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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읽고 싶은 특별한 그림책 "Flotsam"

글없는 그림책 "Flotsam" by David Wiesner 리뷰

2학년이 "해리 포터"를 읽는다는 글에 흥분해서 며칠째 글을 막 써대고 있습니다. 요즘 바쁜데... 

오늘은 여름방학 때마다 제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같이 읽는 wordless book 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이 책으로 초등 1학년에서 3학년 학생들과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글이 없는 그림책은 여러 용도로 활용이 가능한 좋은 교육자료입니다.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으려면 스토리의 상상력이 풍부해야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이 훌륭해야하니 좋은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wordless book을 수업 혹은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아이들과 같이 읽는것을 저도 좋아합니다.


이런 동화책 중에는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봐도 이해가 쉬운 책들이 있고, 초등 고학년에게 적당한 책들도 있습니다. 책의 레벨과 독자의 나이에 한정짓지 말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즐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책장을 넘기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따라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시면 좋습니다. 그림의 전체를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도 있고, 그림의 디테일에 꽂혀서 자세히 보는 아이들도 있는데 둘 다 좋은 방법입니다. 


Wordless book은 언어학습을 위해서도 좋은 교육자료입니다. 취학 전 아이들의 경우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여주고 그 안에 있는 물건 혹은 행동에 대한 단어를 아이들에게 이끌어냄으로 단어확장과 단어활용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쉬운 단어나 반복되는 단어로 그림을 묘사할때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줄 수도 있고 비슷한 의미의 다양한 단어들을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고학년 학생의 경우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보고 책의 내용을 글로 써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함으로 글쓰기 훈련도 가능합니다. 초등 3-5학년 학생들에게 각자 wordless book을 나눠주고 글쓰기를 했더니 한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씩 글을 쓰더라고요. 아이들이 다 쓰고 나서 얘기해요. 학교에서 하는 작문은 공부인데 이건 너무 재밋다고요. 책 전체를 글로 옮겨보라고하면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니 이야기의 결말페이지를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추리해서 글로 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림을 보고 묘사를 하는 작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글쓰기를 할 수도 있지요. 


Wordless book은 영어 또한 한국어로도 독서가 가능하기때문에 (심지어 스페니쉬로도... why not?) 이중언어 교육에 관심있는 부모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예전에 중국어/영어의 이중언어 유치원에 출장 스토리타임을 간 적이 있었어요. 일부러 wordless book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림에 있는 개구리의 행동동사들을 영어와 중국어로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책 다 읽고 나에게 중국어 가르쳐주어서 고맙다고 했어요. 스토리타임 끝나고 교사분들께 mind-boggling storytime이라는 칭찬을 들었어요.


출처: amazon.com 

매년 여름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Flotsam"은 "바닷물에 떠밀려온 부유물"이라는 뜻이예요. 이 책에 나오는 flotsam은 수중카메라입니다. wordless book이 한국에 번역이 잘 안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운데 이 책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Caldecott 상을 받은 책이라서 그런지 번역본이 있어요. 한국책 제목은 "시간 상자"입니다. 이 제목도 좋네요. 혹, 책 전체를 보고 싶으시면 유튜브에 찾아보시면 전체 책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2786487&orderClick=LAG&Kc=


이야기가 시작되면 바닷가에서 돋보기로 게를 관찰하고 있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 옆엔 현미경과 망원경도 있네요. 바닷가에 놀러올때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소년의 캐릭터를 상상해보고 싶은 첫 장면입니다. 현미경은 스토리의 뒷부분에서 중요한 물건으로 사용됩니다. 여러번 이 책을 반복해서 읽는 독자에게는 복선이 될 수 있는 물건입니다. 


소년은 우연히 수중카메라를 발견합니다. 카메라를 열어보았더니 필름이 들어있네요. 오늘 프로그램할때 이게 뭐일꺼같냐고 물어봤더니 3학년 학생이 배터리라고 대답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필름 카메라를 모르죠. 이럴줄 알고 백과사전 사이트에서 옛날 카메라 사진들을 준비해서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지요. "One Hour Photo"라는 간판이 붙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이 현상되기를 기다리는 소년의 지루한 장면이 여러컷의 만화처럼 표현되어 있어 재밋습니다. 지루했던 시간이 가고 현상된 사진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이 클로즈업됩니다. 


여기서 책장을 넘기지 않고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소년이 뭘 보고 이렇게 놀랐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얘기할때마다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면 됩니다. 단답형으로 대답한 친구에게는 좀 더 자세히 물어보면 됩니다. "물고기가 있을것 같아요." "물고기? 어떤 종류의 물고기? 무슨 색?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날카로운 이가 있을까? 소년이 왜 이렇게 놀랐을까?" 뭐 이런거죠.


사진으로 본 바닷속의 특별한 풍경들은 놀랄만합니다. 로보트 물고기도 있고 문어가 스토리타임을 해주는 사진도 있어요. 심지어 외계인까지 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진들속에 한 장의 수상한 사진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사진을 들고 있네요. 소녀가 들고 있는 사진속에는 털모자를 쓴 소년이 또 다른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돋보기로 사진을 살펴보던 소년은 현미경을 꺼내어 사진 속의 사진들을 확대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프로그램 중간에 현미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돋보기보다 물건을 더 크게 볼 수 있다는 것도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연결해서 설명해 주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볼이 왜 돌기가 있는 공 모양인지 설명해 주었어요.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본 것이라고요. 


현미경의 배율이 높아지다 한 순간 사진은 흑백으로 변합니다. 사진속 아이들의 옷차림도 옛스러워지네요. 그림을 골똘히 바라보던 소년은 무언가 결심합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소년이 무얼 하려고 하는 걸까요? 몇 년동안 많은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지만 결말을 알아맞히는 아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못 알아맞히면 좀 어때요? 그래서 그 결말에 놀라고 재미를 느낄수도 있지요. 때로는 아이들이 만든 다른 결말이 흥미롭기도 하고요.


스토리타임이 끝나고 빈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스토리의 begining, middle, ending을 각 한 페이지씩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쓰는거예요. 아직 쓰기를 못하는 1학년 학생은 그림으로 재밋었던 장면을 표현하고, 이젠 그림 그리는게 유치한 3학년 학생은 스토리를 잘 요약했어요. 제목을 다르게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1학년 학생이 "Me and Camera"라고 합니다. ("Camera and Me"라고 고쳐주면 grammar 수업이 됩니다.) 3학년 학생은 "Magical Camera"라고 지었습니다. 왜 작가가 제목에 camera를 넣지 않았을까로 토론을 확장할수도있지만... 시간관계 상 오늘은 참았습니다.


글도 없는 40페이지의 책을 읽는데 30분 정도 소요했고 독서 후 활동에 30분 썼어요. 한 시간 꽉 채웠지만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았어요. Wordless book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직접 스토리를 말해보도록 유도하는 수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스토리타임마다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듣기만 하던 아이들이 반대로 나에게 자신이 스토리타임을 해 주는 것이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어냅니다. 좋은 리스너로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놀라운 단어능력을 잘 들어만 주고 맞장구 쳐주어도 아이들은 그 시간을 너무나 즐기게 됩니다.


글이 없어서 더 재밋는 책 "Flotsam"을 "해리 포터"에 지친 2학년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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