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메뉴 알려주는 남편
찌는듯한 여름 저녁이다.
하루 종일 돌아간 에어컨은 여전히 쉬지 못하고 있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릴 것 같은 더위에 옷을 걸치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
"나가자."
남편이 밤마실 가잔다.
갈까 말까.
남편이 어디 가자하면 강아지처럼 따라나섰건만 너무 더워 움직일 기력도 없다.
집에서 뒹굴며 목 늘어난 핑크티에 샛노란 지지미 바지를 입은 채로 따라나선다.
남편은 흘낏 보더니 한마디 한다.
"그 차림으로 나가게?"
"응, 밤인데 뭐 어때?"
아줌마가 되더니 이럴 땐 아주 용감(?)하다.
밖으로 나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흘낏거린다.
'사람들은 왜 죄다 검정이나 회색 아니면 흰색 차림인 거야'
괜히 사람들 탓을 한다.
"뭐 마실까?"
줏대 없는 내 입맛은 오늘도 딱히 생각나는 음료가 없다.
"편의점 가자. 요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오면 편의점에서 꼭 먹어야 된다는 게 있어."
"그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더위도 잊은 채 눈이 반짝인다.
항상 가던 번화가 쪽이 아닌 반대 방향의 육교를 오르내려 조금 한산한 동네로 들어선다.
환하게 불 켜진 gs슈퍼마켓이 보인다.
음료코너로 들어간 남편은 바나나우유를 두 개 집어오더니 입구에서 얼음컵과 커피를 주문한다.
다 합친 가격은 거의 8천 원 정도.
이 정도면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 말고 다른 메뉴 사 먹는 가격인데..
기대감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보는데 그는 아이스커피를 만들고 거기에 바나나우유를 붓는다.
검은색과 연노란색이 섞이며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빨대를 꽂아 밖으로 나온다.
"이게 요즘 핫한 '바나나커피'라는 거야. 마셔봐. 제발 원샷하지 말고 천천히."
그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바나나우유와 커피의 조합이라...
바나나와 초코는 아주 잘 어울리는 궁합이지만 커피는 처음이라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꽤 근사하거나 대단한 맛은 아니다.
그냥 그전에 안 먹어본 맛. 그런데 생각나는 맛.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한 맛. 이 정도.
그렇지만 리액션은 커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핫한 메뉴를 소개받을 수 있으니...
"와, 진짜 맛있네. 외국인들이 반할 맛이네."
혼을 담은 연기를 펼쳐 보이자 흐뭇해하는 그의 표정에 속으로 '됐다'를 외친다.
주말이 되어 장을 보러 갔다.
"지난번 바나나커피 맛있었지? 또 만들어 먹으려면 여기서 바나나우유 사가는 게 좋겠다."
"어? 그럴까?"
'그거 너무 달고 칼로리 높아서...'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 채, 바나나우유 번들이 쇼핑카트에 실리도록 두었다.
장을 다 보고 집에 오니 정작 커피를 안 사 왔다.
"바나나우유 유통기한 기니까 다음 주말에 먹자."
"그래."
그렇게 냉장실에 들어간 바나나우유는 주중에 아이들의 눈에 띄어 사라졌다.
주말에 집에 온 남편은 꽤 아쉬워했다.
아마 올여름이 되면 더위에 못 이겨 작년의 그 바나나커피가 생각날 듯하다.
백**에 바나나커피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뚱뚱이 바나나우유를 부어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왠지 더 맛있을 거 같고, 남편이 만들어줘야 그 맛이 날 거 같고, 그때 그 슈퍼에서 사야 제맛일듯한 이 갈대 같은 마음을 어쩌랴.
평상시는 줏대 있는 거처럼 매일 비슷하게 먹다가 신메뉴만 보면 꼬리 흔드는 강아지가 되는 날 위해 이번 주말엔 남편이 뭘 먹자고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