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전부터 목 통증이 심했다. 앞으로 숙여도, 뒤로 젖혀도 찢어질 듯한 통증이 목을 타고 어깨까지 번졌다. 밤에 누우면 편히 돌아눕지도 못했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숨이 멎을 듯 아팠다. 스트레칭을 하고, 목 통증에 좋다는 보호대를 구매해 착용했다. 잠깐은 괜찮은 듯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사진 속 내 목뼈는 심하게 일자로 굳어 있었다. 소위 ‘거북목’이라 불리는 상태였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말을 가볍게 여겼던 나였다. 하지만 그 ‘누구나’ 속에 포함된 내가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스스로를 얼마나 혹사시켜 왔는지, 고개를 숙인 채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2주 정도 물리치료를 해 봅시다.”
“네.”
“아악.”
“소리 내지 마세요.”
목에 놓인 주사는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십여 년 전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을 때,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생의 울음을 다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큼이나 아팠다. 왜 몸은 이렇게 한 번씩 크게 신호를 보내는 걸까. 안 아프고 살면 좋으련만, 잊을 만하면 하나씩 찾아오는 통증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매일 오셔서 물리치료 하세요.”
주사를 맞은 당일은 치료를 할 수 없어 다음 날부터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매일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어떤 주는 세네 번. 그렇게 2주가 흘렀다. 통증은 조금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얼마나 더 치료를 해야 할까요?”
“수술을 한 상황이 아니라서 한동안은 계속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막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같았다. 그래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은 병원 점심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점심시간이 몇 시부터예요?”
“12시 30분부터예요. 12시 20분까진 오셔야 합니다.”
치료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마음이 급해졌다. 괜히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다음 치료하러 가세요.”
“시간이 되는가요? 점심시간이잖아요.”
“괜찮아요. 오신 김에 다 하고 가셔야죠.”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형식적인 친절이 아니라, 아픈 사람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진심처럼 느껴졌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늘 멍한 상태였다. 주사를 맞은 뒤로는 통증이 줄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말을 섞고 싶은 기운도 없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치료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괜찮으세요?”
밝으면서도 나지막한 그 한마디가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나를 환자로만 보지 않고, 사람으로 대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짧은 인사 한마디에도 마음이 놓였다.
고마운 마음에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리고 싶었다. 주소를 몰라 한 번은 그냥 돌아왔지만, 결국 다른 선생님께 물어 음료를 배달했다.
“선생님!”
“네? 어머님이 부르신 거 맞아요?”
“네. 라테 드세요.”
“아! 어머니셨군요. 한참 찾았어요.”
“라테 좋아해요? 커피는 매일 드실 것 같아서요.”
“네. 커피인 줄 알고 봤는데 딸기 우유라서 정말 좋았어요. 잘 마실게요.”
“네.”
별것 아닌 음료 한 잔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고마움과 위로가 담겨 있었다.
살다 보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타인의 작은 말 한마디가 마음의 방향을 바꿔 놓는다. 그날 치료사의 “괜찮으세요?”는 통증으로 움츠러든 내 작은 심장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몸의 통증은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따뜻한 목소리는 오래도록 남아 나를 지탱해 준다. 이제는 고개를 숙인 채 살아가는 대신, 조금 더 고개를 들고 나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