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4살이던 해에 아들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 같은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 아들에게 할아버지는 아빠, 엄마, 친구 같은 존재였다. 떠난 후에 충격을 받은 아들은 한동안 분리불안을 겪기도 했다.
"앰뷸런스가 지나간다 엄마!"
"어느 할머니가 아프신가 보다"
"할아버지... 으앙..."
할아버지와 늘 함께 놀던 놀이터 앞에서 응급차가 지나가는 것을 듣고, 아들과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아들이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대성통곡을 한다.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 겨우 달래고는 집으로 귀가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계속 아들은 나와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했다. 심리 상담을 받아 볼 정도로 불안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엄마, 나 출근할 테니깐 OO이 잘 부탁해요."
"알았다. 화장실 갔을 때 얼른 가라."
출근을 하면서 아이를 떼어 내고 외출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존재감이 컸던 만큼이나 허전함도 매우 켰다.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동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엄마! 저기 갈색 강아지 내가 키울래."
"귀엽네.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싫어요. 저 강아지 키울래요. 키우게 해 주세요."
"키우면 강아지 똥도 치우고 밥도 다 먹여 줘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어?"
"아니... 똥은 엄마가 치워주면 안 돼요?"
막무가내로 조르기 시작한 아들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까지 조르기 시작했다. 아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키우기로 했으나, 나도 애견이 아들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아이를 입양했다. 2살쯤 되어 보이는 갈색 눈에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인, 어느 산에서 유기견으로 발견되었다. 사연을 들으니 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이름을 뭐라고 하지?"
"음... 가을이! 가을이라고 할래요."
"왜? 가을이야?"
"가을에 만났으니깐요."
아들은 직접 이름을 짓고, 간식을 주고, 매일 산책도 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아들의 공허함은 많이 채워진 듯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늘 소홀했다. 사랑이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늘 부족했던 부모와 다르게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덕분에서인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듯했다. 매일 학교를 다녀오면 강아지와 놀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함께 하며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아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늘 달고 다니던 비염이 심해지고, 기침도 자주 하고, 손바닥에 발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잦은 질병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가 아프다 보니 강아지를 돌보는 것에 소홀해졌다. 늘 외출할 때면 산책을 못 시켜준 것에 미안함이 컸다.
"발진이 계속 심해지네요. 치료가 길어지겠어요."
"침 맞아야 하는데 잘 참을 수 있지?'
"싫어요. 안 할래요."
"침 잘 맞으면 네가 좋아하는 로봇 사 줄게."
쉽사리 낫지 않는 발진으로 한의원이며, 피부과며 여러 곳을 다녔다. 1여 년을 다녀도 낫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무엇 때문인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완치되지 않은 손으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아! 안 되겠다.' 순간, 우리와 인연이 안 되겠단 생각에 결심을 했다.
"아들아! 우리 이제 가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자."
"왜요?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요?"
"같이 살고 싶은데, 우리가 못 보살펴주니깐 잘 키워 줄 수 있는 곳에 보내줘야 될 것 같아. 자주 보러 가면 되니까 그렇게 하자."
"싫어요."
울음을 터트리는 아들의 마음을 뒤로한 채, 아들이 학교를 간 사이 동물 보호 센터에 보내야 했다. 가을이도 이제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을 아는 듯했다. "잘 지내 가을아." 문을 닫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만난 지 3년이 되던 해에 가을이와 이별을 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아쉬움에 마음이 늘 무거웠다.
가끔 아들과 산책로를 걷다가 강아지들을 보면 가을이 생각이 난다. 가을이를 보낸 뒤 찾아 가 보지 못한 미안함이 커서이다. 아들은 후로도 한동안 발진과 여러 질병으로 힘들었다. 호전되었을 땐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자연스럽게 잊혀 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던 강아지를 보낸 미안함이 크다. 가을이를 보내던 그 해도 이름처럼 가을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늘 생각이 난다. 몸과 마음이 아픈 아들을 위로해 주었던 고맙고 사랑스러운 가을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길 기도한다.
'고마워 가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