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
역시 입방정을 떨면 안된다.
현 일터 동료들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 요즘 편하다고 입방정을 떨고 다녔더니
역시나, 유쾌하지 않은 일이 터졌다.
정확히는 유쾌하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전 일터에서 나의 후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연락이었다.
ㅋㅋㅋ 를 붙여 보냈지만 골자는 A라는 일을 네가 해놓고 갔어야지 였고,
끝맺음은 반말.
A라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의무도 없거니와
시기적으로도 내가 거길 그만둔 시기로부터 2주 정도는 지나고 보통 처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터를 반년 전에 떠난 사람이다.
미친, 쌍욕이 나온다.
업체에 물어봐야 할 내용들을 당연한듯 내 휴대폰으로 전화걸어 물어볼 때도 참았다.
참는 티도 내지 않고 웃으며 응대했다.
그 일터의 직원들이 그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내게 업무관련 문의가 올 때도 참았다.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라고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 때도 난 맞장구 치지 않았다.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않았던 게 아니다. 사사건건 뭘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내게 연락할 때도,
말에 은근한 반말을 섞을 때도 그냥 넘겼다.
친구할 것도 아니고 사귈 것도 아니고 스쳐 지날 인간 하나, 크게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 내가 기분이 좋았다면 "해놓고 갔어야지" 같은 반말에도
그러게요^^ 죄송해요 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은 나도 일이 바쁘고 그 동안 여러차례 선을 넘는 그녀의 언행에 화가 났던 것 같다.
심지어 그녀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리다.
나보다 10살 많아도 저딴 식의 언행은 기분 나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결국 맞붙어 싸웠다.
걔는 미끼를 던졌고 난 고걸 콱! 물어버린 거다.
하지만 실컷 싸우고 나니 기분만 더러워졌다. 어차피 그런 인간은 사과 따위 할 줄 모른다.
굳이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싸우고 5분 정도 지난 후,
나는 또 버릇처럼 그녀에게 먼저 사과를 건넬 뻔 했다. 가끔 습관적 사과를 하곤 한다.
그냥 누구와 불편하고 싶지 않아서.
애초에 화를 내고 맞붙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 그러지 못하고 화를 내버리고 말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 네 입장도 있겠지,
내가 예민했나보다 이런 어설픈 사과를 건네곤 했다.
돌이켜보면 모두 후회되는 순간들.
지금 생각해보면 40년 동안 후회되지 않는 사과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러지 않을 작정이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내 기분만 더러울 뿐.
그런 인간들과 겉으로 잘 지내는 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러고 살았을까?
인성이 별로인 인간들은 분위기를 풀기 위한 습관적 사과에도 우쭐한다.
지들이 잘나고 내가 못나서 사과를 받는 줄로 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이제 알겠다.
몇 달째 시달리는 나를 보던 옆자리 동료는 오히려 잘됐다며 축하를 건넸다.
이제 더는 연락하지 못할 거라며.
과연 그럴까?
제발 그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