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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May 05. 2023

[병원인턴] 환자들의 컴플레인

인턴 이라고 컴플레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컴플레인 (Complaint)

고객이 상품의 질이나 서비스 따위에 불만족하여 제기하는 불평

음식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장님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컴플레인이라고 한다.

컴플레인은 철저히 고객의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렇기에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칭찬을, 누군가에게는 컴플레인을 받을 수 있다.



구체적인 예시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배달의민족 리뷰창에 들어가 보자

이곳은 우리가 가장 손쉽게 컴플레인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별점이 높은 가게이든, 낮은 가게이든 어김없이 별 1개와 컴플레인이 달린 리뷰를 볼 수 있을 텐데, 이러한 글들을 읽다 보면 정신이 아찔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컴플레인도 있는가 하면, 사장님의 촉촉한 눈가를 상상하게끔 하는 컴플레인도 꽤나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출처 = 체인지 그라운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도 컴플레인을 피해 갈 수 없다.

일반 의사(GP)로 일하고 있는 동기들 혹은 개원을 하신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환자들의 컴플레인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의사의 실수로 인한 정당한 컴플레인도 있지만, 의학지식에 반하는 치료를 원하거나 금액 대비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양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고



하지만 약육강식 무림강호의 개원가에 컴플레인은 병원 운영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어떤 종류의 컴플레인이라도 문제없이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친 풍파를 막아주는 대학병원 안의 막내의사 인턴은 컴플레인을 피해 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인턴들 역시 컴플레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환자분으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받기도 하고, 보호자분들에게 받기도 한다.

인턴들은 아직 환자의 치료에 깊게 관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컴플레인의 대다수는 미숙한 술기 실력에 관한 것이다.


출처 = PNGtree


술기 컴플레인의 대마왕 ABGA (동맥혈 채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ABGA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술기이다.

깊게 위치한 동맥에 바늘을 찔러 넣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헌혈이나 채혈보다 훨씬 아프다.

이 동맥은 의사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슬프게도 동맥혈 채혈은 한 번에 성공하기가 꽤 어려운 술기이다.

첩첩산중으로 나이가 많으신 환자분들은 혈관이 잘 움직인다.

맥이 가장 강하게 뛰는 곳을 찔러도 주사바늘에 혈관이 밀려서 채혈에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ABGA를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 바늘을 살짝 뒤로 빼고 방향을 틀어 다시 찔러 넣는 것이 정석이다.

허나 이 과정이 꽤나 위협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호자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늘로 팔을 아주 휘저으시네요. 정말 너무하세요 선생님'

'도대체 몇 번을 찌르시는 거예요. 한 번에 뽑으시는 선생님들도 계시던데 선생님은 잘 못하시나 봐요. 이 검사 꼭 해야 돼요?'

그럴 때면 '동맥이 깊게 있어서 잘 안 느껴지고, 고령의 환자분들은 맥이 잘 안 느껴져서 한 번에 안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어요'라며 설명을 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하신 보호자분께는 들리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ABGA 사진, 출처 = 특수간호중재


L-tube(비위관)을 끼는 것도 가끔씩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이런 경우는 비위관(일명 콧줄)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비위관을 끼고 있는 모습이 심각하게 아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꼭 콧줄을 껴야 되냐며, 입으로 먹으면 안 되겠냐며 고집하시곤 하는데 이럴 때는 시작하기도 전에 환자분이나 보호자분을 설득하는데 진이 빠진다.



비위관을 넣을 땐 환자분의 협조가 필요하다

식도로 넘어가는 비위관을 넣을 때마다 꿀꺽 꿀꺽 삼켜주시면 대부분 한 번에 들어가긴 하지만, 소통이 불가한 환자들에게 튜브를 넣을 때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한다.

협조가 안되면 식도가 아닌 입으로 다시 나오기 태반이고, 때로는 식도가 아닌 기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콧줄이 한 번에 안 들어갈 경우, 이렇게 관이 안 들어가는데 꼭 넣어야 되는 거냐는 보호자분의 컴플레인을, 비위관이 들어갈 때까지 견뎌야 한다.


