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문자가 왔다. "전화 해지 통보합니다"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지우라는 의미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추스를 시간이 겨우 한 달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슬펐다. 애써 슬픔을 감추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통보이자, 더는 부정하지 말라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강해져야만 했던, 그러나 강하지 않은 나. 누구보다 기댈 언덕이 간절했던 내성적인 한 인간으로서 나였다.
15년 전, 미워했으나 누구보다 사랑했던 큰 버팀목인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이후 2년 동안 그리움에 울부짖으며,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깊은 시련 속에서 헤매야 했다.
2년 전에는 사랑했고, 미워했고, 그리워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다.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이 아팠고, 우리를 갈라놓은 현실을 원망했다. 원하지 않은 이별을 겪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모든 삶이 그렇듯, 내 의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별로 남기고 싶었다.
“걱정하지 말고 떠나. 우리는 잘 견뎌낼 거야.”
보내야 했기에 미련 없이 보냈지만, 남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슬픈 이별이 아닐 수도 있었음에도, 가슴 한구석에 남은 응어리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한 달 전. 마지막 남아 있던 나의 버팀목이자 유일한 언덕이었던,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15년 전처럼 묵묵히 보내드렸다. 입관하던 날, 곱게 화장을 하고 환한 얼굴로 누워 계신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 그럼에도 고생하지 않고 편안히 가실 수 있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다시 눈물을 삼켰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나의 어머니 역시 자식 걱정뿐이었다. 그중 늦둥이로 자란 나를 보실 때면 걱정은 늘 더 깊어졌다. 그래서일 것이다.
어머니의 자녀들이자 나의 형제들, 그들이 지금은 나의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 안쓰러운 딸을 위해 어머니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10년 전. 어느 드라마에서 나의 눈물 버튼을 눌러버린 대사가 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재방송을 보다가 다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곤 이내 눈물을 닦는다.
“너는 언제 제일 엄마가 보고 싶냐”
“매일이요"
나는 오늘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낀다. 세월이 흐르면 그 빈자리는 점차 흐릿해질 것이다. 그러다 문득, 다시 선명해질 것이다. 그런 반복되는 시간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가슴속에 어머니를 품고, 글 속에 어머니를 담으며, 그리움을 오래도록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