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니 짐 왔다!!"
진짜였다. 잃어버린 내 짐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아침부터 짐을 가져다준 공항 직원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가 바로 짐을 풀어 보았다. 현금 300만 원이 든 봉투는 무사히 옷과 옷 사이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어제의 추위와 고단함은 되찾은 짐과 함께 일순간 사라졌다. 더블린에서의 상콤한 이튿날이 시작된 거다. 그런데 웬걸. 아침 먹으러 내려오라는 주인아주머니 소리에 부리나케 내려갔는데 식탁에는 식빵 조각 두 개와 쨈이 놓여 있었다. '물은 너희가 알아서 마시면 된다'면서 수도꼭지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이미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일랜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수돗물을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미 알고 왔는데도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는 게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아리수 마시기 캠페인이 한국에서도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더블린에 갔다 온 이후의 일이었다) 처음 마신 수돗물(석회수)의 맛은 약간 비릿했고 쌉싸름했다. 따로 정수 장치를 통해 물을 걸러 마시거나 끓여마시는 줄 알았는데 정말 있는 그대로의 tap water였다.
저녁식사는 그래도 아침보다는 풍성하겠지 하는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엇나갔다. 집주인은 냉동에 있는 기성 식품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접시에 담고 그것마저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냉동 함박 스테이크였는데 접시 위에 구워진 초록색 아스파라거스 두 개가 스테이크보다 더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이후 저녁식사는 거의 냉동식품이었다. 지금은 코스트코에서도 흔하게 파는 닥터오트커의 리스토란테 피자, 저녁마다 그 피자를 그렇게 자주 오래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집주인은 내가 목욕하는 시간도 이따금 재는 듯했다. 저녁에 일반적인 샤워(머리 감고 몸 씻기)를 하고 있으면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올리비아! 네가 우리 집 물 다 쓰겠다! 대체 언제 나올 거니!"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없었다. 결국 영은이와 나는 한 달 만에 건강한 음식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홈스테이를 뒤로하고 우리가 살 집을 구해서 나가기로 결심했다.
인턴십이라는 목적으로 더블린에 온 우리들은 대부분 직장이 구해진 터였다. 시티은행, 하이네켄, IBM 등 굵직한 대기업부터 시작하여 무역회사나 정부 산하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교육부 산하 acels(영어교육기관자문위원회)에 합격하여 그 직장 근처로 살 집을 구하고 싶었다.
www.daft.ie는 한국으로 치면 직방과 같은 사이트로 아일랜드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필수로 봐야 하는 사이트다. 눈알이 빠질세라 보고 또 보고 중개인과 시간 약속을 정하고 뷰잉 하러 다녔다. 그런데 사진과는 다른 집들이 많았고 LUAS(더블린 트램)와 거리가 멀어 출퇴근이 불편할게 뻔한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10시에 출근하여 점심 먹고 3시쯤 퇴근을 했다. 그날도 얼른 집에 가서 사이트로 집이나 알아봐야겠다 하며 종종걸음으로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70m 정도 돼 보이는 거리 앞에서는 어떤 동양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있었을 당시만 해도 더블린에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었다. 어학연수 온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는 가까워질수록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저 남자와 나의 거리 70m, 60m, 50m, 40m....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아니, 네가 여기 왜 있어!!! 더블린에!!'
너무 놀란 나머지 예의고 뭐고 간에 그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반대편 남자도 놀란 건 매한가지인 눈빛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도 못 건네고 지나쳤지만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 김민수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교내에서는 꽤 유명한 남학생 4명이 있었다. 자칭 타칭 F4로 불리는 아이들이었는데 모범생은 아니고 소위 까불거리는 아이들로 얼굴이 꽤나 잘생겨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애들이었다. 김민수는 그중 한 명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아줄이라도 잡아보자 라는 심정으로 김민수의 싸이월드를 뒤지기 시작했다. 파도에 파도를 타며 간신히 찾아낸 김민수에게 쪽지를 보냈다. 아주 순식간이었지만 나보다 오래 더블린에 머물렀을 듯한 바이브를 분명 느꼈던 나는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장문의 쪽지를 보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김민수가 소위 노는 그룹에 속했다면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꽤나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졸업한 고등학교는 합반이 아닌 남녀공학이었다)
"안녕 김민수. 나 김현주야. 네가 날 알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렇게 쪽지를 보내. 아까 시내에서 너 지나가는 거 봤어. 너도 나 봤지? 더블린에 산지는 얼마나 된 거야? 나 지금 집 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구하기가 쉽지 않네. 어느 동네가 그나마 살기 좋은지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지금 좀 급해. 핸드폰 번호 알려줄게. 쪽지 확인하면 연락 좀 줘"
쪽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내 vodafone이 울렸다. 김민수였다.
"야. 김현주. 내가 널 왜 모르냐. 알지. 너 더블린에는 대체 어떻게 온 거야? 여기 한국인도 별로 없는데. 나는 우리 이모가 더블린에 사셔. 어학연수 겸 온 지 1년 정도 넘었어. 난 지금 더블린 8에 살아. 집 구하기 힘들다고? 근데 너 영어는 잘하냐?"
김민수랑 나눈 첫 대화였다. 분명 비아냥 거리는 말투였다. 내가 김민수한테 영어를 잘하냐는 질문을 받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낮에 먹은 fish&chips가 체할 것만 같았다. 오대양 육대주 중 하필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무서울 정도의 우연이다. 혹여나 집을 구할 때 미리 살아본 자의 자문을 구하면 좀 쉬울까 하여 내 나름의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냈건만. 마지막에 한다는 말이 '너 영어는 잘하냐?'라니. 내가 영어 못해서 집을 못 구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왕년에 좀 많이 놀아본 동창에게 집을 못 구하고 있는 게 마치 서툰 영어실력인 것만 같다는 식에 질문을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야 김민수, 잘은 모르겠지만 영어는 내가 너보다 잘할걸? 그리고 지금 영어가 여기서 왜 나와. 인턴십으로 회사 다니고 있으면 생존 영어는 기본으로 하겠다. 살기 좋은 동네나 좀 읊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