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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광석 Oct 13. 2024

낙엽처럼


가끔 한 가지 색으로만 보일 때가 있어

노란 색으로 보이는 날

홀로 주안동 거리를 걸었어

빈곤해지는 은행나무들을 보며

빈곤한 지갑을 떠올리는 거야

색이란 감정의 집합이야

옆구리 허전한 바람에

떨어진 은행잎 속 숨겨진 기억들이

노랗게 올라왔어

청바지 청자켓이 어울리던 스무 살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깔깔거리던 나는

칼라를 세우고 스프레이에

반짝이는 구두를 기대했지

풍성한 푸르름이 지속될 것만 같았던

스무 살의 날들이

푸석푸석해져 낙엽처럼

머리 한 구석에 간신히 걸려있다가

월급통장처럼 쉽사리 앙상해지는 날이 되어서야

은행잎에 섞여 떨어진 거야

빛나는 황금색을 꿈꾸며 걸었던 거리

어느덧 누렇게 튼 얼굴로

코트칼라를 세우고 움츠린 채

낙엽처럼 쓸려가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다시 다가올 가을을 기대하며

노란 은행잎을 보며 버티고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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