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by 레몬향품은

젊은 시절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나는 몇 년 전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어머니의 인지 장애 증상을 발견했다.


해가 뜨면 햇살이 큰 창 너머로 햇살이 많이 들어와서 큰 방안을 밝혀 줄 만큼 포근하고 따뜻한 집이었지만, 여름엔 유난히 더워서 빨리 지치고, 겨울엔 공기가 매서워서 추위에 몸이 항상 얼음같이 느껴지게 되는 오래된 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겨울날, 어머니는 잠을 깊이 못 자는 날들이 많았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 자야 하는데, 늘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고, 점심을 먹고 나면 소리 소문 없이 잠들어 있었다.


단지 잠을 잘 못 자고 밤과 낮이 바뀌어서 인지 장애 증상이 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인지 장애 증상은 심해져 갔다.


'밤에 뭘 하기에 잠을 못 자는 걸까.'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엄마! 나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래."

"니 맘대로 해라."

그날 밤, 자는 척을 하는 나를 깨웠다.

"○○! 저기 앞에 동네에서 잔치한다 저기가 어디고 가보자." 순간 깨달았다.


'내가 겉으로만 엄마를 돌보고 있었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힘든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에 비하면 이런 시련쯤이야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했다.

나에게 눈물이란 사치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머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 아파하였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아파도 아픈 표현을 안 하시던 모습들을 나는 곁에서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렇기에 더욱 슬퍼하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과 같은 일들이 자주 반복되었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불편한 몸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쳐서 오고, 들어오다가 문 턱에 걸려 넘어져 상처가 생겨서 오고, 다쳐서 병원에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안 방에서 거실을 따라 이어진 현관문 옆 신발장 주위가 나의 침실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깊은 잠은커녕 쪽잠을 자기 일쑤였고, 대부분의 날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랜 시간 불면증과 어머니의 병세 악화를 나 홀로 감당해야 했었기에, 심한 스트레스로 며칠 동안 말을 잃었다. 급기야 응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자극이 되었는지 어머니는 그날은 예전처럼 총명해진 것 같았다.


내가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아침에 잠들어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날 때까지 어머니는 응급실 침대 옆 구석에 있는 낡은 간이 의자에 힘든 몸을 의지한 채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죄스러움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병원에서의 일이 생각이 날 때면 더 효도해야지 하는 마음을 다지곤 한다.


지금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셔서 매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가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도망가고 싶을 만큼 끔찍하다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지만 견디기 힘든 순간은 잊고 고 싶다.


여전히 나는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글을 쓰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그리운 것은 아마도 불면증이 가져온 에피소드가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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