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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화

세상의 모든 주말부부에게

by 엄살

매일 자기 전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밤이 되면 에너지가 극도로 떨어지면서 예민해진다.

그 시간에 전화가 오면 피곤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어, 자기~~"

목소리만 들어도 남편은 나의 상태가 어떤지 바로 알아차린다.

아이와 실랑이하고 씩씩대면서 전화를 받으면

"무슨 일 있나 보네."

영락없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면 난 또 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이야기하고 남편은 그걸 끝까지 다 들어준다.

사안이 심각해 본인이 중재를 해야겠다 싶으면 나랑 통화를 마친 후

아이에게 전화할 때도 있다.


안 피곤한가?

생각해 보면 그도 피곤하겠지만 올빼미 형이라 밤에 에너지가 생기는 편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각별해서 엄마한테 혼났다고 하면 안쓰러워 위로해줘야 하는 따뜻한 아빠 캐릭터이다. 전화 오는 시간 대부분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지만 가끔 아이들이 깨어 있어 낄낄대고 장난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송되면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단다. 아이들이랑 같이 있는 나를 엄청 부러워한다. 그 부분은 안쓰럽다. 지금 상황이 반대가 되어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있고, 나보고 일주일간 밖에 있으라면 난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살가운 엄마는 아니지만 매일 얼굴 보고 같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와 아이들에게 너무나 부드럽고 좋은 아빠지만 일주일간 떨어져서 지내는 걸 견딜 수 있는 아빠여서 다행이다.


일이 많은 월 초엔 일주일 내내 예민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일주일 내내 전화받는 목소리도 화가 나 있다. 주말에 만난 남편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내 목소리가 화나 있어서 서운했단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 전화해서 목소리 듣는 게 삶의 낙이라면서...(이런 표현을 글로 옮기면서도 닭살이 돋는데 남편은 잘도 이야기한다) 그의 애교 섞인 말투에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 후부터 나도 기분 좋게 전화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간혹 그도 힘들거나 스트레스 상황이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T유형인 난 뭐라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괜히 입을 뻥긋한 날은 통화만 길어지고 서로 감정만 상한다. 어차피 답은 다 알고 있고, 맞장구만 쳐주면 되는데 그걸 참 못한다.


간혹 12시가 넘어도 전화가 안 온다. 대부분 예상되는 범위는 늦게까지 야근하거나, 운동이 늦게 끝났거나, 깜박 잠들어서 정도. 술을 마셔서 엄청 취했어도 "자기 나 잡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하고 끊으니 말이다. 그럴 땐 전화를 건다. 웬일로 전화를 걸었다고 반색하며 받아준다. 그게 또 감동이라 내 마음속 애정지수(?)가 올라간다.


글을 마감하는 날은 12시를 남겨두고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마음이 바쁘다. 글을 연재하는 자체에 의미를 두자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는 중에 전화가 온다. 한 번은 12시가 넘어 통화를 마치고 글을 올리려고 했더니 그다음 주로 넘어가버려 연재를 놓친 적이 있었다. (브런치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그래서 마감하는 날은 "자기, 나 마감." 하면 "알겠어." 하고 굿 나잇 인사만 하고 끊는다. 이런 게 서운하지 않은 관계라 감사하다.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걸 알기에 가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한다. 전화로 살짝 맛보기를 보여주면 가끔 주말에 전체 내용을 읽어달라고 한다. 내용을 읽어주다가 여기까지 쓰도록 영감을 준 게 고마워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어떤 날은 통화를 하다가 "자세한 얘기는 주말에 만나서 해." 해놓고 주말에 만나서는 다른 얘기만 실컷 하다가 "나중에 통화로 해." 한다. 집안의 온갖 것들을 의논하고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받은 것 등등의 얘기를 하다 보면 아~하면 어~하는 그러면서도 한 번씩 의견 차이를 좁히지 않고 평행선을 그으며 싸운다.


전화 올 시간이 됐다. 어젠 워크숍을 다녀와서 술에 절어진 목소리로 집에 잘 들어왔다는 한마디를 하고 끊었는데 그 후속 편이 궁금하다. 밤이라 잠이 쏟아지니 길게 통화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매일의 의식처럼 통화를 마쳐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든다.


다른 주말부부들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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