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버티기
내가 PT란 걸 받게 될 줄이야. 무미건조한 기계로 굳이 운동을 해야 할까? 하더라도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왜 꼭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받아야 하나? 비용도 너무 사악한데 왜 꼭 굳이? 남들이 멋진 바디프로필을 선보일 때도 부럽긴 했지만 그냥 남의 일이었다. 그런 내가 PT의 세계로 들어서다니.
가장 큰 계기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격무에 시달리고 작년 한 해 승진 공부에 몰입하며 몸이 말이 아니었다. 연말정산 의료비명세서 목록이 빼곡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보살피겠다며 PT를 끊겠다는 남편을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무슨 헬스를 돈 주고받나?라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남편이 PT를 받기 시작한 지 4개월쯤 되자 뒷라인이 달라져 보였다. 둥글하던 어깨에 각이 생기고 축 처졌던 엉덩이가 조금 힙업이 되어 있었다. 연애시절 이후 남편은 20kg가 찌고 나는 10kg가 쪄서, 우리 부부는 동글동글하니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도 남편이 더 불어났기에 방패막처럼 느껴져서 안심이 되었고, 반려자가 나에게 살 빼란 소리를 안 하니 살찐 나에게 무감각해졌다.
동질감으로 똘똘 뭉쳤던 남편이 갑자기 탈출하려고 하니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한 살 어린데, 연상이라고 보면 어떡하지?
마흔을 넘긴 순간부터 흰머리가 무서울 정도로 늘어났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들춰보며 한숨 쉴 때가 많았다. 얼굴이 처진 게 눈에 보였다. 두 달 전, 여권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사장님께서 내 사진을 보정해 주셨다.
"사장님, 여권사진인데 보정해도 되나요?" 물었더니,
"손님들이 원판 사진을 보면 다들 사람 같지 않다고 해서요. 걸리지 않을 만큼만 보정해드리고 있어요."
사람 같지 않다는 표현이 너무 웃겼는데 슬프기도 했다. 모니터 속에 사람 같지 않은 내가 보여서.
어느 날은 딸이 친구네 집에 놀러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너무너무 재밌게 놀다 왔어."
"응~ 친구 부모님께 인사 잘 드렸니?"
"당연하지, 근데 친구 엄마 너무 날씬하고 이쁘시더라. 엄마 하곤 뭔가 달라!"
뭐가 다르냐고 캐묻지 않았지만 느낌이 확 왔다. 엄마가 최고 이쁘다던 딸이 객관적인 눈을 갖게 되었다는 걸.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나도 PT란게 받고 싶어졌다. 남편이 받고 있는 PT를 알아보니 회당 8,000원만 더 내면 부부가 함께 받을 수 있다고 했다. 1:1 PT를 2:1 PT로 바꿨지만 남편도 함께 건강해지며 적극 찬성했다.
PT란 걸 처음 받던 날, 멘털이 탈탈 털렸다. 기본 동작인 데드리프트부터 배웠는데 대체 뭔 소리인지? 무릎은 내밀지 말고, 엉덩이는 뒤로 빼고, 턱은 아래로 향하고, 손은 몸에 붙여서 내리라는 데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 운동을 하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자꾸 눈이 감겼다.
"회원님, 눈 뜨셔야 해요." "조금만 버티세요."
강사님의 멘트, 아이를 낳을 때 듣던 말이었다.
나는 버티는 운동에 유독 약하다. 어릴 때부터 오래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같은 운동은 질색이었다. 산을 좋아하지만 오르막 때문에 등산에도 취약하다. 그런데 PT가 버티는 운동이었다니, 그냥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돈과 시간 들이면 되는 줄 알았던 대상들이 막상 그 세계에 들어가 보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골프도 그랬는데 PT는 더 했다. 멋진 바디프로필이 돈과 시간만으로 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왜 세상은 버팀의 연속일까? 버티지 않고 즐기면서 얻을 순 없을까? 미련하게 버티다 위궤양게 시달리고 출근길에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던가. PT라는 운동이 버티는 종목이라니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들이 솟아났다.
강사님은 계속하다 보면, "아~ 좋다! 시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셨다. 뭔 소리야 하면서도 그 감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고 계셨다. 보기 좋은 근육을 자랑하며 운동하시는 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사람을 보면 얼굴보다 몸에 근육이 있는지 없는지 보게 되었다.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 상대가 상사가 아닌, 조직이 아닌,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이니까. 더 나은 내가 되는 일에는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익히 경험했으니까. 이번에도 뚜벅뚜벅 가보기로 했다.
버티는 건 싫어하지만, 꾸역꾸역 따라가는 건 또 내 주특기니까.
수요일 금요일 아침 6시면, 나는 헬스장으로 향한다. 질질 끌려서라도 그냥 가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