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굳 피플.

맑음

by 윤성

새벽까지 남편과 싸우다가 생긴 마음 속 깊은 생채기를 직장에 와서 치유 받는다.

좋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들의 에너지는 참 맑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배려가 새어나온다.

일부러 노력하는 게 아니다.

사람 자체가 좋기 때문에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습관적으로 남을 배려하고 말투에 표정에 온기를 싣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 반대의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너무 힘들었다.

출근이 늘 고역이었고 퇴근 시간이 되면 1분 아니라 10초도 더 자리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옮기고 일은 플러스 알파가 되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의 비중이 훨씬 높기에, 그들이 분위기를 이끈다.

업무 핑퐁 따위 없다.

아! 그냥 제가 할게요, 문화가 주류를 이루다보니 그러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누가 힘든 일을 맡으면 다같이 달려들어 그를 돕는다.

그렇다고 달려들지 않는 누군가를 욕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맑고 순하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 체계가 잡혀있다 보니 각자 맡은 업무는 순항하고 피로도가 훨씬 덜하다.

피로도가 덜하니 서로 더더욱 존중하고 배려하는데 에너지가 쓰이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서로 싸우느라 업무가 밀리고 그러니 피로하여 서로 또 예민하게 물어뜯던 기존 직장의 악순환과 대비된다.


남편과 싸우고 눈이 퉁퉁 부은 나에게,

이 곳 사람들의 질문은 두 단계를 넘어가지 않는다.


- 윤성씨, 눈이 왜 그래?

- 남편이랑 싸웠어요.

- 그래, 달달한 거나 먹자!


이런 식.

왜 싸웠냐, 누구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어머, 우리 남편은 안 그러는데 윤성씨 힘들어서 어떡해? 이런 주책바가지도 없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깔깔 웃지만, 사적인 부분은 결코 파고드는 법이 없다.

개그코드도 잘 맞고 관심 분야도 비슷하지만 딱 거기까지.

각자 맡은 일 최선을 다 하고 누가 집중할 때는 말 걸지 않고, 퇴근 시간 5분 전이면 다 같이 짐을 싸서 정시에 퇴근한다. 멋지지 않을 수 없는 문화다.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 편인데 이 곳에서 그 뿌리 깊었던 편견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기존에 만났던 이 바닥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승진을 하면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왜 일을 하지 않으시냐는 나의 질문에,

"그러면 사람들이 왜 아둥바둥 승진하려고 하겠어?" 라고 대놓고 말했던 상사도 있었다. 자기 세대가 젊을 때 했던 고생에 비하면 요즘 사람들은 작은 고생도 견디지 못한다는 라떼 마인드가 단단한 거다.

하지만 여긴 다르다.

상사는 직원들이 처리하게 곤란한 일들을 떠맡아 능수능란하게 처리한다.

나보다 아래 직급의 직원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로 인한 일말의 열등감이나 피해의식도 없다.

가끔 위기에 처한 내게 툭툭 던지는 조언들은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하다.

연륜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나의 다섯번째 직장,

이 곳에서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들을 처음으로 본다.

부부싸움 스트레스조차 출근해서 일하다 보니 그들과의 건강한 분위기 덕분에 어느새 풀려,

남편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보니,

먼저 손을 내밀 것 같아서 따라해봤다. 남편보다 인격적으로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즐겨야지.

의무적으로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

또라이들 틈에서 울며 일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멘다.

이토록 좋은 계절,

창 밖으로는 벚꽃잎이 흩날리고, 기분 좋은 대화가 오가며,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

얼마나 소중한가.

즐기자. 언제 또 또라이들이 등장할지 모른다.






근데 주변에 또라이가 하나도 없으면 내가 바로 또라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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