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모델하면 어떨 것 같아요?”
평범하던 하루의 공기가 그 한마디로 달라졌다.
아들은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괜찮지. 키도 크고 다리도 긴 편이니까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내 하체가 긴 편인가요?”
“그래. 체형이 외국인 체형이라 가능성 있어 보여.”
“그래요? 그럼 살 빼야겠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아이의 마음속에 작은 도전이 자리 잡은 듯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우연히 청소년 잡지 모델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아들이 도전해 보고 싶어 하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망설일 틈도 없이 지원서를 냈다. 여러 수업과 학원을 권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문득 남편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래전, 한 유명 배우에게서 배우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가능성은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내민 작은 도전을 쉽게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도전은 결과와 상관없이 설레는 경험이 된다. 내가 그랬듯, 아이도 그런 시간을 겪어보길 바랐다.
지원서를 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얼굴 사진과 전신사진을 보낸 뒤 곧 카메라 테스트 오디션 제안이 이어졌다. 준비를 시작하면서도 괜스레 설레었다. 옅은 여드름을 가릴 마스크팩, 깔끔한 청바지와 흰 맨투맨, 깨끗한 운동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 꾸미기보다 단정함을 살리고 싶었다. 기본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통했던 걸까. 아들은 짧은 인터뷰와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합격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손을 만지작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만큼 긴장했고, 그 설렘은 숨길 수 없었다.
계약 상담 자리에서 담당자가 인터뷰 내용을 말했다.
“학생, 합격 점수가 1점부터 10점까지 있다면 몇 점을 받고 싶어요?”
“10점이요.”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니, 이렇게 열의를 보인 학생은 처음입니다.”
대부분 부모의 권유로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담 내내 아이의 태도는 단단했다. 그 간절함이 느껴져 가능한 한 응원해 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마음에 걸렸다.
장거리 이동과 일정, 그리고 학업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새로운 길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네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충분해.”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해요.”
“재능이 있다면 기회는 또 올 거야.”
“네, 알겠어요.”
상담실을 나오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아이는 스스로 눈물을 닦고 숨을 고른 뒤 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친구들과 통화하며 웃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마음속에서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은 아이에게 오래 남을 것이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도전 자체가 얼마나 값진지 몸으로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하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