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지 않은 연락[2]

맑음

by 윤성

요즈음 좋긴 했다.

남편과의 소소한 다툼 외에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게 없었다.

일도 순조롭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좋은 사람들이고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평범한 나날들,

게다가 봄.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 산책하기 딱 좋은 이 계절의 온도와 습도.


비록 극한의 다이어트 중이긴 하나 나름 괜찮았다.

시작한지 3일만에 2kg이나 빠졌고, 오늘 아침엔 공복 몸무게의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단백질 쉐이크의 부작용인지 변비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제 그 여자의 유쾌하지 않은 연락도 잊어버리고 잠도 푹 잤다.

그런데 출근을 했더니 그 여자가 사내 메신저로 또 장문의 연락을 보내놓은 게 아닌가?

일터는 달라졌지만 메신저는 여전히 같다.


젠장.

유쾌하지 않은 연락 2탄,

출근하자마자 읽게 만들어 놓은 것부터가 그 여자의 인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기분 좋은 금요일 아침부터 엿 먹어봐라, 같은.


내용은 길게도 썼지만 결국은 본인의 분풀이다.

어제 너 때문에 기분 나빴고, 그 일은 네가 했어도 될 일이고, 네 방법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쩌고 저쩌고 시부랄 개잡소리.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라고 답장을 시작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내용을 공유했다.

그 여자와 현재 일하고 있는 전 동료에게도 공유했다. 동네 친한 언니에게도 일렀다.

객관적으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는 쉬우니까,

의견을 듣고 반응하고 싶었다. 와중에도 그 여자의 구구절절에 반박하는 내용들을 손으로는 휘갈기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하나,

만장일치로 수렴했다.


상종하지 마라.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상사는

상종하는 순간, 대화는 결론 없이 이어질 거라며 인상을 쓰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레 만지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아기에게 똥 못 만지게 하는 엄마처럼.



궁금하다. 살면서 주기적으로 저런 또라이들을 마주하는데 마음이 고요하면 덜 흔들릴까?

저런 또라이들은 마음이 왜 저렇게 옹졸하고 예민하고.

발작버튼을 수십개쯤 대가리에 달고 살아가는 걸까? 본인이 제일 피곤하고 괴로울텐데.


현 일터의 동료들이 내 기분을 살폈다. 내 마음을 토닥이려 커피도 건네고, 자잘한 업무도 대신 해줄테니 진정하라며 가져가고, 전화도 대신 받고 잠시나마 날 쉬게 해줬다.

전 동료는 자신도 그 여자와 가능한 말을 섞지 않는다며 매일 그 얼굴을 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라고,

나는 그 여자와 볼 일이 없으니 (사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도 모른다)

자신보다 훨씬 나은 처지인 것에 위안 받으라고 했다. 이런 웃픈 위로라니.

동네 친한 언니는 병신 같은 게 지랄하네?

무시해 그런 미친년은, 어쩌고 저쩌고 하며 육두문자를 남발해줬다. 사실 이게 제일 후련했다.

다음으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르자,

남편도 내 편을 들며 그런 여자랑 말 섞지 말라고 했다.

며칠 전까지 머리끄덩이만 안 잡았지 물어뜯고 싸웠는데 그 여자 덕분에 남편이 다시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해 이르지 않았지만

점심 맛있게 먹어라, 다이어트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라 연락 온 엄마까지.


내 편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그 여자 덕분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따뜻하고 귀여운 사람들.

그들 덕분에 그 여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초장의 분노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그 여자의 배설물 같은 문장들에 굳이 반박하고 싶지도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

그 여자 주변엔 이런 따뜻하고 귀여운 사람들이 없었나보다.



결국 그 여자의 장문의 메시지는 내게 읽씹당했다.

후회되는 게 있다면 어제 처음부터 그냥 읽고 씹었어야 하는데 싶은 마음이다.

미끼를 물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른들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다. 싸우는 건 똑같으니 싸우는 거다.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로, 똥은 똥으로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굳이 손으로 그걸 집어 주물럭거릴 필요 없다.


이번 일을 통해

역시 방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소소한 일들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뜬금포로 터지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또라이는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그 주기라는 게 규칙적이지 않아 결코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

별 미친 개 또라이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부디 나의 배가 순항하기를 기원한다.



글로 마음을 정리하자 신기하게도 좀전에 신호가 왔다.

다이어트 때문인지 며칠간 변비로 고생했는데

거대한 똥이 한 덩이 나왔다.

똥에 그 여자의 이름과 글귀를 살포시 올렸다.

면상을 알았다면 면상을 올렸을텐데 아쉽지만......

어쨌든 그러고 시원하게 물을 내렸다.


그래, 스치는 인연인데 이 정도면 됐다.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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