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매일 하나요?

설거지가 쉬워지는 방법을 찾습니다

by 엄살

학습지교사 일은 보통 저녁 8시 넘어서 끝난다. 다행히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미리 저녁을 먹기에, 일 끝나고 저녁까지 차려야 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식사한 흔적이 가득한 식탁을 치우고 나면 개수대에서 하루종일 차곡차곡 쌓인 그릇과 수저, 컵들이 불청객처럼 인사를 한다. 순간 고민이 시작된다. 설거지를 오늘 할 것인가, 내일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부탁할 것인가. 보통은 '난 밤에 집안일하는 게 제일 싫어. 특히 설거지는...'이라고 지친 나를 합리화시키며 내일로 미룬다. 문제는 내일 스케줄이 있을 때이다. 내가 없을 때 설거지가 쌓여있고 아이들이 그 상태로 밥을 먹는다는 상상을 하면 끔찍해져서 "휴" 한숨을 쉬고 고무장갑을 낀다.


설거지에는 순서가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사장님께 배웠다. 설거지용 수세미를 여러 개 준비해 놓고 먼저 컵부터 씻어낸다. 컵은 물 또는 음료만 담았으므로 수세미로 가볍게 한번 문질러 헹궈내면 끝. 그다음은 비교적 깨끗한 그릇, 마지막으로 기름때나 고춧가루 등이 묻은 그릇과 요리용 프라이팬을 뜨거운 물로 적셔가면서 문질러 씻어 낸다. 이건 사장님께 배운 건 아니고, 유튜브에서 본 건데 설거지를 하면서 물을 팔팔 끓여서 숟가락 젓가락 등 식기에 부어준다. 한번 더 끓여서 설거지가 끝나고 개수대와 수세미에 부어주면 확실히 깨끗해진다.


한동안은 강의나 유튜브를 틀어 놓고 보면서 설거지를 했다. 아무래도 나의 촉각이 강의나 유튜버에게 쏠려 있어 설거지는 대충 하게 되었다. 생각이 너무 많고 몸도 피곤했던 어느 날 설거지를 다음 날로 미룰 수 없어서 아무것도 틀어놓지 않고 조용히 고무장갑을 끼고 개수대 안에서 그릇과 컵 분리작업을 먼저 했다. 이상하게 그것만으로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듯했다. 컵용 수세미를 들어서 컵을 하나씩 문질렀다. 오로지 설거지 자체에 집중하니 깨끗해지는 컵이 늘어날 때마다 기분이 나아졌다. 그릇 차례가 되었다. 물에 불린 그릇들을 그릇용 수세미로 문지르는데 개운함이 몰려왔다. 팔팔 끓인 물을 식기에 부어주고 또 물을 끓여 개수대에 부으면서 끝났다는 상쾌함과 내일 할 일을 해결했다는 성취감도 들었다.


스크린샷 2025-01-25 213601.png 출처. 핀터레스트 (저희 집 주방과는 거리가 있어요^^;;)


그럼, 그다음부터 난 매일 저녁 설거지를 했을까? 대답은 "노우"이다. 설거지에 집중할 의지가 매일 생기진 않았다. 부자가 되는 법칙 중, 혹은 진짜 대단한 사람의 습관 중에는 '밥 먹자마자 설거지를 한다' 혹은 '그날 할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다'라는 항목이 있는데, 나는 부자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는 틀린 건지 자주 설거지를 미루고 다른 일을 선택한다.


어쨌든, 설거지는 미루고 미뤄도 결국 해야 한다. 매일 밥을 먹으니 말이다. 어느 날은 설거지 양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그릇과 수저의 수를 정하고 나머지를 높은 찬장으로 옮겼다. 바쁘고 사용할 그릇이 없던 날 찬장의 문은 활짝 열렸고, 그날 개수대는 더욱 혼잡스러워졌다.


때때로 설거지가 넘쳐나는데 바쁜 날은 5분, 10분의 시간을 정해 그 시간만큼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양만 하고 나중에 나머지를 하기도 했다.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아이들에게 식사가 끝나고 1인당 5-10개씩만 설거지를 하라고 부탁(이라 쓰고 명령이라 읽는다)했다. 세 명이서 10개씩 설거지하면 얼추 끝났을 것 같은데 확인해 보면 아니다. 양은 좀 줄었지만 여전히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도 저도 만족스럽지 않으니 매일 밥 먹듯이, 화장실 가듯이, 잠자듯이 당연히 해야 하는 루틴에 설거지를 넣어보려 한다. 정해진 시간에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무념무상으로 해 보는 방법 말이다.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차라리 식기세척기를 사세요."


"저는 주방 살림을 늘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해 김치 냉장고도, 에어프라이어도 들이지 않는답니다. 운동하는 기분으로 집안 청소하듯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용도로 설거지에 다시 집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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