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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Apr 19. 2023

[병원인턴]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감정과 태도사이에 '이성'이라는 투석기를 두자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자'

요즈음 특히 공을 들여 경계하고 있다.

퐁당퐁당(정규 근무 - 당직 - 정규 근무 - 당직) 돌을 던지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간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그것마저 방전 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열심히 그리고 긍정적으로 1년을 보내겠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내과 당직 근무 앞에서 첫 위기가 찾아왔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것처럼, 피로한 신체에 피로한 마음이 깃듬을 깨닫는.

표정에는 미소 대신 무표정이 자리 잡혀가고,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았던 여유가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늘 병동에 들어가며 간호사 선생님들께 건네던 인사도 드문드문 해져간다.

인사를 하더라도 허공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무미건조하게 나온다.

환자들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겠다는 다짐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유독 당직 다음날엔 환자의 투정에 민감해지고, 그럴 때면 덩달아 욱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도 거슬리곤 한다.

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재촉하는 경우가 그렇다.

내가 게으름이라도 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급한 게 맞는 건가? 본인이 편하려고 독촉하는 건 아닌가?

거의 10개에 달하는 병동의 일들을 혼자 하고 있는 내 입장을 배려해 주지 않는 걸까?

뱀도 한수 접고 들어갈 만큼 꼬이고 꼬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다.



허나 사실 알고 있다.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급한 일이면 우선적으로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게 맞다 것을

간호사 선생님들도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환자들은 나에게 짜증 내는 것이 아니라, 아파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인데 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가 않을까?

평소에 잘만 하던 술기가 갑자기 잘 안되는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입에서 필터를 거치지 않은 욕이 새어나온다.

진정하고 다시 해보거나 다른 동기들에게 부탁하면 되는걸, 마음이 급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혼자 폭발고만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으로 '뭐든 잘 되겠지' 마음으로 살아가던 나는, 전과 다른 내 모습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짜증은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을 때 드는 감정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짜증을 낸다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짜증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다면?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으면서 가시는 남에게 세우는 것이라면?

나는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 수가 있다.

결코 좋지 않은 태도이다.



새벽 4시, 응급 동맥혈 채혈을 하고 당직실로 돌아가던 중 떠오른 생각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가장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하고 있잖아'

떠오르는 감정은 내가 조절할 수 없지만 태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태도는 사람 간의 기본 예의범절이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데에는 적절한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

특히나 직장에서 태도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가식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가식과 태도는 엄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본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성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표현하는 감정은 미성숙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태도와 성숙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감정과 태도의 연결고리를 끊고 그 사이에 '이성'이라는 투석기를 장착시켰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먼저 친절한 태도를 받으면 어느 정도 피로가 가시는 것을 깨달았다.

되돌아보니 이때만큼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다시 건네곤 했다.

먼저 친절을 베푸는 건 힘들어도 친절을 맞받아칠 수는 있달까

유레카 바로 이거다.

서로 힘들 때 친절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밝게 인사라도 해보자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피곤에 절여진 상대방도 친절을 맞받아칠 수는 있지 않을까?

드라마틱 하게 곧바로 바뀌었으면 하지만 그것까지는 욕심인듯하다

조금씩 시도는 해보고는 있지만 여전히 잘 안된다

지금은 시도하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하자



또 다른 해결책은 짜증을 낼만한 원인을 없애는 것이다.

이 방법은 총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퇴사하기

두 번째  체력 기르기

세 번째 마음가짐 바로 하기



모든 직장인들의 꿈인 퇴사, 그러나 그 누구도 섣부르게 시도하지 못하는 파랑새 같은 꿈

본인이 견딜 수 있는 역 치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개인의 역 치를 잘 생각해 보고 몸과 마음을 망치지 않기 위해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지이다

나의 역 치는 꽤 높기 때문에 (노예근성이 잘 배어있기 때문에) 이 선택지는 넘어갈 수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밥 잘 먹고 유산소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 곧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게 해준다.

이전에도 언급한 나의 망가진 식습관도 지금 나의 상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식사는 웬만하면 병원 식당에서 해결하고, 당직이 아닌 날에는 꼭 조금이라도 유산소 운동하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체력의 한계가 찾아올 때는 분명 있다.

그러므로 결국은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게 핵심일듯하다.

물론 화가 날 때 속시원하게 맞받아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순조로운 병원생활을 위해 가급적 피하고 싶다.

왜 상대방이 이렇게 행동하고 표현하는지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해 보기

정말 이해가 안 될 때는 가상의 스토리라도 만들어서 어떻게든 이해해 보기

정말 부당한 일이 아니고서는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 보자

부당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다.



사람의 진면모를 보려면 함께 고생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여행을 같이 가보거나, 조별 과제를 같이 해보라거나

그중 최고의 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같이 인턴을 하는 것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 꽁꽁 숨겼던 모습조차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될 테니까

우리 병원은 병원 크기에 비해 인턴 수가 턱없이 적어서 그 효과는 수배에 달한다.

7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에 고작 인턴이 14명이라니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어마어마한 병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곳에서조차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동기들이 있다.

'사람이 아니라 부처의 현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허나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나는 힘들고 지칠 때 투덜대며 그들의 옆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앞으로 수년간 반복될 퐁당퐁당의 길

인생은 마라톤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막 출발점을 떠난 지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도 자기관리도 점차 성장할 거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내일도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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