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교이야기[8]

보내지 못할 편지, 언니에게.

by 윤성

언니야 안녕? 오랜만이지.

언니랑 연락을 안한 지 벌써 십년이 넘었네.


보내지 못할 편지라고 하니 마치 언니가 죽은 것만 같지만......

사실 언니는 잘 살고 있지.

엄마 통해서 소식은 늘 듣고 있어.

다만 더 이상 내가 먼저 연락하지는 못하니까,

나는 언니에게 손절 당했으니까 이렇게 편지를 써볼까 해.


나는 여전히 언니가 많이 그립거든.


또 몇년째 글을 쓰다보니 어차피 내겐 글쓰는 재주가 없는 것 같아서,

나의 글이 그다지 유명해질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부담없이 써보려고.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글 쓰고 읽는 걸 무지 좋아하긴 했지만 설마 브런치를 할까?

한편으로는 언니가 브런치를 해서 아주 늦게라도 스치듯 나의 글을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

나로 인해 혹여 언니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그게 이제는 녹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언니가 봤던 나의 모습대로 나는 여전히 그렇게 지내고 있어.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버림 받고 그래도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씩씩하게,

가족들이랑 주로 시간 보내고

친구 두어명이랑 일년에 서너번 만나고......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매일 출퇴근하고 집에서는 밥 차리고 아이들 챙기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


언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따로 알려주지 않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듣게 만든 이기적이고 속 모를 그런 사람이겠지?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어.

사람들한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워.

근데 언니,

사람들이 이상한 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려고 하거든? 굉장히 노력하거든.

그러면 마음을 열고 나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싶은 이야기들도 막들 털어놓는다?

그리고 나랑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해.

정작 나에 대한 이야기는 물어보지 않고 말이야.

물어보더라도 내가 조금 이야기하려고 하면 또 자기들의 이야기가 시작돼.

아마 내가 잘 들어줘서 그런 거 같긴 한데... 나는 듣는 게 좋으니 그것도 상관 없어.

문제는 나중에 나한테 "너 왜 그런 이야기 나한테 안 했어?" 소리가 꼭 나온다는 거지.

그러면서 섭섭해한다는 거지.

나는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 공간이 없었을 뿐인데.

꼭 내가 숨긴 것처럼 되어버리는 거야.


사실 요즈음에도 딱 그런 패턴으로 동네 친한 언니에게 차단 당할 것 같아.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싶은데 조금 울적해.


내가 원하는 관계는 소박한데 그게 참 어렵다, 언니야.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종종 연락하고 한번 만나면 좀 길게 깊게 서로 속을 털어놓고 응원하는 그런 관계.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고 내 이야기도 좀 궁금해하며,

나중에 왜 네 이야기는 하지 않았냐며 섭섭해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벌써 마흔을 훌쩍 넘었는데 이제라도 만날 수 있을까? 별로 기대는 없어.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고,

소소하게 배려하며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고 싶어.

누가 나타나면 좋고, 나타나지 않아도 그만이고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아.

요즘 좀 외롭다는 글을 길게도 썼지?

말 보다 글이 편한 사람으로서 글 재주가 늘 아쉽다. 언니는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언니의 목소리를 자장가로 새벽에 잠들던 어느 밤이 그립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 사람들이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떠들어.

되게 별것아닌,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사실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을 각자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야.

한참 그렇게 떠들다가, 각자 커피나 차를 타서 자리로 돌아가서도 떠들다가.......

슬슬 조용해지면서 일들을 시작해.

언니도 예상하겠지만 나만 거기에 끼지 않지. 나는 속으로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만 해.

저런 수다가 꼭 필요한 걸까?

내가 저런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나지 못해서 이렇게 어느 집단에 가든 이방인처럼 사는 걸까?

직장에서도, 가족들 모임에서도, 요가원에서도 말이야.

특히 요가 수업 후, 서로 일상을 주고 받으며 깔깔거리는 여자들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요가하러 가서 왜 차담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 거기 끼지 못하는 나를 가여운 눈빛으로 붙들고 챙겨주듯이 앉아보라는 건지.

나는 정말 괜찮은데......

억지로라도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야 길게 깊게 속을 털어놓고 응원하는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걸까?

그렇겠지?

누굴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서서히 친해질 수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역시 나는 자발적 고립을 택해야겠어.

피곤해.

가족들에게 쏟을 에너지도 부족한 저질체력이니까, 어쩔 수 없겠어.



주변을 보면 다들 이런 고민 없이 잘만 어우러져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마흔 번의 봄들을 보내고도 이런 게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언니.

체념했다가도 고민하고 포기했다가도 갈망하고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오늘도 문득 언니가 보고 싶네.

요 며칠 꿈에 언니가 나오기도 했어. 언니도 가끔 이렇게 내 생각을 할까?

'생각'은 하겠지만 '이렇게'는 아니겠지.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줘, 언니.

그냥 나는 사람을 대하는 그런 쪽의 지능이 덜 발달했나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언니는 기억조차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사과를 전하고 싶었어.


이기적이라 미안했어, 언니.


내가 그 때 많이 부족했고, 사실 나는 아직도 여전하게 부족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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