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이름으로

by 레몬향품은

그녀가 떠난 지 한 달과 닷새가 흘렀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그리움으로 아파할 시간조차 없었다. 문득, 아무 예고 없이 기억이 훅 하고 밀려오면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애써 외면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날들을 그렇게 건너왔다. 바쁜 나날을 즐기면서 애쓰면서.

매일을 분주하게 채우며 지내느라 마음을 들여다볼 틈조차 없었다. 예고 없이 기억이 치고 올라오면 마주하지 않으려는 선택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날짜들은 무심히 넘어갔다. 태연한 얼굴 뒤에 남은 균열을 감춘 채 분주한 일상에 나를 밀어 넣으며.


그러던 어느 날, 감정이 갑작스레 무너졌다.

참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듯 이유 없이 가슴이 조여 왔다. 나는 공중을 향해 혼잣말을 던졌다.

"이런 취급을 견디며 계속 버텨야 할 의미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내뱉은 문장이 나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삶을 붙들고 있던 축이 흔들렸다. 의미라 믿고 있던 것들이 힘을 잃고 존재의 이유가 공백처럼 비어 버린 시간.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이 상황이, 이 공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시장의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 과일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진홍빛으로 익은 체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또다시 목이 메었다.

‘즐겨 찾던 맛이었지.’

발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바라보다가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흘러갔다. 그저 보고 싶다는 말만 남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제주귤농장입니다. 조생귤이 잘 익어 주문받습니다.”

익숙한 문장이 낯설게 다가왔다. 귤이 제철이 되면 나는 늘 그녀에게 보냈다. 반복되던 선택이었고 특별할 것 없는 습관이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이 되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알림톡 왔다.

“곶감 함께 나눠요.”

그리움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찾아온다.

과일 가게 앞 진열대에서 문자 한 통 속 문장에서 나눔이라는 말의 온기로. 이별은 이렇게 스며든다.

나는 오늘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다른 이름을 붙인 하루를 품은 채 조용히 살아낸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


어머니가 떠난 뒤로 시간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흐른다. 내 마음속에서는 자주 멈춘다. 길을 걷다 문득 스치는 냄새 하나 계절의 온도 하나에도 어머니 얼굴이 겹쳐진다. 살아 계실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사소한 순간들이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나를 붙잡는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도 있었다. 사랑은 늘 거기에 있는 것이라 믿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식을 낳고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떠나신 후에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어머니라는 언덕이 얼마나 크고 찬란한 것인지를. 엄마로 살아가는 하루가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이전 12화세부의 밤은 나를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