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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Sep 15. 2024

강아지와 길냥이

몇 년 전 같이 근무했던 여선생님이 강아지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직장이 조금 먼 곳이어서 여선생님과 교대로 카풀을 했는데 운전하면서도 먼발치에 있는 작은 동네 안에 구석구석 숨어 있는 강아지들을 발견하시고는 ‘어머머 저 강아지 좀 봐, 아이구 예뻐라’하시거나 ‘오메 저 개는 비오면 피할 곳이 있으까?, 아이구 안스러워라~’하시며 한 마리 한 마리 일일이 눈에 담으셨다. 

평상 시에도 자전거 동호회를 하시는데 시골길을 달릴 때 마다 개들이 눈에 밟혀 가끔은 '자전거에서 내려 쉬면서 먹으려던 자신의 간식을 통채로 주고 오기도 한다'고 했다. '전생에 개와 무슨 인연이 있어 저렇게 개만 보면 예뻐하시고 걱정하시고 발걸음을 못 떼실까?' 궁금 해 하며 조금 별스럽다 생각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집에도 3마리의 강아지가 있는데 모두 직장 근처에서 발견한 유기견들이고 한 마리는 눈이 아파서 큰 수술을 했고 나머지 두 마리도 계속 병치레를 해서 광주에서 약 처방을 받아 계속 약을 먹인다'고 했다. 말씀을 계속 나눠보면 심성도 고우시고 유쾌하시고 긍정적인 분이시라 ‘좋은 일 하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겨울방학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이상 학교를 비워야하니 걱정이 있으시다며 나에게 대뜸 이런 부탁을 하셨다. "내가 그동안 학교 근처에 있는 강아지들 밥을 챙겨 줬는데 방학이어서 누가 신경 안쓰면 다들 굶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사료 20kg 한 박스 창고에 사다 놓을 테니 혹시 나 대신 밥 좀 챙겨 줄 수 있을까요?" 조금 귀찮은 부탁이긴 했지만 어차피 나는 계속 출근을 해야했고 동물을 좋아하는지라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점심을 먹고 산책 겸 나와서 관사 옆에 놓여 있는 빈 그릇에 한 바가지씩 밥을 챙겨주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들이 지나가다 먹기도 하고 다른 동물들도 시간 차이를 두고 허기를 채우며 힘든 겨울을 이겨 내는 것 같았다. 하루에 적지 않은 양을 퍼 주는데도 다음 날 보면 금새 뚝딱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모습에 흐뭇하기도 했다.

그 후로 선생님도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시고 나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서로 가끔 소식을 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현재 나의 모습을 보니 그 선생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몇년 전, 내가 키우던 길냥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서 가서 주사를 맞고 돌아왔다. 의사선생님께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었는데 마침 휴가 계획이 있어서 할 수 없이 시부모님께 맡기고 휴가를 갔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님께 전화를 받았는데 '냥이 상태가 안좋아져서 병원에 가다가 택시 안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슬퍼할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 삭이다가 돌아와서도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두고두고 마음 한켠이 아렸었다.

그 후로 아파트 내에서 새끼고양이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우리 냥이의 남은 사료를 길냥이들에게 챙겨주었다. 직장 주변에서도 여지없이 길냥이들이 보여서 아예 통에 담아서 차에 가지고 다니다가 눈에 보이는 냥이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길냥이는 보통 3년 정도를 산다는데 그 중 하루라도 밥 걱정없이 배불리 먹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과 먼저 하늘나라로 간 우리 냥이에게 안녕과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길냥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길을 가다가도 구석에 숨어 있는 냥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근처에서 울거나 싸우는 냥이들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도 동물이나 곤충을 좋아하는 편인데 한번은 큰 아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다들 깜짝 놀라며 자초지종을 묻자 '엄마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새끼고양이만 한 자리에서 계속 울고 있어서 데려왔다'고 했다. 큰 아이가 불쌍하다고 데리고 온 새끼고양이를 바로 데려다 놓을 수도 없고 해서 정 안되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키우려고 마음 먹었는데 씻기면서 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디에서 다쳤는지 한쪽 발가락이 모두 짓눌려 있었다. 전에도 유기동물보호센터와 몇 번 통화한 적이 있어 바로 전화해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직접 데리러 오셨다. 우리와 인연은 아니지만 건강하게 살길 바라며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보내주었다. 그렇게 접수된 동물들은 치료하고 나서 다 나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낸다고 한다는데 다시 건강 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 해 보니 전에 그 여선생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먼저 키우던 냥이를 보내고 3년 쯤 지나서 엄마 잃은 어린 냥이 좀 봐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 먼저 간 냥이를 잘 돌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사랑했던 마음을 다른 동물에게 주고 싶지 않았으나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새끼 냥이도 어차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니 할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 해 보면 새로 온 냥이에게 내내 아프고 힘들었던 내 마음도 치유를 받은 것 같다. 먼저 간 냥이가 많이 아파하지 말라고 날 위해 선물을 남겨놓고 떠났나 싶기도 하다. 

어느 해 8월 25일, 우리 집에 새 식구로 들어와서 우리는 '이오'라고 부르는데 남편은 코 옆에 까만 점이 있다고 기어이 '점순'이라고 부른다. 그 꼬맹이가 우리 집에 온지 벌써 4년이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병없이 잘 지내고 있다. 

사실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는 이오와 함께 산책하는 것이었는데 극도로 소심한 성격 탓에 대부분 숨어 있기 일쑤이고 잘 움직이지 않아서 배도 많이 나오고 비만에 가깝다. 그나마 매일 내 품에 안겨 창밖에 서서 잠깐동안 바깥구경 하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이고 나와 체온을 나누는 시간이다. 밥 걱정이 없으니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베란다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유가 그리운가 싶어 짠하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변에 캣맘이 있다는데 사료와 물을 깨끗하게 챙겨주고 주변정리까지 해서 주민들이 불편 해 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무쪼록 주변에 있는 동물들이 아프지 말고 배고프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혹은 개인적 사정으로 더 많은 반려 동물들이 버려진다고 한다. 

부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배고픈 냥이를 위해 한 끼 식사를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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