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어디 갈까요

봄바람은 살랑거리고

by 엄살

매주 일요일 오후는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이다.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서 배고플 때만 엄마를 찾는다.


오전에 교회에 갈 때는 '다녀와서 좀 쉬어야지.'라는 마음을 먹지만

돌아올 때는 따뜻한 햇볕에 마음이 나긋나긋 해져서는

'오후에 어디라도 나가볼까?'

하는 E성향 특유의 '나가서 에너지 받기' 버튼이 '반짝' 켜진다.


문제는 딱히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누굴 만나기에는 내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어 '수다'는 힘들고,

혼자 나다니자니 왠지 심심하고(밖에서 혼자 밥 먹는 거 잘 못함)

그냘 나가서 걷고 싶은데 목적 없이 걸으면 불안해지는 타입이라 목적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집에서 오후 내내 있었던 날은

에너지를 받기는커녕

저녁 차릴 힘도 없이 비실거리는 스스로를 경험하고는 어디라도 나가보려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보고 싶은 책 있었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의 '부엉이 책방'만 갈게 아니라 오늘은 버스 타고 근처 도서관으로 가볼까?'

겨울 동안 춥다는 핑계로 잠시 방문이 뜸해졌던 근처 도서관을 목적지로 정했다.


그곳은 3층 건물에 책도 많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언제 가도 이용자가 많아 활기가 넘친다.

메모장에 적어놓은 보고 싶었던 책 목록을 열어보니 꽤 쌓여있다.

이 중에 도서관에 있는 책을 검색해 보니, 거의 다 있다.

없는 책은 그 근처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다른 도서관에 있다.

'기왕 움직이는 거 도서관 두 군데 다 가서 몽땅 빌려오지 뭐.'

목적지가 생기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메면서 기대감이 샘솟는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으로 신나게 걸어갔다.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절친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대출목록을 들여다보며 어떤 책부터 찾을까를 구상해 본다.


승무원출신 공연기획자가 쓴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

예약자가 많은데 운 좋게 내 차례가 다가온 <불변의 법칙>


이 두 권을 대출하고는 다른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따뜻하고 정겨운 공기를 음미하면서 잠시 앉아있고도 싶었지만,

다음 목적지에서 대출할 책이 궁금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버스로 4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다른 도서관은 약간 외진 곳에 있지만

큰 펜션에 간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근처에 '물푸레나무'가 있어 '물푸레 도서관'이라는 어여쁜 이름의 도서관이다.


다른 도서관에는 없어서 큰 글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한 <스토너>

불변의 법칙과 같은 저자라 궁금해서 보고 싶었던 <돈의 심리학>

묵직한 두 책을 가방에 넣으니 순식간에 무게감이 생겼다.


대출할 책을 모두 찾았음에도 환한 빛의 유혹으로 결국 신발을 꿰어 신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정류장을 거슬러 걸어보기로 했다.

바람이 좀 불지만 햇볕이 있는 인도를 걷는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예전에 여기 어디 베이커리에서 독서모임 회원들이랑 '샌드위치'를 먹었던 것 같은데...'

생각하다 보니 '물푸레나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스크린샷 2025-03-22 211509.png 출처. 파주문화관광, 교하 물푸레나무(경기도기념물 제183호)이 사진은 꽤 오래전에 찍힌 사진으로 지금은 물푸레나무 뒤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역시 걷길 잘했다. '물푸레나무'를 실제로 보고 나니 확실히 각인되는 효과.(희한하게 그 주에 만났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물푸레나무가 여러 번 화제로 등장했다)


집에 돌아오니 그제야 살짝 허기가 지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방으로 들어가 대출해 온 책들을 훑어보았다.

예전엔 급하게 대출해 와서 읽지도 못하고 제목만 째려보다가 반납한 책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한번 훑고 나니 어떤 책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 감이 잡혀서 읽을 계획을 세우기도 수월했다.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엔 다가올 독서모임 준비를 위해 또 도서관을 방문하려고 한다.

지난번엔 버스를 타고 갔으니 이번엔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볼까?


날씨가 더 따뜻해져서 살랑이는 마음에 벌써 들썩거리며 도서관 책 목록을 검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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