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퇴사시절 이야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4월, 남편은 갑자기 퇴사를 했다.
그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꺼낸 지 일 년 만이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처럼 세상물정을 몰랐던 난, 매일 새벽같이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퇴사를 반겼다.
처음 한 달은 남편이 집에 있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들뜬 마음으로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차에 태워 집 근처 여기저기를 다녔다. 그 무렵 신혼여행으로 가려고 했다가 만 '제주도'도 다녀왔다. 막내가 24개월 전에 다녀와야 막내 비행기표가 공짜라는 정보가 큰 작용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고부터 실업급여로 생활했다. 실업급여는 생필품과 식료품 구입비로 다 사라졌다.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자영업을 해보겠다며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당시 이모부가 광명시에서 누룽지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보내주신 누룽지를 한두 번 먹어보더니 맛있다며 궁금해했다. 이모부네 누룽지는 현미를 눌러서 만든 고소하고 건강에도 좋은 누룽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광명시로 차를 몰았다. 결혼하고 이모랑 이모부를 만나러 가는 게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죄송한 마음이었다.
누룽지 가게는 시장 안에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사가는 식이었다. 이모부는 오픈된 매장 안에서 누룽지 기계를 여러 대 놓고 직접 눌러서 한 장 한 장 만들어진 누룽지를 개수대로 포장하고 계셨다. 다른 일도 겸하고 계셨고, 이모도 일을 하고 계셔서 무념무상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우리 상황 하고는 맞지 않는 듯했다. 이모는 가게에서 파는 건강식 간식과 누룽지 그리고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광명시 나들이는 말 그대로 그저 나들이가 되었다.
한동안 누룽지와 연관해서 가게를 열어보겠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나는 뒷목을 잡았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선 굉장히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남편이 자신의 일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이상적이랄까. 예를 들면 누룽지 가게를 여는데 그 안에 히어로물을 갖다 놓고 장식을 하고 문 여는 시간은 줄이고 장사를 하겠다든가. 마치 누룽지라는 콘셉트에 맞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듯한.
슬슬 같이 있는 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갑자기 산에 가겠다며 나서더니 동네의 산을 하나씩 정복해 보겠다며 '등산바지'를 사달라고 했다. 그 김에 등산용 신발까지 세트로 신고 5-6개 정도 산에 다녀왔다. 덕분에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다녀온 산에 가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흐르자 자연스레 원래 일하던 계통의 1급 자격증을 따기로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공부하다가 동네 도서관에 가다가 결국 독서실에 다녔다. 밥을 집에서 먹고 갔다가 식사 때 집으로 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주기로 했다. 집에 있는 재료로 한 그릇 도시락을 싸 주었는데, 매일 같이 메뉴를 고민했던 난 김치와 참치를 볶아서 밥 위에 올려주었던 도시락만 유독 기억난다. 계란이 있을 땐 올리고 없을 땐 못 올리고... 남편은 도시락을 먹는 게 힘들었단다. 매일 비슷한 메뉴가 질리기도 하고, 내가 막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했으니 그저 참고 견뎠단다.
남편이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시간이 빨리 갔다. 실업급여가 끝나갈 무렵 자격증을 땄고, 먼 거리 출퇴근이 힘들다며 근처의 회사에 들어갔지만 결과적으로는 상황이 나아진 원래 회사로 복귀하게 되었다. 자격증 하나 따서 원점으로 돌아온 듯.
그 1년 동안 우린 생각보다 많이 싸웠고, 많이 힘들었다. 나중에 남편하고 일은 같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남편이 회사에 복귀하고 나니 고정급여가 생기면서 서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가장으로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퇴사를 한번 해봤다고, 그는 계속 뭔가를 던진다. 한동안은 매우 자유분방한 느낌의 술집(펍)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가, 조용한 카페를 이야기했다가...
그가 카페를 이야기할 때가 제일 어울려 보이긴 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했으니까 말이다. 깔끔한 성격이라 외식업에 필수인 위생적인 문제는 믿을만하다. 미각이 예민하니 커피도 대충 만들지 않고 이리저리 연구해서 맛을 낼 것이고, 서비스업과 딱 맞는 성향이고... 문제는 당장은 자본금이 없다는 것?! '언젠가는 가게를 하나 차려줘야 하나' 고민될 만큼 한참 동안 커피숍 얘기를 하던 그는 지금은 '소설가'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