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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데이트

가성비 따지는 부부

by 엄살

"이번 주말 스케줄이 어떻게 돼?"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주말부부는 매주 질문한다.


주말에 같이 장 볼 때가 많았는데, 요즘 들어 남편이 매일같이 야근하고 (숙소는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했다나) 주말에 집에 오면 에너지가 없어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밥은 간단히 먹자고 합의를 본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게 있단다.

커피숍에 가자고. 쿠폰이 생겼다며...

우리가 선호하는 쿠폰은 별다방, 케이크가 맛있는 그곳, 24시간 여는 어떤 곳 등 다양한데 공통점은 의자가 편하고 얘기하기 좋다는 것.

한동안 쿠폰이 없어서 커피숍에 앉아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생긴 케이크가 맛있는 그곳의 쿠폰으로 오랜만에 커피숍 데이트를 하려니 설렜다.


나온 시간이 12시라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을 주문했다.

요즘 먹는 양이 줄어서 김밥 두 줄을 둘이서 먹고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며 참 가성비 좋은 몸뚱이가 되었다고 좋아했다. 예전엔 먹고 싶은 게 많아도 돈이 없어서 못 먹었는데... 최근 들어 각자 운동하고 식단에 신경 쓰다 보니 식탐도 줄도 돈도 아끼고 일석이삼조다.


커피숍에 가면 남편은 보통 아아를 주문한다. 단걸 잘 못 먹고, 시원한 걸 좋아하는 취향에 딱이다. 나는 매번 다른 걸 시킨다. 오늘은 겨울의 시그니처 뱅쇼를 골랐다. 티라미수도 추가.


뱅쇼와 티라미수


아아 한 입, 케이크 한 입을 음미하는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이 맛이지. 단거 한입. 고소한 거 한입. 저번엔 케이크도 커피도 달아서 힘들었어."


차가 식는 게 싫어서 빠르게 원샷하는 나와 달리 그는 항상 천천히 여유 있게 차를 마신다. 그 덕에 난 내 거 다 먹고 그의 것까지 먹기도 하지만, 천천히 먹는 습관은 닮고 싶은 모습이다. 어차피 다 아는 맛. 뭘 그렇게 급하게 밀어 넣으려고 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여유 있게 누려보자는 생각을 한다.






“나 올해 진짜 힘든 것 같아.”

그는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한다. 올 들어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았고 그것을 소화해 내느라 주말출근을 밥먹듯이 하니 월요병도 없어졌단다.

“자기는 힘들지만 성장하고 있어!”

난 이번에도 엄지 척을 해주며 그의 얘기를 듣는다.


처음 해보는 것을 어려워하고, 속도를 내기보다는 천천히 차분하게 가는 그에게 새롭고 중요한 일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나에게 이해되는 성향은 아니지만, 그저 그 자체로 인정한다.


매일 전화통화로 핵심적인 얘기는 대부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말에 만나 듣는 얘기는 핵심에서 더 들어간 초핵심적인 얘기다.

‘이걸 마음에 담아두고 참고 있었다니…’

이럴 때 보면 나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내심이 있고, 속이 깊다.


오늘 주제는 회사와 일 얘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처음으로 리더가 되어서 파트너들과 일하다 보니 요즘 MZ세대의 모습이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나온다.

“이 얘긴 그동안 못 들었던 주제인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처음으로 중년의 리더 느낌이 살짝 나네. “


아직 커피도 케이크도 남았고,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갑자기 일어나잔다.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데이트하다가 배 아파서 집에 간다니…ㅎㅎㅎ

뭘 해도 편안한 데이트라 더 좋다.


주중에 통화를 한다.

“자기야, 나 이번에 쿠폰 생겼는데, 별다방이야. 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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