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들이 있다. 그날은 수많은 날들 중 평범한 보통의 하루였다. 수술 후 엄마가 다행히 항암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있었고 수술이 잘 된 엄마는 회복에만 집중했다. 경과를 보러 병원에 갔던 날, 의사 선생님은 엄마와 내 얼굴을 평소처럼 쳐다보지 못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힘겹게 운을 떼며 말했다.
"수술 결과 기수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항암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빠질 테니 모자와 가발을 미리 준비해 두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엄마는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다. 나는 총알이 다 떨어진 군인마냥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항암 후 머리카락이 다 빠진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힘없고 아픈 사람의 모습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항암 환자의 모습이었으니까.
항암이 시작됐다. 2차 때까지 엄마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빠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는 천명 중 한 명은 탈모가 오지 않는다는 카더라 통신을 믿게 됐다. 머리가 여전히 빠지지 않고 있으니 엄마가 그 단 한 명의 확률 같다며 끝까지 안 빠질 거 같다고 으스댔다. 엄마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이라도 보태주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 2차가 끝난 후 이주 정도 지나자 머리는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했고 엄마는 골룸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더 힘들다며 쉐이빙을 한다 했다. 머리 전체를 다 밀고 가발까지 맞추기로 예약이 되어 있던 그날, 엄마의 병을 알고 있던 친구는 내게 신신당부해 왔다. 본인이 쉐이빙하고 난 후 가장 힘드니 너는 절대 엄마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나 엄마의 삭발 모습만 상상해도 눈물이 떨어질 거 같은데 큰일이다 싶었다. 일부러 엄청 진하게 풀 메이크업을 했다. 특히 눈화장을 두껍게 하면 화장 때문이라도 눈물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헤어 스튜디오에 도착해 두건을 벗는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을 애써 쓸어 넘기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나뭇잎을 겨우 한두 개 남기고 시들하게 말라버린 겨울나무 같았다. 오빠는 엄마가 쉐이빙도 하기 전 회사의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렸다. 나는 알고 있다. 오빠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태산 같은 울음을 애써 참고 있는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조각상이 되어 입을 앙 다문채 단단한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삭발한 모습도 어울리는데? 스님 같아! 두상이 너무 이쁜 스님. 시크하고 잘 어울려."
그때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미용사의 바리깡이 엄마의 귓바퀴를 스치며 상처를 냈다. 빨간 핏방울이 어깨에 톡 떨어졌다. 엄마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미용사는 어쩔 줄 몰라 허리를 굽히며 연신 죄송하다 했다. 미용사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항암 중인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서 상처가 나면 큰일인데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만 시끄러울 뿐이었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조각상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귀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후시딘을 바른 후 쉐이빙을 마무리했다. 엄마의 두상에 꼭 맞게 제작한 가발을 쓴 채 헤어컷을 했다. 본인 머리처럼 자연스럽게 만드는 과정이었으나 그 모든 과정이 내겐 부자연스러웠다.
집에 돌아와 아빠와 손주들 앞에서 엄마는 오늘 맞춘 가발을 써본다. 얘들아 할머니 어때? 하고 묻는 질문에 아이들은 몸을 뒹굴기까지 하며 깔깔 웃는다. 아빠는 잘 어울린다고 원래 당신 머리 같다 말하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막을 수 없다. 엄마에게 꼭 맞게 컷팅까지 한 가발이라도 가짜는 가짜였다. 엄마의 어색한 모습에 와하하 다 같이 웃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진다. 잊을 수 없는 울적한 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커다란 웃음소리가 가득한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