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by 미아

번번이 떨어졌다. 학부 4학년 취업을 앞두고 이력서를 거의 100군데 넘게 넣었다. 원하던 대기업부터 줄줄이 다 떨어지니 중견기업으로 눈을 돌렸고 중견기업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니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 내가 타협하는 연봉 수준이나 복지가 맘에 들지 않았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대기업으로 취업 성공할 때마다 '나는 지금까지 뭐했지' 라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나와 두 살 터울인 오빠가 부모님께 돌연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 선언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많은 대학생 사이에서 어학연수 붐이 일고 있었다. 너도 나도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취업이 되는 분위기였다. 오빠는 취업을 위해 영미권 어학연수는 필수라며 부모님을 설득했고 부모님 찬스를 이용해 캐나다 빅토리아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걸 옆에서 보니 배알이 꼴렸다. '왜 오빠만 가?' 나도 이렇게 취업이 안되는데 모두 어학연수 때문인 것 같았다. 이력서에 어학연수 그 한 줄을 꼭 넣어야만 될 것 같았고 연수를 못 가서 내가 취업이 안되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다.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을 설득했다. 아니 징징 졸랐다. 왜 오빠만 보내주냐고 나도 보내달라 징징거렸다. 하지만 홀로 공기업을 다니는 아버지는 오빠와 나 동시에 연수 보낼 비용은 없다며 나보고 포기하라고 하셨다. 오기가 생겼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외국을 나가리라.


지금 당장 나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국비로 나갈 수 있는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던 중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최하는 국비지원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결국 최종 면접 끝에 한국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인턴십 티켓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약 50여 명이 선발되었다.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한편으론 철부지 막내딸이 인도양을 건너 머나먼 아일랜드까지 가는 것을 걱정하셨다.


여행 아닌 실거주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국을 했는데 공항에서부터 일이 터졌다. 같이 간 50여 명의 인턴들은 다 짐을 찾고 벤을 타러 나가는데 내 수화물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수화물이 다른 벨트로 끼어들어갔는지 나의 짐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깜깜했다. 그 안에는 현금 300만 원, 옷가지 및 중요 생필품들이 들어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수화물 missing 이라니 그것도 하필 나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Lost&Found에 분실 신고를 한 후 거의 새벽이 다 되어서야 나와 내 룸메이트가 묵을 홈스테이 숙소에 도착했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우선 한 달 동안 아일랜드 현지인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다가 마음에 들면 계속 홈스테이를 하면서 지내도 되고 아닐 경우 직접 집을 구해 나와 살아도 됐다. 대신 인턴십에 합격한 회사에서 주급을 주고, 한국에서 체제비가 따로 나오니 개인적으로 홈스테이를 떠나 집을 구한다면 월세는 직접 지불해야 했다. 나는 더블린에서 6개월 정도 인턴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더 지체되면 나이 때문에 신입으로 취업이 힘들 것 같았다). 내 룸메이트로 지정된 영은이와 홈스테이 집에 도착하니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기다린 집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이제야 왔냐는 듯 곤조서 있는 얼굴과 무미건조한 말투로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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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에서의 첫날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아니 평생 못 잊을 거다. 그 집에서 나와 영은이는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됐는데 2층에 위치한 마주 보고 있는 방이었다. 좁다란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내 방이 보였고 그 앞에 영은이의 방이 있었다. 방은 작았지만 화장대며 침대며 거의 모든 게 갖춰진 나름 아늑한 방이었다. 새벽에 도착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짐을 대충 풀고 씻고 자려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내 방 옆에 있는 공용화장실로 누가 깰세라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 큰일을 보았다. 묵직했던 배가 조금은 편해졌다.


그런데 물을 내리려고 보니 변기 옆쪽에 있어야 할 물 내리는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하얀색 변기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오른쪽 왼쪽 혹시 몰라 아래쪽까지 다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 있는 것이냐. 밖에서는 화장실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집주인 아주머니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어색한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초조함이 몰려왔다. 저걸 내리지 않고 그냥 나갈 수는 없었다. 물 내리는 버튼이 당최 보이질 않고 이걸 어쩌나 내 응가니 손으로 건져서 화장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버려야 하나 짧은 몇 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서툴렀고 막 더블린에 도착한 풋내기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때 하얀색 변기 뚜껑 위에 은색의 조그맣고 동그란 버튼이 보였다. 태극기처럼 반이 갈라져있었다. '설마?' 하면서 눌러보았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물은 내려갔고 명쾌하게 물 내림 버튼이 무엇인지 알게 된 환호의 순간이었다. 의기양양하게 화장실에서 나와 내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안돼 저절로 턱이 딱딱 거리고 코와 입에선 하얀 입김이 후후 나왔다. 침대 옆에는 라디에이터가 바로 있었지만 주인아주머니가 틀어놓지 않은 것 같았다. 내 평생 그렇게 추운 방은 처음이었다. 가져온 온갖 두꺼운 외투를 껴입으며 '아니야 조금 있으면 곧 따뜻해지겠지 라디에이터가 예열 중일지 몰라'하며 누웠는데 눈물이 양옆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순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내 방을 놔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머나먼 더블린까지 왔나 싶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짐이 안 온다면 현금은 어쩌지 싶었다. 당장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 한국의 따뜻한 내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앞으로 더블린의 이 추운 밤들을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창밖을 보니 깜깜한 길에 가로등 두 개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 외국의 밤은 한국의 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해가 지고 나면 우선 길에 다니는 사람과 자동차가 현저히 줄어든다. 아무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밖을 보니 어둠이 날 삼킬 것 같아 더 무서웠다. 다시 누우니 눈물이 또 양옆 광대뼈를 따라 주룩주룩 흘렀다. '그냥 오지 말걸 그랬어 한국에서 취업이나 더 도전해볼걸' 하는 후회가 광대뼈를 따라 함께 흘렀다.


울며 노트북을 켰다. 마침 오빠가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었다.

"현주야 잘 도착했니? 더블린은 몹시 춥다는데 걱정이다. 항상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오빠가 메일 자주 보낼게 힘내 사랑한다 내 동생"

이렇게 쓰여 있었다. 메일을 괜히 보았다. 노트북을 끌어안고 누가 듣을세라 숨죽여 울었다. 추위에 턱은 여전히 딱딱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울다 지쳐버렸다. 영은이는 이 추운데 어떻게 있나 궁금해 방문을 열고 나와 영은이 방을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웬걸 영은이 또한 혹독한 더블린 추위에 이불을 몸에 돌돌 감싼 채 덜덜 떨며 노트북을 엉거주춤 껴안고 있었다.


"영은아 너도 안 자고 있었어?"

"응. 야.. 너무 추워. 추워서 도저히 잠이 안 와. 너 울었어? 이리 와봐 노트북에서 나오는 열기가 좀 따뜻해"

우리는 영은이의 노트북에서 나오는 따뜻한 열기에 손을 갖다 댔다. 영은이가 접속한 싸이월드에서 프리스타일의 Y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주야. 너무 추워서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싶다. 싸이로 친구들이랑 채팅 중이었어"

"그러게 나도. 우리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한국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네"

나보다 마음이 더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영은이에게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Y 노래를 들으며 함께 스르륵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오전부터 누가 초인종을 요란하게도 누른다. 곧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집주인 아주머니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올리비아!! 니 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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