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가 열이 며칠째 지속되어 응급실에 갔다. 해열제가 듣지 않아서 입원해서 여러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격리 병동에 입원을 했다. 다행히 하루 밤을 지나고 나니 열은 떨어졌지만, 검사 결과 신장에 이상이 있었다. 다른 검사 결과를 봐야 해서 6인 병실로 옮겨 확인하기로 했다.
환자가 많이 없어서 6인실을 4인실처럼 쓰게 됐다.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는 병동이라 보호자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거동을 못하고, 정신도 혼미해 위험하니, 보호자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로 위험한 상태여서 예민한 상태였다.
병실에 환자들은 모두 장기 입원 환자들이었다. 암이 진행되어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서 장기간 병원에서 지내는 사람, 신장 투석을 받는데 뼈를 다쳐서 한 달째 입원 중인 사람, 일을 하다가 건강에 이상 증세를 느껴서 검사받으러 온 사람, 이렇게 어머니와 병실을 함께 썼다.
병실을 옮기면서 여러 가지를 신경 쓰느라 환자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저 귀로 들리는 얘기에 작은 반응을 보이며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는 정도였다.
보호자가 있으면 안 되는 공간이었지만, 다들 연세가 많으시고, 위험한 상황이라 보호자들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잠을 잘 못 자는 나는 이런 상황이 조금 불편했다.
여자 환자만 있는 병실에 남자 보호자가 한 명 있어서 불편한 것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닌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야 했다. 엉덩이에 상처가 나서 기저귀를 벗기고 환풍을 시켜 줬어야 했기에, 남자 보호자가 신경이 쓰여 칸막이 커튼을 열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깔끔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의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커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행히 옆 칸의 환자가 없어서 자유롭게 있었는데, 다음 날 다른 환자가 옆 칸 침대에 입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증세가 좋아진 환자가 옆 칸 침대를 쓰게 된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말도 못 하고 사람들도 만날 수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는 그 환자는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계속 말을 하고 투덜거렸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자식 흉을 보고, 잠도 안 자고 계속 말을 했다.
나는 낮에도 밤에도 어머니의 병세를 지켜봐야 했기에 깊이 잘 수가 없어서, 옆 칸 환자의 못마땅해하는 것들을 고스란히 다 듣고 있어야 했다. 어머니를 간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밤새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듣고 있는 것이 고통이었다.
좋은 말도 많이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며칠 밤을 그렇게 짜증 썩인 말들을 듣고 있으려니 화가 났다.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더욱 예민해져서 그럴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나를 못 마땅하게 보던 옆 칸 환자가 딸에게 힘듦을 호소한 것이다. 이해는 한다. 24시간 옆에서 간호하는 딸이 있는 어머니가 부러웠을 것이고, 기운 없다고 하니 밥을 떠 먹여주는 것이 부러웠을 것이다. 충분히 마음이 이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딸은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어느 누가 엄마의 서러움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나였어도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따지고 물었을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도가 지나쳤다.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어머닌 손에 힘이 없어서 혼자서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먹은 거라곤 우유와 토마토 주스 한 잔. 그것이 전부였다. 밥을 떠 먹이고 있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그 환자의 딸이 말을 흘린다.
“손가락이 부러졌나? 말 조심해라. 가만 안 둔다.”
힘없는 어머니에게 밥을 떠 먹이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에게 한 말이었구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난 분명 딸과 아들들을 흉보는 그 환자가 준 귤을 먹고는 한 마디 건넨 것뿐이다.
“어르신, 따님이 사 오신 귤 정말 맛있어요.”
그 말이 그렇게 모욕스럽게 얘기할 만큼 큰 문제인 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난 그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병실 안 쪽에 있던 남자 보호자가 지나가면서 더 거든다.
“적당히 하세요”
참,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내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을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말을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남자 보호자는 어머니 옆 칸 환자가 말을 할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다. 타이르듯 잔소리를 하고 흉을 보는 것을 나는 보았고 들었다. 적반하장이다.
누가 누구에게 그만하라는 것인가? 본인이 한 행동과 말은 잊은 채 타인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그 사람의 시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긴 것은 그 남자도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이해가 되는 것이고, 타인이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인가?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글을 쓴다니 이해 불가.
더욱 웃긴 것은 옆 칸 환자의 자녀들이 오면 그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 위하는 척은 혼자 다 한다는 것이다.
“참. 어이없다 정말.’
옆 칸 환자와 사담을 나눌 때 자식들 흉을 너무 많이 보면서 어머니에게 질투 섞인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얘기한 적이 있다.
"보세요 어르신, 걷지도 못하고 식사도 못하시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이에요. 감사하게 생각하셔야죠."
난 분명히, 이건 질투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식의 말투였다. 그 말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나의 오지랖이 만들어낸 오해의 시작.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지정하고 흉을 보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랬다. 여러 사람에게 모욕당하는 기분.
그건 분명, 환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들의 고통과 슬픔들을 풀기 위해 한 방향을 향해서 던지는 돌이었다.
‘그래. 그렇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은 거구나!
그런데, 뇌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나오는 그런 말들을 하고 나면 자신들의 마음은 편한 걸까! 그렇다면, 마음 넓은 내가 희생하지 뭐.’라고.
난 이렇게 또 인생을 배운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