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죽을 때까지 단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먹겠는가. 이 엉뚱하고 다소 귀여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음식 취향을 반영한다. 예전에 나였다면 대답은 초콜릿이다. 내 가방 속, 사무실 책상 위, 우리 집 부엌에는 늘 초콜릿이 있었다. 브랜드와 카카오 함량만 조금씩 다를 뿐 내 곁에는 늘 초콜릿이 있었다. 달달한 것을 좋아해서 음료도 블랙 포레스트 아이스 블렌디드나 돌체라테만 마셨던 나니까. 하지만 현재의 나는 초콜릿은 필요 없다. 감홍사과를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사과러버다.
2년 전 감홍을 우연히 알게 됐다. 사과는 부사나 아오리, 시나노 스위트, 홍로 정도만 있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단골 과일 가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사러 갔다. 그런데 한 손님이 오시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과 한 박스를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으로 사 갖고 가는 것이다. 과일가게 사장님에게 이 사과 또 들어오면 밴드에 올려달라는 말과 함께. 사장님은 그 손님에게 자신도 과일 중에 이 사과를 가장 좋아한다 말했다. 대체 저 사과가 뭐길래 궁금했다. 저렴한 가격도 아닌 그 사과를 한 봉지 사와 식초물에 깨끗이 씻었다. 이미 나는 미슐랭 평가원이 되어 있었다. 칼로 사과를 조심스럽게 잘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유레카! 어렸을 적 유원지에서 아빠 손잡고 솜사탕을 한입 가득 넣고 혀로 살살 녹여 먹는데 솜사탕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먹는 동시에 울적한 기분. 딱 그거였다. 입안에 사과의 황제가 들어온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사과는 오로지 감홍뿐이었다.
일반 사과의 4배 정도 농축된 단맛과 입술 밖으로 주르륵 과즙이 흐를 정도로 쥬시한 과일. 감홍은 슬프게도 10월 초중순부터 11월 초까지만 맛볼 수 있기에 애가 탄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난 후 감홍을 먹는다. 식초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과육이 어디 떨어질세라 조심스럽게 반달 모양으로 얇게 슬라이스 한다. 애지중지 사과를 접시에 담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사과가 달다며 본인 접시에 슬라이스 된 사과를 일곱 개씩 옮겨 담는다.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들 입으로 더 들어가는걸 흔쾌히 허락하지만 감홍은 질 수 없다. 나도 똑같이 일곱 개를 접시에 옮겨 담는다. 이미 감홍은 바닥나고 없다.
이렇게 맛있는 감홍은 고두병과 기형과로 인해 다른 사과보다 생산량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감홍이 먹고 싶지만 냉장고에 있던 마지막 감홍은 이미 몇 주 전 끝이 났다. 수분이 날아갈 새라 신문지로 낱개씩 일일이 감싸 딤채 과일칸에 소중히 놔뒀었다. 딤채를 열어보며 내 사과들이 잘 있나 눌린 데는 없는지 확인한다. 절대 반지를 아끼는 골룸과 다를 바가 없다. 감홍을 가을 겨울 내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저장할수록 퍼석해져서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장성은 부사가 최고다. 이 시기에만 먹을 수 있고 다른 과일들에 비해 가격이 비싸 더 소중한 사과. 이제 감홍을 먹으려면 내년 10월을 기다려야 한다. 감홍을 사각사각 씹어 먹을 때 느끼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행복. 입안에서의 달달한 행복이 내년 가을에도 예약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당신의 최애 음식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