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껍데기에 찔려보니

by 엄살

"다녀오겠습니다."

막둥이를 시작으로 첫째, 그리고 둘째까지 현관문 저편으로 사라졌다.


가스레인지 옆에 어제저녁 아이들이 요리하고 난 흔적들이 남아있다.

단골 메뉴, 달걀프라이를 하면서 나온 달걀 껍데기들이다.


평소 같으면 쓰레기봉투를 씌운 쓰레기통에 바로 던져 넣었을 텐데 오늘은 쓰레기가 가득 차 있어 달걀껍데기는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으로 떨어졌다. 주워서 쓰레기봉투 위에 올리면 또 떨어질 것 같아 손에 쥐고 부서뜨려서 넣기로 했다. 지금껏 톡 떨어뜨리기만 해도 달걀이 깨져서 참 약해 보였던 껍데기가 막상 부서뜨리려니 갑자기 딱딱해 보였다. 그래도 얼른 부숴서 쓰레기봉투에 넣자는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었는데 순간 가운데 손가락이 '따끔'했다. 깨진 달걀 껍데기의 날카로운 부분에 찔린 것이다.




설거지통으로 가서 비누로 양손을 문지르고 거품 내 씻었다.

미뤄둔 설거지통 안에 차있는 그릇들을 외면하고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빨래통에 가득한 개켜야 하는 빨랫감, 머리빗과 핀이랑 볼펜과 컵 등이 올라가 있는 식탁, 운동하는 용도로 배치했건만 옷걸이로 사용되는 기구들, 흙도 갈아 주고 물도 주고 영양제까지 주었는데 꽃을 피우지 않아 애태우는 제라늄과 스파티필름과 군자란 등의 초록이들... 아이들 물건이 잔뜩 올라가 있는 거실 한편의 내 책상... 다 눈에 보이지만 지금은 정리하거나 청소할 마음이 안 생기니 패스하기로 했다. 대신 거실 창 안으로 가득 들어온 햇살을 눈에 담는다.


KakaoTalk_20250329_223354484.jpg 봄날 아침, 햇살이 만들어 놓은 작품

햇살 가득한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한동안 자주 여기 앉아서 '땅콩버터사과샌드위치'를 먹었는데... 그때가 겨울을 지내던 몇 개월 전이었다니... 그동안 나는 뭘 하며 산 걸까?






긴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시작되는 3월은 아이들에게도, 엄마들에게도 참으로 긴 달이다. 매년 3월 말이 되면 그동안 고생했다며 서로를 칭찬하고 보듬고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4월을 맞이했다.


올해는 평소보다 두 배는 긴 듯한 3월을 보냈다. 뭔가를 준비하고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매일 주어진 인증과 독서, 글쓰기, 일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숨을 헐떡거리며 마무리하고 잠들고 일어나면 또 반복하는 일상. 그 와중에 뭐 하나라도 나를 건드리면 바로 예민병이 도졌다.


이렇듯 멈추지 못할 때 내게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순간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끼는 '따끔'.

하고많은 것 중에 달걀 껍데기에 찔리다니...

그러고 나서 보니 깨진 껍데기는 굉장히 날카로웠다.

매일 구운 계란을 먹고, 자주 달걀이 들어간 요리를 하는데 그동안 달걀껍데기에 한 번도 찔린 적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 달걀을 다룰 땐(?) 그전과 다르게 조심해야지.'






한 달에 한번 출근하는 학습지 출근날, 엊그제 인사만 하고 피곤해서 도망치듯이 나왔는데 우리 파트 샘들끼리 그랬단다. "작년 하고 다르게 올해 많이 힘들어 보인다."라고.

마음속이 얼굴로 안색으로 모두 드러나는 나의 상태를 콕 찝힌 듯했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 4명 중 한 사람은 꿈을 찾아 꽃집으로, 한 사람은 남편의 사업체로 떠났다. 두 사람이 은근히 부러워지는 마음을 담아 주말에 집에 온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돈 버는 게 쉽지 않아."

남편은 그저 씩 웃는다.


달걀껍데기에 찔려 그동안 찔리지 않았던 것을 감사했던 하루가 지나자마자 다른 문제가 '따끔' 찌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책 제목이다), 난 지금도 청춘인가 보다.


아직은 달걀껍데기를 볼 때마다 왼손 세 번째 손가락이 움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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