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새로운 도전. 글쓰기를 시작한 지 2주 차가 되는 월요일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을 때,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OO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다가 다쳐서 보건실에 있는데, 통증이 심하다고 해서 조퇴하고 병원에 데려가셔야 할 것 같아요."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조퇴하지 않고 하교 후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가면 될 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통증을 심하게 느껴 보건실 선생님이 종합병원 응급실로 함께 동행했다고 했다.
순간, 왜 종합병원이었을까? 왜 응급실로 갔을까?
작은 타박상이 전부 일 텐데란 안일한 생각을 한 것이었다.
병원에 자주 다녀본 경험으로 응급실에 가는 건 나에겐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다.
종합 병원이 집과 멀기도 했고, 응급실에서 겪은 경험은 그리 좋은 기억을 남긴 곳이 아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도 했고, 보호자가 없으면 진료가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많이 놀란 모습에 조금 의아했었다. 아이의 팔에 깁스가 되어 있었고, 그때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겁이 많은 아이라 조금만 다쳐도 아파하는 아이였기에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보고 너무 놀랐다.
팔꿈치 뼈가 부러지면서 성장판에 손상이 된 것을 확인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 큰 소리로 담당의사에게 물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지...
슬픔이 몰려왔지만, 슬퍼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할지, 깁스를 6개월 동안하고 있어야 할지 결정이 필요했다.
깁스를 하면 팔이 조금 돌아갈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있다고 했고, 수술을 하면 빠른 회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을 하면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상황일 수 있으니 걱정이 되었지만, 수술을 하기로 했다.
겁 많은 아이가 수술 과정을 감당하기엔 힘들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나 또한, 무섭고 두려웠다.
'정신 차리자. 의연하자.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겁먹은 엄마를 보면 분명 아이는 더 겁을 먹을 것이다.'
깁스를 하는 동안에도 , 수술 결정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수술일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엄마구나!'
아주 어릴 때부터 유달리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이였기에, 눈빛만 봐도 얼마나 아픈지 알 정도로 아이와의 공감대 형성이 잘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런 내가 엄마라고. 휴' 이런 상황이 닥치니 그저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아이를 달래며 수술을 설득하는 동안, 선생님들의 빠른 대처가 큰 도움이 되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오는 동안 '선생님도 얼마나 놀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우려를 외면하고 그냥 집으로 곧장 왔다면, 아이는 더 통증이 심했을 텐데,.. 나는 아이의 고통을 방관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담임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라서 차마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아이의 상태가 궁금해서 늦은 시간까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에 진작 연락을 드릴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아껴주시는 마음이 많이 느껴졌고, 고마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하루였다.
각박하고 험한 세상에 좋은 선생님들이 곁에 있어서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아이의 팔에 남아있는 수술 자국을 볼 때면, 그날의 감사함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