비위관 삽관모습, 출처 = 방문간호의 신


소변 줄이나 Pig-tail catheter처럼 몸에 삽입되어 있는 튜브를 제거하는 경우도 꽤나 다이나믹 하다.

특히 섬망이나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시는 환자분들에게서 제거해야 할 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관을 제거하기 전 조금 불편하다고 설명을 드려도 환자분들에게는 입력이 안된다.

이 상태에서 환자분들이 조금이라도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면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진다.

' 왜 이렇게 아파 이 썅노무새끼야!! 너 몇 살이야!! 이 새끼 너 고소할 거야 왜 나한테 이래!! 으아아아아!!'



이럴 때면 ' 환자분 지금 욕하셨어요?'라고 눈을 마주치며 되물어보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는 경우가 태반이고, '내가 뭐?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모르쇠로 일관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다.

욕설은 기본이요, 신체 보호대를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떡해서든 손을 움직여서 나의 팔을 쥐어뜯거나 꼬집는다.

이런 자연재해 같은 경우에는 그저 빠르게 해치우고 나오는 것만이 답이다.


Pigtail catheter, 출처 = ResearchGate


아주 간혹가다 동의서에 대한 컴플레인도 있다.

동의서에는 대략적인 시술 및 수술시간이 적혀있다.

시술 및 수술 전 동의서를 기반으로 설명해 드리는데 빨리 끝나면 왜 이렇게 빨리 끝나냐, 늦게 끝나면 왜 이렇게 늦게 끝나냐는 컴플레인이 뒤따를 때가 있다.

환자 컨디션에 따라 예정된 시술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금식도 다했는데 시술 못해서 나한테 큰일이 생기면 책임질 거냐며 언성을 높이는 환자분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인턴의 범위를 넘어간 상황에 대해서는 슬프게도 그저 화가 풀리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컴플레인은 동의서를 받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앞으로 받으실 시술에 대해 설명을 드릴 때는 환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원칙대로 설명을 끝낸 나에게 돌아온 것은 '왜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하냐'라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컴플레인이었다.

'아니 내가 의대를 졸업했을지, 법의학을 전공했을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왜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설명을 하는 거야?'

아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게 오히려 이분한테는 역효과였구나..


하루에도 수십개씩 받는 동의서



컴플레인을 받는 건 받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건 컴플레인을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점이 불편하셨는지를 파악하고 내 입으로 다시 한번 말하면서 내가 잘 이해했다고 표현하기

많이 불편하셨을 것 같다. 죄송하다며 사과드리기

앞으로 더 잘해서 불편함 겪지 않게 해드리겠다. 미래에 대한 약속하기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지금까지 받았던 대부분의 컴플레인을 잘 해결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라포(Rapport/ 의사 환자 간의 친밀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왜 본인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설명하냐고 했던 그 환자

컴플레인 끝에 삽입된 Pig-tail catheter를 빼러 갔을 때는' 어이구 우리 김 선생님 오셨네. 안 아프게 빼줄 거죠? ' 하며 친밀감을 표현하셨다.

퇴원 날에는 '내가 선생님 좋은 의사 되기를 정말 응원해 파이팅!'이라는 덕담까지

컴플레인으로 시작된 관계가 이렇게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걸 배우게 된 케이스였다.


인턴은 늘 눈물을 숨겨둔다


여러 가지 컴플레인을 받아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우선 내 실력을 늘려서 합당한 컴플레인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내 손을 벗어난 어쩔 수 없는 컴플레인도 존재하며, 이런 자연재해 같은 컴플레인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자.

컴플레인에 맞서려고 하지 말고 부드럽게 환자를 대하며 환자의 불편했던 점들을 파악하며 좋게 해결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소비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컴플레인을 하더라도 정말 심사숙고해서 하자

역시 역지사지는 인생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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