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꽃 May 27. 2024

새로운 도전

채소 키우기

사무실 뒷편 한 귀퉁이에 두 평쯤 될까 말까 한 조그만 땅뙤기가 있다. 

겨울 끝자락, 따스한 봄볕이 여기저기 살짝 걸쳐 있을 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여사장님께서 채소 씨앗이 들어 있는 봉투를 몇 개 가지고 오셨다.

출퇴근할 때 별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쳤던 작은 공간에 잡초만 무성한 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는 손수 팔을 걷어 붙이시고 가져오신 채소 씨앗을 여기저기 흩뿌리셨다. 

몇 년 전에는 오고 가는 아이들을 위해 그 작은 공간에 꽃도 심고 작물도 심었다는데 

언제부턴가 길거리 쓰레기들이 나뉭굴고 아무 의미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 해 있었다.

누구라도 지나가면서 새싹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 먹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셨던 것 같다.


가져온 작물은 상추. 깻잎. 아욱이었는데 몇몇 직원이 같이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니 며칠 지나서 금새 조그만 새싹들이 세상에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누군가의 조그만 관심과 정성이 뿌려지니 주변이 점점 환해지는 것 같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번 씩 바라보면서 얘기도 하고 웃음을 나누는 모습이 

차가운 바람 속에도 참 훈훈하게 느껴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싹들을 보니 씨앗들이 골고루 뿌려지지 않았는지 조금 빽빽하게 모여 있었지만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함도 느껴지고 매일매일 바라보는 마음도 새로웠다. 

직원과 같이 산책하다가 오늘도 여전히 파릇파릇한 새싹들을 보면서 문득 “씨를 뿌려 놓으니 알아서 잘 자라네요?”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아침마다 다른 

직원이 물을 길어다 뿌려 주어서 이렇게 잘 자란거에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실 바깥 식물은 씨만 뿌리면 알아서 다들 잘 자라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매일 일찍 누군가가 정성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동물이든 식물이든 

애정어린 관심과 정성이 더해지니 더욱 무럭무럭 쑥쑥 잘 자라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 


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지만 식물 키우기는 젬병인 터라 다른 사람들이 아파트 안에서 각종 야채나 채소를 키우는 것을 보고 한번 따라 해 보고 싶다고 오래 전 부터 

생각했었는데 집에 고양이도 있고 막상 시도 해 볼려고 하니 엄두가 안난다는 핑계로 여지껏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상추가 너무 많아서 솎아 줘야 한다'시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시길래 이번에는 겸사겸사 제대로 도전 해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퇴근 길, 다이소에 들러 별로 크지 않은 사각 화분과 모종을 위한 흙과 배양토를 샀다. 나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기본지식은 완전 꽝이다. 그냥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목말라서 죽지 않도록 부지런히 물만 잘 챙겨 주는 스타일이다. 식물의 종류나 특성과 상관없이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은 식물들도 많다.

그래서 식물 키우기를 잘 하시는 직원에게 말했더니 흔쾌히 화분에 옮기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상추가 잘 자라게 하려면 원래 땅에 있는 흙과 사가지고 온 흙을 잘 섞어 줘야 한다고 했다. 화분이 별로 크지 않아서 상추 몇 개 심으니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 

마음같아서는 더 큰 화분에 몽땅 심어다가 틈나는 대로 고기도 싸먹고 샐러드도 해 

먹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너무 과욕이다 싶어 이번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상추만 열심히 키워보기로 했다. 일단 키워보고 잘 된다 싶으면 더 큰 화분을 사다가 다른 채소들도 

이것저것 심어 볼 참이다. 

“그냥 물만 주면 되는 거죠?” 라고 물었더니 “햇볕도 있어야 하고 바람도 쐬어줘야 

하고 물도 자주 줘야 한다”고 했다. 어렵다! 

더군다나 내 상황에서는 한가지 더! 우리집 냥이 '이오'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봐야 하는뎅~ 


혹시 또 모르지... 이번 기회에 생각보다 상추가 너무 잘 커서 재미 붙으면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다른 작물들도 관심을 갖게 될테고 시간이 더 지나서 어느 날엔 챙이 큰 

모자 쓰고 각종 야채와 채소들이 가득한 넓은 밭에 쭈그리고 앉아 한방울 한방울 노동의 흔적인 짭조름한 땀을 닦아내며 잡풀을 메고 있을 수도.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나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전원주택으로 고고~ 할지도!^^

직접 키운 상추를 먹어보기도 전에 내 꿈은 벌써 멀리멀리 날아 다니고 있었다. 

몇 개 안되지만 부들부들 연하고 싱싱한 상추를 뜯어 먹을 생각을 하니 요리에 별 관심이 없는 나의 마음조차 벌써부터 설레기도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오늘이 겨우 삼일째! 

물을 주려면 매번 사각화분을 반대 쪽 베란다로 옮겼다가 물이 다 빠지고 나면 다시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즐거운 수고? 정도로 여기고 바람이 잘 드나들도록 베란다 창문도 열어줬다.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물은 얼마나 자주 줘야하지? 몇 번이나 뜯어먹을 수 있을까?.. 

꼭 어린시절로 돌아가 소꿉놀이 하는 기분이다. 


나의 새로운 도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도전!     



작가의 이전글 장미의 미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