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이 있던 날

그림일기 2

by 레몬향품은

직접 찍은 사진을 강사님께 보여주면서 그리고 싶다고 얘길 했다. 부산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언젠가 해운대에 자리한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본 멋진 바다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 속의 풍경은 몇 주에 걸쳐 완성되었고, 정말 기뻤다.


두 번째 그림은, 먼바다 너머 산이 보이고, 울창한 무기개빛 나무들이 있는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한 추상화였다. 그 또한 선물을 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해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린 것이기에 흐뭇했다.


유능하신 강사님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산과 들과 바다, 나무, 멋지고, 화려한 여러 편의 그림을 그려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러다 유독 관심이 가고, 간직하고 싶었던 그림이 있었다. 수업 중에도 자꾸 눈이 가던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색을 만들려고 창가 옆 그늘에 말리고 있는 다른 수강생의 그림이었다.


높은 야자수 나무가 줄 지어 있고, 새 하얀 모래사장과 연이은 깊고 푸른 바다에 크고 작은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림이었다. 언 뜻 보기엔 별것 없이 단순해 보였지만, 나무 잎에서부터 파도의 물결 하나하나, 모든 과정이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었다. 나이프로 완성한 작업이 특별해 보였다.


“선생님! 다음 그림은 저걸로 그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그리셔도 돼요”

주저 없이 나는 강사님께 동의를 구하고 그리기 시작했다. 공책 크기의 작은 액자 그림이었다. 그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원본 보단 투박하고 멋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렇더라도 내가 완성했다는 것이 좋았다. 완성 후 사진으로 찍어 카톡 프로필에 한동안 올려놓기도 했다.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심리 안정을 준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 한 들 그저 그림일 뿐인데, 얼마나 마음의 치유가 될까?라는 의심이 있었다. 미술관을 자주 다니면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을 뿐, 체감하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그림을 배우면서 그리는 과정과 시간들이 마음의 위안을 준다는 것을 체감했다. 색과 색을 섞으면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 가는 ,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에 직접 만든 색들이 입혀지는 것,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과정 같아서 너무 설레고 행복했다.


지금은 포장지에 입혀져 창고방에 잠들어 있다. 힘든 시간들이 있을 때면 가끔 꺼내어 보기도 한다.

‘그랬었지. 그 힘든 시기도 잘 견뎌 냈지. 칭찬해’ 투박하고 많이 미흡한 그림이지만, 그때는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 학원을 향하면서 설레었다.

‘오늘은 또 어떤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볼까?’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


여전히 난 그림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다. 언젠가 또 이젤 위에 큰 캔버스를 얹고, 나이프로 한 땀 한 땀 그려나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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