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동안 대중교통 15번 이용하기

재택근무자의 도전기

by 엄살

작년 연말부터 우리 동네에 GTX 운행이 시작되었다. 서울역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다고 동네 주민 단톡방이 시끌시끌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다자녀는 교통비 50% 할인을 받는다는 꿀정보를 던져줬다. GTX가 좋긴 하지만 서울까지 한 번에 4000원이 넘는 차비가 드는 걸 생각하면 선뜻 타기가 망설여졌는데, 50% 할인이라니! 바로 K패스 앱으로 들어가 다자녀 정보를 입력했다.


1월의 첫 서울 나들이를 GTX로 시작했다. 집에서 용산까지 한 시간 반 걸리던 걸 한 시간도 안 걸려 주파하다니... 얼마나 신나던지. 더구나, 50% 할인된 금액에 말이다.


1월 내내 지하철 노선도와 달력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 얼굴을 떠올렸다. 물론 겨울방학이고, 오후엔 재택근무가 있어 날개 달린 듯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상황과 체력이 허락되는 건 아니었지만.


1월 중순쯤 K패스 앱에 들어갔다가 뜻밖에 잊고 있던 사실을 발견했다. 50% 할인을 받기 위해선 한 달에 대중교통을 최소한 15번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말이다. 15번을 채우지 못해서 작년 하반기에 (그때는 할인률 20%였다) 거의 할인을 받지 못했다. 12월에는 웬일로 19번을 채워서 할인을 받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의원에 치료받으러 다니느라 자연스레 횟수가 채워졌었다.


아뿔싸... GTX 50% 할인을 포함해 이달에 이미 할인금액이 7000원이 넘었는데, 앞으로 8번을 더 타지 못하면 다 날아갈 판이었다. 더구나 마지막 주는 설 명절이었다. 명절에 가족들을 두고 나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만무했다. 그러면 일주일 동안 8번을 타야 하는데... 잔머리를 굴려서 아침저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건수를 만들어볼까 했지만 올해부터 바뀐 K패스 규정에는 하루에 2번만 인정해 준다고 했다.


달력을 째려보며 일주일의 스케줄을 꼼꼼히 손가락으로 세어보았다. 서울 나갈 때 올 때+2, 다른 날은 갈 때만 +1 올 때는 신랑차 타고 귀가, 둘째 아이 교복 바꾸러 가는 날 가자마자 바꾸고 바로 돌아오느라 환승되어서(이런 상황에서는 환승도 반갑지 않으니 이 무슨 배부른 심보인지...) +1, 그날 오후에 첫째랑 도서관 갈 때 버스 타고 올 때 탔지만 하루에 2번만 인정된다고 했으니 +1, 일요일에 교회 갈 때만 버스 타고 올 때는 걸어오던걸 한 번이라도 횟수를 늘리기 위해 갈 때 올 때 다 탔더니 +2. 아이들이 웬일이냐며 좋아했다.(나의 검은 속내는 모르고^^;) 이렇게 일주일 동안 7번을 채웠다. 대중교통 이용 +1을 남기고 명절연휴가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연휴 마지막날이 되었다. 나에겐 연휴 마지막 날인 것보다 미션인증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더 중요했다. 하루 전에 대중교통 한번 타는 미션(?)을 완수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명절 마지막날 오전 내내 머리를 굴렸으나 딱히 갈만한 데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서관만 열었어도 고민 해결인데, 오늘 같은 날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하는 것도 민폐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가서 아무 버스나 타고 돌다가 돌아오고 싶진 않았다.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잠시라도 나가서 바람 쐬고 싶어 보이진 않았다. 급한 대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별일 없으시면 차 한잔 하실래요?"

전화를 걸면서도 명절동안 친정에 시댁에 이리저리 바빴던 내 몸은 솔직히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 오늘은 집에서 좀 쉬고 싶은데?"

엄마의 몸도 나와 같은 신호를 보냈나 보다.

결국, 그날 외출은 무산되었고 난 하루종일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쉬었다.


대망의 마지막날은 아침부터 모임이 있었다. 지인의 차를 타고 같이 가는 모임이라 대중교통은 언감생심이었다. 더구나 아침부터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미션만 아니면 마음껏 즐길만한 탐스러운 눈이었다. 모임이 늦게 끝나서 헐레벌떡 재택근무를 하러 뛰어들어왔다. 오늘따라 초반부터 거의 한 시간에 걸쳐 교육이 있었다. 엉거주춤 앉아서 눈은 모니터를 보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밤이 되어버리면 미션을 까먹거나 놓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터였다.


눈이 많이 온다고 신나게 밖으로 나갔던 막둥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왔다.

"엄마, 밖에 나온 사람 중에 혼자 나온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다 엄마아빠 아니면 언니오빠, 그것도 아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나왔단 말이에요."

"그래? 엄청 속상했겠네."

그 순간, 잠시 나갔다 오기로 결단을 내렸다.


오늘은 수업이 늦게 있어서 한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장갑을 여러 개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막둥이가 만든 눈사람을 사진 찍어 주고, 집에서 가지고 나간 오리랑 곰돌이 만드는 틀로 신나게 오리와 곰돌이를 만들었다. 막둥이가 손 시리고 춥다고 해서 잠시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걸어서 갔다가 마트 앞에서 집까지 한 정거장 버스 타고 오기. 이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간단히 장을 보고 막둥이에게 간식도 하나 사주고 나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걸어가면 집에 도착했을 시간에 한정거장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니... 막둥이가 막 웃어대는데 버스가 왔다.

"바로 내릴 거니까 준비해."

"네, 그런데 너무 웃겨요."

버스에서 내렸다.

다 이루었다.






눈이 그쳐 녹고 있는 질펀한 길을 막둥이랑 걸어갔다.

"발 시려요."

"운동화가 다 졌었네. 엄마가 따뜻한 신발 사줘야겠다."


KakaoTalk_20250201_223833036.jpg 2025년 1월의 마지막날 막둥이의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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