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좋아하세요?

나에게 주는 잠깐의 쉼표

by 엄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시 한숨 돌리려고 책 한 권 챙겨서 침대에 앉았다.

저녁때가 다 돼 가는데 자꾸 눈이 감긴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 저녁 차릴 시간인데... 잠시만 자고 일어나자. 순간적으로 너무 졸리네.'

"시리야, 10분 후에 알람 울려줘."


"까르르르"

저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 웃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마취제를 투여한 듯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30분 같은 10분이 흐르고 알람소리에 깨어났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방전 직전에 빨간불이 깜박거리는 상태였는데 그새 50% 정도 충전된 느낌이다. 몸이 개운하니 아이들 저녁이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최근 들어 한 번씩 낮잠을 잔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하필 그전날 잠이 부족해서 점심식사고 뭐고 침대로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잤다. 2시부터 시작되는 학습지 업무시간에 맞춰 간단한 점심을 챙겨 노트북 앞으로 가서 앉으니 오전보다 훨씬 나아진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었다.


N잡러로 살기 시작하면서, 몸은 하나인데 늘어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일을 했다. 처음 밤을 새운 건 시립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교육의 일환으로 책 작업에 참여하면서였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신나서 열정적으로 파고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날이 밝아왔다. 출근하려고 일어난 남편이 놀래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혼 10년 만에 (아이 때문에 깨는 거 외에 닭병 걸린 것처럼 매일같이 자는 것만 보다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단다.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내일 배움 카드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4개월 동안 디자인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밥먹듯이 밤을 새웠다. 비전공자에게는 워낙에 힘든 과정이라고 하는데 더구나 난 평상시 그림을 그려본 적도, 프로그램 사용도 해본 적이 없어서 부족한 시간을 잠을 줄여 메꿨다. 우여곡절 끝에 수료 후 취업을 위해 원서를 넣었는데, 기혼에 아이 셋에 40대인 신입을 뽑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로 일하기에는 경험이 전무했다. 다행히 가까운 지인이 북디자이너라 반년정도 옆에서 실무를 배우면서 재능기부로 책 2권 정도를 디자인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서, 눈이 많이 오던 날 교회에 다녀오던 길에 뷰티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그쪽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자유로운 출퇴근이라는 근무조건에 일주일 후에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은 시간적으로 자유로웠지만 SNS를 통해 나를 알리는 작업이 중요한 과제였다. 매일같이 영상을 촬영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다 보면 새벽 2-3시에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중간에 시립도서관에서 출판작업에 대한 의뢰가 들어와 낮시간에는 인터뷰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콘텐츠 작업을 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난 많이 지쳤다. 내가 하는 일들이 아이들 옆에 있어주는 시간은 확보해 주었지만, 실제로 일한 것에 비해 돈은 거의 벌지 못하는 '빛 좋은 개살구'같았다.


그즈음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난 참 인복이 있다!) 학습지 일에 대해 소개받게 되었다.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목표였지만 당장은 반 프리랜서가 되더라도 안정적으로 돈을 벌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학습지 교사를 시작하고 두 달 여가 지나 연말이 되었다. 시립도서관에서 진행하던 책 작업까지 겹쳐서 연말 내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며칠간 잠을 줄여서 몽롱한 상태였고, 곧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귀가 먹먹했다. 이어폰을 빼도 끼고 있는 것 같은 먹먹함이 두어 시간 지속되다가 없어지고, 그다음에는 두어 시간이 세네 시간에서 하루종일로 늘어났다. 동네 병원에서는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진단서를 써 주었다.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종합병원에 가서 두 시간 정도 검사를 받고 들은 이야기는 귀에 특별한 이상은 없으니 스테로이드제를 한동안 먹어보고 일을 할 때 되도록 이어폰을 되도록 끼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한동안은 너무 절망스러워서 저녁에 학습지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예민한 상태가 되어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귀가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태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니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유독 일이 몰려서 무리한 날은 귀가 꽉 막혀서 통증까지 느껴지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그전에 학습지 일을 했다는 후배가 내 얘기를 듣고 한의원을 소개해줬다. 본인도 비슷한 증세가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난 한 줄기 희망을 갖고 그곳을 찾아갔다. 내 얘기를 쭉 듣고 맥을 짚어본 선생님께서는 한동안 과도하게 일에 집중하면서 몸에서 약한 부분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내 경우는 약한 부분이 귀 쪽이라는 말씀. 일주일에 두 번 침을 맞고, 한약도 먹고 더불어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두 달 후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일정도 잡혀있는지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열심히 한의원에 다녔다. 여행은 무사히 다녀왔고 그 후에도 주 1회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어쩌다 보니 3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N잡러로서의 시간을 쭉 훑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잠을 과도하게 줄이면서 몇 년간 몸을 혹사시켰더니 귀에서 이상신호를 보냈고, 그 덕에 지금은 몸을 돌아보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겨울까지 매년, 추위를 피해 집에 틀어박혀 책 읽으면서 따뜻한 간식 먹는 것을 꿈으로만 꾸었었다. 귀가 아픈 이후로 조금씩 내 몸을 돌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올 겨울은 몇 년 만에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달렸을 나를 생각하면 식겁한다. 올해는 연초부터 11시 취침 6시 기상이라는 계획도 세웠는데, 아침잠이 많은지라 11시 취침은 자꾸 시간을 넘기고 6시를 훌쩍 넘어 8시에 눈이 떠지고 있다. 확실히 잠을 많이 자니까 먹먹한 증상이 조금 덜하고 통증도 약해졌다. 그래도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낮잠까지 추가하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개운함도 경험한다.


나이를 생각지 못하고, 무조건 잠을 줄여 성과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무지했던 행동에 브레이크가 걸려서 매우 다행이다. 지금부터는 (길게 달리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고, 일은 줄이고, 마음을 돌보면서 속도를 줄여서 달릴 것이다. 빨리 달리느라 놓쳤던 풍경과도 눈 맞추고 인사하고 가끔은 쉬어가기도 하는 한 해를 보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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