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는 참 사랑스럽다. 아니 사랑스럽다는 문장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아이를 표현하기에는 내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그 자체라 그런 것일까.
준서가 태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내 안에 기쁨이 꽉 차버려서 몸 전체가 기쁨을 감당 못해 부풀어올라 하늘을 두둥실 떠다녔다. 그 무렵 나는 그저 행복한 풍선이었다. 남편과 나를 쏙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그 시기를 찍은 동영상을 보면 준서를 대하는 나의 모습과 목소리는 지금과 사뭇 다르다. 천사 엄마가 따로 없다. 준서를 낳고 22개월 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와 거푸집처럼 똑같은 아이, 사랑하는 아이가 둘이나 생겼으니 행복은 배가 됐다. 하지만 준서 혼자 있을 때와 둘째가 생긴 뒤 모든 상황은 달라졌고 그에 따른 변수도 많았다. 행복도 배였지만 체력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행복했다가 힘들었다가 외로웠다가 어쩔 때는 그냥 죽고 싶었다. 내 기분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길 반복했다.
육아 난이도 상 시기를 통과해 이제 아이들은 열한 살 아홉 살이 되었다. 이제 조금은 쉽겠지 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잘 먹는 아이들은 나를 언제나 부엌에 있게 한다. 차리고 치우고 반복이다. 빨래는 얼마나 많은지. 거기다 매 순간 선택할 것 투성이다.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최선 혹은 차선책을 생각한다. 머릿속은 늘 시뮬레이션 중이다.
첫째 둘째 나이가 다르니 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부분도 다르다. 훈육할 때 나는 둘째보다 준서에게 더 냉정하다. 너는 첫째이기 때문에 오빠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고 타이른다. 내년에 5학년이 되는 준서가 다 컸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른 대하듯 서슬 퍼런 말도 때때로 했다. 한 번은 아이가 억울하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 안아주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준다는 핑계로 울음을 외면하기도 했다. 거실에 우두망찰 서서 엄마를 바라보는 네 마음은 어땠을까. 너는 내가 온전하게 사랑을 준 내 첫 사랑 첫 자식인데 그 순간을 피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준서에게 등을 보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와 나는 종종 대화를 나눈다. 오늘은 헬스장에 갔다가 아주머니를 만났다. 운동하는데 청소기 좀 돌려도 괜찮겠냐며 조금 시끄럽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괜찮다며 남은 운동을 하고 돌아서는 나를 아주머니가 잡는다.
"아들이 말여~매일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1층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확인하고 다 꺼내서 가지고 올라가 그 집 아들이~요즘 애들 안 그런다 누가 그래~그런 작은 거 하나만 봐도 나는 알어. 귀한 아이여! 소중하게 잘 키워! 알겄지?"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먼저 올라갈게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이상한 날이 있다. 남들에게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유난히 어떠한 말이, 다른 사람과의 가벼운 대화가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날.
남들 눈에도 예쁜 우리 아이. 태명도 사랑이었다.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자라길 원했다. 그리고 아이는 태명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다. 준서와 손잡고 길을 걷는데 나뭇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노랗고 주황색이고 빨간 것 천지다. 아름답다. 나뭇잎들이 눈처럼 준서 머리 위로 쏟아진다. 준서에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말해줬다. 그 순간 아이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어떻게든 잡아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그 모습이 순수하고 귀여워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추억을 움직이지 못하게 잠궈놓는다. 아직 이렇게 어린아이인데 왜 나는 준서가 다 컸다고 생각했을까.
지난 여름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이는 속이 안 좋다 했다. 남편과 나는 비행시간을 놓칠세라 아이의 컨디션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지하철에 올라타기 바빴다. 만원 지하철에 각자 떨어져 자리에 앉았다. 대각선 저 멀리 준서의 발이 보인다. 남편은 준서 맞은편 앞에 앉았다. 이대로 구겨져서 한 시간만 가면 공항이다. 제대로 도착하겠군 안심했다. 한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객실 가득 꽉 찼던 승객들이 중간중간 내려 준서 얼굴이 대각선 너머로 보인다. 땀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인다. 걱정이 됐지만 곧 내릴 테니까 내려서 아이를 살피면 됐다. 공항역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실신하듯 플랫폼에 쓰러지며 그대로 토를 했다.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한 시간을 참은 거냐고 물으니 출근시간 사람들도 많고 중간에 내리면 비행기 놓치니까 꾹 참았다 말한다. 그리고 연신 토악질을 하는 너의 등을 두드리며 내가 대신 아프고 싶었다. 심장을 누가 뾰족한 것으로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아이는 결국 비행기를 타서도 토를 했다. 오사카에서 한국은 비행시간이 짧기에 다행이었다. 준서는 이렇게나 참을성이 많고 어쩔 때는 남편과 나보다 어른스럽다. 우리 둘은 말한다. 아이들이 어른인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내가 너를 키운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준서 네가 키우고 있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매일 안아주면 사랑은 빵처럼 부풀어 올라 없던 기운도 나게 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괜찮아 엄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눈빛을 보낸다. 나도 널 무척 사랑해. 그리고 믿어. 누가 뭐래도 너는 나의 온전한 첫 사랑이니까. 매일 엄마 아빠를 자라게 해 줘서 고마워 준서야. 이 말이 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