이면 닦기도 하는 정도까지는 발전했다. 요즘은 앉아서 오래 일하다 보니 일 끝나고 바닥 쓸고, 걸레질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 운동하는 느낌이라 하루에 한 번씩은 한다. 청소하기 귀찮아서 장식품은 대부분 치워 버렸더니 빈자리에 남편이 디퓨저를 놓았다.


이렇게 서로 보완하면서 부족한 점은 메꿔가나 보다.


오늘도 화장실은 물바다였다. 며칠 만에 머리를 감은 게 원인이었다.

“남편, 미안하지만 빨리 좀 와줬으면 해…”

절박한 심정으로 주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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